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명견 교수의 재미있고 유익한 옷 이야기(23)

종교와 이념의 틀에 갇혀있는 ‘부르카’ 
가을걷이 때 활용해볼까…

이슬람 여인들이 머리부터 얼굴을 거쳐 발목까지 늘이도록 입는 전통의상으로, ‘부르카’(Burka)라는 게 있다. 눈 부분만 망사로 만들어 바깥을 볼 수 있게 된 옷이다. 이보다는 노출이 더 허용되는 ‘니캅’(Niqab)이 있으나, 이 옷 역시 망사 없이 눈 부분만 내놓게 돼 있어 부르카와 오십보 백보다. 순결을 지키며 남성을 유혹하는 어떤 것도 보여서는 안 된다는 이슬람 경전 코란의 가르침에 따른 것이라 했다. 한여름 바깥 기온이 섭씨 40도가 넘고 습도는 90을 웃도는데, 부채질도 못하고 눈 부분만 빼꼼 뚫린, 감옥 아닌 감옥에 육신을 가두고 평생을 살아간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바로 이 부르카와 니캅 문제로 요근래 유럽이 시끄럽다. 

2010년 4월 벨기에 하원이 자기네 영토 내 공공장소에서 부르카를 포함, 신원을 확인할 수 없게 하는 옷이나 두건 등의 착용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어 2011년 4월 프랑스가 부르카 착용을 금했고, 네덜란드, 불가리아, 오스트리아, 독일 그리고 캐나다의 퀘벡주에서까지 ‘부르카 금지법’을 시행하고 있다. 

명분은 ‘여성의 인권’을 먼저 말하지만, 그보다는 근래 유럽에서 잇따르는 이슬람계의 테러가 주된 요인인 듯하다. 부르카를 입고 테러를 저지를 경우 추적이 어렵다는 이야기다. 

어찌됐건 중동과 이슬람의 전유물처럼 알려진 이 부르카가 우리나라에서 상류층 여성들 간에 선풍적으로 유행했던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바로 고려시대에 그랬다. 고려는 일찍이 해상무역이 번성해 서역의 사라센과도 교역이 있었고, 사라센인들이 고려에 와서 벼슬도하면서 서역의 문화가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물론 고려시대에 유행했던 것이 부르카와 똑같은 모양은 아니었다. ‘몽수’(蒙首)라는 쓰개였다. 몽수는 검은색 라(羅:그물처럼 짜 속이 들여다보이는 비단) 3폭에 길이가 8자(약 240㎝)나 되는 것으로, 머리부터 덮고 얼굴만 드러내며 나머지는 양 어깨를 따라 내려뜨렸다. 말을 탈 때에는 몽수 위에 모자(립. 笠)를 썼다. 서민도 몽수를 착용했으나 아래로 내려뜨리지 않고 머리 위에 접어 올렸다. 

그러나 몽수가 금 한 근 값이었으므로 아무나 쓰는 것은 아니었다고 했다. 고려시대는 내외법이 없어 여성에게만 일방적으로 정절이 강요되지는 않았다. 

따라서 몽수가 서역에서처럼 얼굴을 가리기 위해 사용될 필요가 없었으므로 일종의 유행으로만 받아들여졌던 것으로 보인다. 이 몽수가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길이가 짧아지고 안에 모자(라울립.羅兀笠→너울이 됨)를 쓰는 변화를 겪는다. 생활에 적합한 소품으로 변형시킨 것이다. 더불어 여성의 내외가 강요되면서 쓰개치마나 장옷처럼 몸을 가리는 옷도 등장한다. 

학자들은 너울이 몽수의 변형이라 보지만, 확장해석하면 몽수가 발전한 것이 바로 쓰개치마나 장옷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요컨대 고려시대에 들어온 ‘부르카’가 조선의 장옷으로까지 변해가는 패션의 변화과정을 거쳐 사그러졌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종교와 이념의 틀에 갇혀있는 부르카와, 우리의 몽수 그리고 너울과 장옷의 변화과정을 비교해 보게 된다. 이 부르카, 올 가을걷이 때 활용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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