■ 인터뷰 - 소설가 이광복 작가

소설은 옳고 그름을 짚어주는 정신적 자양분 
삶의 기로에서 경우의 수 제시하는 이야기 담아야

가을은 깊어가고 낙엽이 지기 시작하는 계절이다. 아침·저녁 찬바람이 느껴지는 지금, 
이효석 선생의 커피향 같은 낙엽 태우는 냄새를 맡으며 한 편의 소설책을 읽어봐도 좋을 것 같다.
1976년 ‘현대 문학’을 통해 소설가로 데뷔해 올해로 등단(登壇) 41년차를 맡고 있는 소설가 이광복 작가를 만나 소설이 무엇이며 왜 읽어야 하는지를 알아봤다.

소설은 현실에 있음직한 ‘지혜’와 ‘교훈’이 있는 이야기
이광복 작가는 한국문인협회 상임이사로 부이사장의 중책을 맡고 있다.
이광복 작가로부터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본다.

“문학은 인생을 표출하고 표현해내는 예술입니다. 인생 본연의 문제인 ‘어떻게 사는 게 올바른 삶인지’를 성찰(省察)하고 천착하는 게 문학입니다. 따라서 문학을 천착의 예술이라고도 하지요. 문학의 장르 중 소설은 재미있는 이야기로 독자를 끌고 가는 글이라고 봅니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풀어내는 사람을 소설가라고 하구요. 소설은 인생을 살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삶의 지혜와 교훈을 작가의 눈을 통해 허구지만 사실인 것 같은, 현실에서 있음직한 이야기로 상상해 서술하는 창조적 작업입니다. 따라서 소설가는 비상한 스토리텔링 재주를 지녀야 합니다.”

그는 소설이란 노동에 가까운 행위이며 시인을 들인 만큼 보여지는 것이라며 소설을 쓰고자 하는 사람은 ‘비장한 각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작가는 또 부정비리에 얽힌 정치인들이 범죄를 부인하고 항변하면서 자신의 범죄는‘조작이다, 소설이다’고 하는데, 소설 운운하며 인용·비유하는 것은 소설가로서는 부당하고 불쾌하다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토로했다. 

삼국지는 삶의 지혜가 담긴 소설
그는 다시 말을 이어 가며 불후의 명작인 삼국지를 세 번 이상 읽은 사람과는 송사를 벌여선 절대 안 된다고 했다. 삼국지엔 삶의 지혜가 듬뿍 담겨있어 삼국지를 많이 읽은 사람은 법적 다툼을 절묘하게 피해갈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정주영 회장은 강원도 통천 산골에 살며 10리 먼 길을 걸어 면사무소에 배달되는 이광수의 연재소설이 실린 신문을 탐독했다고 합니다. 정 회장은 이 소설에서 얻은 영감과 가르침에 따라 가난한 삶을 일으키겠다는 확고한 야망을 갖고 거대 재벌 기업을 일궈냈다고 합니다.” 

이어 이 작가는 소설은 갖가지 시추에이션에 상상력을 극대화시켜 사실과 같은 사건 구성으로 교훈과 지혜, 애환, 투쟁과 같은 삶의 진솔한 이야기를 그려내야 된다고 강조했다. 또한 소설은 옳고 그름을 잘 짚어주는 정신적 자양분인 지혜가 담겨야 되며, 삶의 기로에서 경우의 수를 잘 제시해주는 이야기가 듬뿍 담긴 글이 명작소설이라고 설명했다. 

춘향전은 소설 작법이 뛰어난 작품 등장인물의 사건 전개가 돋보여
다음으로 이 작가는 소설의 작법과 관련해 우리의 고전 명작소설인 ‘춘향전’을 인용하며 이런 얘기를 했다.

“춘향전에는 소설의 등장인물 신분과 특성, 사건의 절묘한 전개, 심지어는 사건 현장의 묘사가 현장감 있고 섬세하게 그려져 재미를 돋우고 있습니다. 남자 주인공인 이몽룡의 이름은 꿈에 용이 나타난다는 뜻이 내포돼 있어요. 이는 이몽룡이 암행어사가 돼 춘향을 극적으로 구조해내는 꿈과 같은 스토리에 부합되게 이름을 작명한 것이 돋보입니다. 성춘향은 주류 양반인 창녕 성씨로 춘향의 해박한 지식과 번뜩이는 지혜를 가진 여인으로 묘사해 두 주인공이 대등한 신분으로 각인시킨 것도 소설작법 측면에서 아주 뛰어납니다. 몸종인 향단과 방자를 기방에서 흔히 쓰는 이름으로 설정해 주인공과의 신분차이를 나타나게 한 점도 아주 돋보입니다. 또한 이몽룡이 성춘향을 극적으로 구출한 뒤 변사또의 주민 수탈과 괴롭힘, 폭정, 만행을 시로 표현한 대목은 이 소설의 성가(聲價)를 높인 명시라고 봅니다.”

이몽룡이 읊은 ‘금준미주시(金樽美酒詩)’를 소개한다.

‘금준미주천인혈(金樽美酒千人血) 금잔의 맛 좋은 술은 천 백성의 피요 / 옥반가효만성고(玉盤佳肴萬姓膏) 옥쟁반의 기름진  안주는 만 백성의 기름이니 / 촉루낙시민루락(燭淚落時民淚落) 촛농이 떨어질 때 백성들이 눈물 쏟고 / 가성고처원성고(歌聲高處怨聲高) 노랫소리 높은 곳에 원망 소리도 높더라.’

이야기책 읽으며 작가 꿈 키워
불우한 형편이지만 꿈 잃지 않아

이어 이 작가가 작가로 등단해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얘기를 들어봤다.
“저는 충남 부여에서 태어났습니다. 우리 집은 마을에서 가장 가난했지요. 부모님은 연세가 많으시고 가난해 요즘 말로 기초생활보호대상인 셈이었어요. 면사무소에서 무상으로 나오는 구호양곡을 가끔 타 허기를 달래며 살았지요.”

그는 논산 대건중학교를 다니며 가난한 집안 사정으로 학교보다는 부잣집에 품을 팔러 다니기 일쑤였다고 한다. 한때 학교를 그만 둘 생각도 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학교를 졸업했다고 말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웠지만 어린 시절부터‘이야기 책’을 많이 읽었습니다. 예닐곱 살 때부터는 집에 오는 동네 아저씨들에게 춘향전과 심청전, 흥부전, 삼국지, 옥루몽 등의 이야기책을 읽어드렸죠. 이때 대학은 못 가도 소설가는 꼭 되겠다는 꿈을 갖게 됐습니다.”

고등학교는 선생님이 내준 등사판 글쓰기 아르바이트를 하며 가까스로 졸업했다고 설명하며, 졸업 후 서울로 상경해 날품팔이를 하며 치열하게 살았다며 그때 시절이 떠오른다며 잠시 회상에 잠기기도 했다.

1976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 소설·동화·영화대본 등 수 십권의 책 펴내
이 작가는 1976년‘현대문학’을 통해 문단에 나온 이후 소설집 ‘불길’ ‘화려한 밀실’ ‘사육제’ ‘동행’ 등과 장편소설‘풍랑의 도시’와 월간 독서의 독서문학상 수상작인 ‘목신(牧神)의 마을’과 ‘불멸의 혼-계백’‘구름 잡기’등 다수의 작품을 발표했다. 교양서적 ‘세계는 없다’ 시나리오 ‘시련과 영광’ 등 소설·동화·영화대본 등과 같은 여러 장르에서 수 십권의 책을 저술했다. 

현재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임기 후 문학사에 남길 명작 쓰고 파
상도 꽤나 많이 받았다. 그 중2014년 ‘부여 100년을 빛낸 인물 문화예술분야’ 선정과 2016년 ‘한국예총예술문화대상 문인부문’ 수상에 큰 긍지를 느낀다고 밝혔다.

한편, 이 작가는 문인 단체 여러 곳을 거쳐 현재 한국문인협회의 부이사장으로 활약 중이다. 그는 이순(耳順)을 훌쩍 넘긴 금년 67세다. 한국문인협회 임원 임기를 마치면 전업 작가로 활동하며 한국 문학사에 길이 남을 명작을 쓰고 싶다고 전했다.

저작권자 © 농촌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