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 - 페더럴웨이 통합한글학교 박영민 이사장

교민 대상 분기별 주정부
시정보고회 개최 유도해
교민 지위 향상에 크게 기여

한글 교육 주도
한민족으로서의 뿌리의식 심어줘


미국 출장 두 번째 인터뷰 인사로 미국인조차 넘보기 힘든 페더럴웨이 시의원을 5선을 하고
시장을 두 차례 역임했던 현 페더럴웨이 통합한글학교 박영민 이사장을 만났다. 
낯선 미국 땅에서 시장에 두 차례 당선된 비결과 한국 교민을 알뜰히 보살펴 온 자랑스러운 이야기를 들어봤다.


학부모회장 거쳐 시애틀 한인회장으로 교민봉사 주력
박영민 전 시장은 강원도 원주 출신이다. 그에게 먼저 미국 이민 동기부터 들어봤다. 
1933년생 사별한 박 시장의 큰누님의 남편인 매형은 60년대 초반 허정 과도정부 당시 LA총영사였다. 매형은 함경도 함흥 출신으로 윗사람과 타협을 잘 못하는 강직한 성품으로 상사와 외교문서 작성 문제로 다투다 사표를 냈다. 이후 매형은 미국으로 이민 와 영주권을 얻었다.
이로 인해 박 시장 위의 누님 네 분과 밑에 여동생, 남동생 7남매가 형제자매 초청 케이스로 미국에 오게 됐다고 한다.

박 전 시장은 셋째 누님과 1976년 2월 LA로 왔다. LA도착 1주 만에 꽃가게에 취직해 꽃 배달을 시작했다. 페더럴웨이로 이사를 한 것은 해양대를 나와 기관장을 하며 시애틀을 자주 왕래하던 셋째 매형이 페더럴웨이가 살기 좋은 곳이란 얘기를 자주 해 LA에서 이민 10개월 만에 페더럴웨이로 이사를 와 셋째누님과 가까이 살았다.

“33세가 되던 해에 결혼하고 여러 사업을 거쳐 세탁소를 운영했어요. 큰딸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PTA(학부모 교사 연합회)에 가입해 봉사활동을 시작했고요. 이후 교민봉사에 주력해 시애틀 한인회 이사장에 오르게 됐어요.”

92년 흑백갈등시 교민 피해 저지 앞장
1992년 4월29일 LA에서 흑인인 로드니 킹 강압 수사로 촉발된 흑백 갈등 유혈사건이 일어났다. 이때 흑인들은 백인으로부터 받은 핍박과 분풀이로 엉뚱하게도 한인가게에 침입해 물건을 훔쳐가고 불을 놓는 폭동을 자행했다. 이때 박 전 시장은 교민회장으로서 흑인들의 한국 교포 습격을 선제적으로 막고 교민들의 미국 국민으로서의 정치적 위상을 높여주기 위해 시장을 비롯해 시청 고위 인사들을 자주 만나 상담했다. 

“한인사회에 교포가 증가하고 있는 점을 내세워 주 정부와 교민간 원활한 대화창구로 교민 대상 분기마다 시정보고회 개최를 성사시켰습니다. 중국, 일본과 같이 이민 역사가 깊고 국력이 강하며 교민 수가 더 많은 국가를 제치고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코리아 시정보고회 개최를 탄원해 성사시킨 것이죠. 이는 한국 교민의 위상을 크게 높이는 큰 계기가 됐습니다.”

교민봉사에 주력하는 모습에 감동한 전임 시장이 임명직 시의원으로 발탁
박 전 시장의 이 같은 정치적 저력을 본 시장이 그에게 임명직 시의원에 도전해볼 것을 제의했다.
박 전 시장은 26명이 나선 시의원 예심을 통과하고 6명 결선권에는 들었으나 1등은 못해 탈락했다. 이후 박 전 시장은 시의원 입후보 선거과정 중 범법윤리문제로 제소된 시의원이 사퇴하면서 공석이 된 자리에 시장이 임명직 시의원으로 지명해줘 시의원으로 등원(登院)하게 됐다. 

박 전 시장은 막상 시의원이 됐지만 영어를 제대로 못해 고민이 컸다고 한다. 
“영어가 짧았던 터라 의안의 80~90%만이라도 파악하고 나가려고 의안 관련 영어 단어 익히기에 힘썼습니다. 이민 1세대인 제 잘못을 후배에게까지 넘겨줘선 안 된다는 생각으로 밤을 새워 의정(議政) 공부에 매달렸죠.”

박 전 시장은 의정 참여 시의 모든 행정 내용을 숙달해 예리하고 핵심적인 질문을 해내야 된다는 각오로 열심히 공부했다고 한다. 

한편, 박 전 시장은 한국 사람이 숫자 개념에 밝은 점을 십분 활용해 예산 수치 공부에 주력해 시 재정전문가로서의 좋은 평판을 얻어냈다. 박 전 시장의 이 같은 피나는 노력으로 임명직 시의원 한 차례를 거친 이후 다섯 차례 시의원에 당선되고 재선시장으로 4년을 봉직했다.

시장 재임 중 경찰국 유치…교민 경찰국장 승진에 디딤돌 놔
박 전 시장은 재임 중 페더럴웨이 시에 경찰국을 유치·설립해냈다. 1996년 박 전 시장은 경찰서장을 한국인으로 지명해 임용했다. 현재 한국 교민인 앤디 황을 초대 경찰국장으로 승진시키는 디딤돌을 놓은 것이다.

한편, 박 전 시장은 경찰공무원 78명을 선발하는데, 그 중 7명을 한국 교포로 선발할 것을 제의했다. 
“2001년 4월1일에는 강원도 동해시와 정식으로 자매결연을 맺었습니다. 짝수 해엔 미국인이 동해시로 가고 홀수 해엔 한국인이 페더럴웨이로 오도록 했죠. 이로서 양국 지역간 경제, 문화교류, 나아가 강원도까지 교류를 넓혀갈 기회를 넓혀가고 있습니다.”

박 전 시장은 또 한우리 페스티벌을 페더럴웨이 시 축제로 확대해 한국 문화예술축제를 시의 대표적인 문화행사로 발전시켰다. 이어 한국 노인회인 상록회모임을 위해 페더럴웨이 커뮤니티센터를 매주 화요일, 목요일 양일간 무료로 임대해 사용할 수 있도록 조례를 만들어 상록회가 사용케 하고 있다. 
박 전 시장은 시정부에 한인 연락관을 처음으로 두어 한국 교민의 민원을 시청에 상달해 해결해내는 역할을 부여했다. 또한 그는 워싱턴주 거주 여성 중 한인 경찰관을 선발해 임용하기도 했다.

시장 퇴임 후 한글학교 개교 한국 국민의 뿌리의식 고취시켜
임기를 마치고 시장직에서 물러난 박 전 시장은 구청이 외국어 교육 프로그램 예산을 절감하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페더럴웨이 통합한글학교 개교를 추진해 위원장에 올라 비영리단체인 페더럴웨이 통합한글학교를 개교시켰다.

운영비 일부는 재외동포 재단이 지원하고 있지만 어려운 가운데서도 매주 토요일 중학교를 임대해 200명에 이르는 학생을 대상으로 한글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이 교육에는 노년의 미국인도 다수 참여해 수강할 정도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

한글학교 교육 이수자 중 한국의 교육부와 국제교육원이 시행하는 한국어능력시험에 15~16명이 합격하고 있다고 박 전 시장은 자랑했다. 페더럴웨이 시교육청에서는 한국어 급수 합격 학생에게 고교 외국어 학점을 인정해주고 있어 한글교육 수업 참여에 활력을 높이고 있다고 한다.

“페더럴웨이 통합한글학교 이사장으로 교민 대상 한글 교육을 통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뿌리 의식을 고취시킨다는 점에 보람을 느끼며 교육에 총력을 기울이겠습니다.”
인터뷰 말미에 박영민 전 시장이 밝힌 포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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