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농지담보 대출에 농사 접는 농민들

농민들 “규모화·농산물 최저가격 미시행 등 정책실패가 원인”
농가부채, 20년 전보다 2배 이상 늘어…가구당 2673만원

백화점 최고가 영광은 잠시뿐
지난 30년간 배 농사를 지어온 충남 천안 한 농민의 과수원 2만평이 며칠 전 1차 경매에 부쳐졌다. 농지가 넘어간 농업인의 얼굴은 타는 속을 보여주듯 얼굴도 숯검정처럼 타들어 가고 건강하던 몸도 수수깡처럼 바짝 말랐다.
그동안 임대농지를 포함, 약 6만평의 농지에 배 농사를 지으며 액비저장고, 저온창고 등을 정부로부터 일정 부분 지원을 받으며 부농의 꿈을 꾸기도 했지만, 영농규모화가 답이 아닌 것 같아 2만평으로 줄여 나가던 중이었다. 그동안의 대가는 모두 빚으로 남았다. 

후계농업인으로 선정돼 4000만 원의 정책자금을 받아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현대백화점·신세계백화점에 최고가 배를 납품하며 명성도 쌓았던 적이 있었다.
농사를 아무리 잘 지어도 대규모 농사를 지은 농산물을 제대로 처리하는 방법은 잘 몰랐던 점이 문제였다. 최고가를 받으며 시장에서 대한민국 최고의 배를 생산한다는 명성을 얻을 때마저도 백화점 가격 12만 원의 3분의 1에도 못 미치는 금액을 가락동농수산물시장에서 정산 받으면서도 기분 좋게 너털웃음을 웃었을 뿐이다.

그나마, 10㎏짜리 한 박스에 4만여 원 씩 받았던 물량은 전체 출하물량 중 일부분에 지나지 않았다. 창고에 가득 쌓여 있던 배를 추석과 설 명절이 지나 1년 내내 판매한 후, 정산을 해 보면 이상하리만치 퇴비와 액비, 약제 등을 사는 게 부족해 과수원을 담보로 영농자금 대출을 받았다. 또 배 가지치기, 유인작업, 봉지 씌우기, 적과 작업, 수확과 선별·포장을 할 때 들어가는 인건비도 필요할 때마다 조금씩 담보대출을 받은 죄 밖에 없다. 배를 판매하면 빚을 갚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매해 조금씩 차이는 있었지만, 계속 빗나가 농협에 빚만 쌓이고 또 쌓이게 된 것이다.

영농자금․학자금 대출로 빚더미
그런데, 이상하게 4000만 원으로 시작한 빚은 점점 늘어나기 시작해 어느 순간에는 감당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농사 이외에 특별히 다른데 한눈을 팔거나 욕심을 내본 적도 없고, 두 아이 뒷바라지만 하면서 여기저기 직거래 농산물 판매장도 열심히 뛰어다녔지만, 30년간 농사를 짓고 쌓인 것은 12억 원의 빚더미다.
두 아이는 성장해 대학에 입학을 하고 보니 가욋돈으로 들어갈 돈은 더 많이 늘어났고, 더 이상 담보로 제공할 땅도 없게 되니 그 다음부터는 대출금이 연체되기 시작했다. 연체기간은 벌써 1년이 넘어선 상태다.
자구노력을 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남아 있는 농지를 팔아서 빚잔치를 하고, 농사를 접으려고 했다. 그게 답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당초 1년 전 물류창고를 짓겠다고 가계약을 했던 업자는 아직도 중도금과 잔금을 줄 생각도 않은 채 깜깜 소식이니 30년 농사에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땅만 뺏기고 빈털터리로 길바닥에 나앉을 판이다. 이게 꿈에 부풀었던 한 후계농의 현실이다. 

같은 시각, 농림축산식품부 장관과 농업계 전문가들이라는 사람들이 농정개혁위원회를 통해 농업의 문제점을 개혁한다고 진지하게 회의하고, 식사를 함께 하며 시간만 하염없이 보내던 사이의 일이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지난 1년간 청탁금지법으로 또 한번 된서리를 맞았던 과수농가 중 한 농업인은 이처럼 피눈물 나는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농협과 정부가 정책자금 미끼로 도시민들에게 농지 헐값에 넘겨”

 농협조합원 1만2626명 신불자 등록…등록금액 1조4천억원
“정책자금 3년 시한은 초보운전자에 고급차로 운전하라는 격”

농협조합원 1만2천명은 신불자 
농협의 농지담보대출 잔액이 올해 9월 말을 기준으로 51조4153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2009년도와 비교해봤을 때 72.6%나 늘어난 규모다. 
국회 농해수위 박완주 의원이 농협중앙회로부터 제출받은 ‘최근 10년간 농지담보대출 연도별 현황’ 자료에 따르면, 전산 집계가 최초로 가능했던 2009년에는 밭을 담보로 192,050건, 논을 담보로 329,363건, 과수원을 담보로 29,153건 총 55만566건의 농지담보대출이 발생했다. 여신 잔액은 29조7874억 원이다.

29조 원의 여신 잔액은 8년 만에 72.6%나 불어났다. 올해 9월 말을 기준으로 농지담보대출은 처음으로 50조 원을 넘어서 51조4153억 원을 기록했다. 밭을 담보로 20조8031억 원, 논을 담보로 27조5922억 원, 그리고 과수원을 담보로 3조200억 원이 대출된 상황이다. 
한편 박완주 의원이 농협으로부터 제출받은 ‘농협조합원 신용불량자 현황’ 자료를 살펴보면, 올해 8월 말을 기준으로 1만2626명의 농협조합원이 신용불량자에 등록된 상황이다. 등록금액은 총 1조4147억 원에 달한다.

20년 전보다 농가부채 2배 늘어
현재 우리나라 농가부채는 20년 전인 1997년과 비교해 두 배 이상 증가한 상황이다. 농가당 평균 부채는 1997년에 1301만 원이었지만 20년 사이 105.4% 증가해 지난해 2673만 원이 됐다. 농가부채는 최근 10년 동안 2700만 원 내외에서 정체 중이다.
박완주 의원은 “농가부채가 증가하게 된 주요 원인은 쌀 소득 감소에 따른 농업소득 감소”라고 진단했지만, 거기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그나마 정부에서 매입하는 농산물은 대한민국에서 쌀밖에 없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 

현장 농업인들은 그동안 정부 정책으로 펴 왔던 농지 규모화와 쌀 이외 채소나 과일 등 농산물에 대한 최저가격 미실시, 3년만 되면 무조건 상환에 들어가야 하는 농업인 대상 정책자금 대출문제 등 ‘정부정책 실패’가 주요 원인이라고 말한다.

정책자금 3년 시한 대출의 악순환
지난 10월30일 농림축산식품부와 유관기관에 대한 종합국감에서 농해수위 김현권 의원은 청년농업인 육성정책과 관련 문제점을 살펴보기 위해 강선아 청년농업인연합회 추진위원장, 강영수·서정효 희망토농장 공동대표 등 40세 이하 청년 3명을 참고인으로 불러냈다.
이 자리에서 주로 논의된 내용이 바로 ‘정책자금 3년’에 대한 것이었다. 강선아 추진위원장은 “창업을 하는 사람들은 3년 후에 2차 지원이 필요하다”고 전제하며 “특히 농업분야는 준비단계가 필요하고 시행단계가 필요한데 3년이 지나면 후속사업이 없고 대출금 상환을 시작해야 한다는 부담은 계속 사업을 유지해야 한다는 점에서 염려스럽다”고 밝혔다.

이 문제가 어찌 청년농업인 정책에만 국한될 얘기인가 하는 점이다. 현재 50세까지 확대된 후계농업인 정책자금은 물론, 귀농귀촌 등 대부분의 정책자금에 모두 적용되는 얘기다. 농산물의 부가가치가 얼마나 높아서 3년이면 모든 성과를 내고 원금과 이자를 한꺼번에 상환할 수 있겠는가 하는 점이다. 
이러한 정책에 대해 강선아 추진위원장은 “초보 운전자에게 운전이 숙련되기도 전에 비싼 차를 몰고 도로로 나가라는 것과 똑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농업은 장기적으로 봐야 하는데, 3년 내 정착과 성과를 내라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얘기인지 모르겠다”고 밝혔다.

김현권 의원은 강선아 위원장의 발언을 이어 받아 “우리나라 농업정책은 획기적이고 파격적이어야 하며, 장기적이고 체계적이어야 한다”며 “진짜 ICT농업은 농업인에게 실패할 기회를 보장해 주고 실패하면 재기할 기회까지 마련해 줘야만 ICT농업이 되고, 실제적인 6차산업이 된다”고 강조했다. 

김 의원은 또 “일본은 사전단계도 보장하는데, 운전기술도 제대로 못 배운 농업인에게 고급차를 사서 도로주행을 해보라는 것은 벼랑 끝으로 내모는 정책”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농업을 위해 큰 자금을 먼저 투자를 하면 아무 것도 못 하고, 확신을 갖고 해도 실패할 수 있는 분야가 농업”이라면서 “사업계획과 토지를 구매하고, 자금을 투자해서 3년 내에 결과물을 내라는 것은 가혹한 것이며 그 성과는 누구도 보장할 수 없다”고 질타했다.
김현권 의원의 발언 또한 어찌 청년농업인에게만 국한된 말이겠는가? 그동안 농업인들이 성과도 내기 전에 자금상환 압박에 시달리다가 영농자금,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농협 신용대출을 하고, 제2 금융권에 손을 벌리면서 자금상황이 급속도로 악화됐다는 것은 정책자금을 받아본 농업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일이다. 

그래서 농업인들 사이에서는 “농협중앙회와 정부가 정책자금을 미끼로 농민들의 땅을 합법적으로 도시민들에게 경매로 헐값에 넘기고 있다”는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청년들도 3년 내 성과를 내기 어렵다는데 농업인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50대 이상 농업인들은 3년 이내 성공을 보장할 수 있는 것인지 누구든 답변을 해야만 할 상황이다. 이게 정상적인 농업정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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