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칼럼
우리는 자연인이다■독자수필-귀농아지매 장정해 씨의 추억은 방울방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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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0.20  10:5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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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필요한 이기심을 벗고 
겸손하게 엎드릴 때 
불어오는 겨울바람을 
견디며 버텨나가지 않을까

늦고추를 따서 밖에 있는 수돗가에서 한 소쿠리 씻는다. 씻고 물을 버릴 때마다 배수구가 막히는지 물이 신발까지 적신다. 대야를 들어내고 보니 다래 잎이 떨어져 구멍을 막고 있다. 휘리릭 배수구를 막은 잎을 건져내니 시원하게 물이 내려간다. 

여름내 무성했던 그 많은 잎들이 열매를 맺게 하고 이제 때를 따라 제 몸 아래로 미련 없이 뚝뚝 떨어뜨린다. 다래는 덩굴 아래를, 단풍나무는 단풍나무 아래를, 배나무는 배밭을 온통 노란색 낙엽으로 물들이고, 산에 사는 참나무는 산골짜기에 갈색 낙엽을 쏟아 붓는다. 이렇게 한 번 가을비가 내리면 최후를 감지한 모든 생명은 알을 낳고 열매를 맺고 종족번식을 위해 잎을 떨구며 다가올 추위를 견딜 최소한의 몸을 만들고 있다. 요사이 농가에서도 서리가 오기 전에 부지런히 먹거리를 채취하고 저장하느라 바쁘다. 어린 호박도 따고 고구마도 캐고 깻잎도 따고 들깨도 벤다. 그리고 남은 배도 다 따서 저장한다. 이렇듯 계절의 변화를 삶으로 끌어안고 이미 차갑게 식어버린 바람에 옷깃을 여미며 간다.
두툼한 점퍼를 꺼내 입고 마당에 어지럽게 흩뿌려진 낙엽을 모아 태운다. 쌀쌀한 바람은 이리저리 연기를 몰고 다니며 알라딘의 램프같이 어제 읽은 구약성경의‘욥기’를 생각게 한다. 

성경에서 유일하게 쓰여진 때나 저자를 알 수 없는 글이다.‘우스’땅에 사는 부자이면서 고결한 성품을 가진 욥은 하나님의 시험을 받아 사탄에게 온갖 고통을 받는다. 욥은 자식과 재산을 모두 잃고 온 몸에 악창이 나고 아내마저 떠나간다. 욥은 하나님이 왜 이런 고난을 주셨는지를 계속 질문하며 하나님의 법정에 서길 원했다. 결국은 하나님이 폭풍우 가운데서 말씀을 하시는데‘무지한 말로 생각을 어둡게 하는 자가 누구냐?’로 시작해서‘우주를 창조한 자의 지혜를 아는가’,‘고대의 야생의 동물들이 어떻게 태어나고 자라는지 아는가’라며 베헤못(고대 공룡)과 리워야단(고대 고래)라는 동물의 모습을 통해 인간(욥)의 무지와 한계를 지적하셨다. 인간이 얼마나 자기중심적 사고에 빠져있는가를 말씀하신 것이 아닐까 싶다. 

나는 10년 전 괴산으로 귀농했을 때 처음으로 콩으로 메주를 만들어 봤다. 동네 할머니와 함께 콩을 불리고 삶고 찧고 틀에 넣어 성형해서 짚으로 매달아 말리고 온돌방에서 띄웠다. 그 일을 해마다 반복하면서 무엇이 메주를 맛있는 된장이 되게 하는지, 메주를 만들고 두 달 동안 어떤 변화가 있는 지 살피는 중에 곰팡이라는 미생물을 만났다. 콩에 있는 단백질은 그냥 먹으면 맛도 없고 소화 흡수도 잘 안 된다. 

그러나 미생물에 의해 분해가 되면 비로소 제 맛을 내게 된다. 한 해의 장맛은 메주에 곰팡이가 얼마나 잘 피었는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었다. 나는 농업기술센터에서 곰팡이에 대해 자세히 배울 수 있었고, 육안으로 관찰되는 메주의 희고 노랗고 회색을 띄고 푸르고 검은 곰팡이 종류와 메주곰팡이들이 자라고 활동하며 어떻게 생성되는 지를 자세히 알게 됐다. 옛날의 나는 곰팡이는 무조건 음식을 상하게 하는 더러운 것으로만 알았었다. 실제 존재함에도 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으로 여겼다. 그러나 곰팡이를 알고 난 후부턴 보이지 않는 것의 중요함을 그것이 더 본질적인 것임을 깨닫게 됐다. 아주 작고 미세해서 잘 보이지도 않는 것들의 놀라운 위력, 미생물과 효모 효소 등을 알아가면서 이 세상을 가득 채우고 있는 생명체들에게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나는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 

하나님께선 욥의 고백을 들으시고 이전의 소유보다 갑절의 복을 주셨다는 이야기가 욥기의 끝이다. 사람도 자연의 일부분이며 신에게 같은 생명을 부여받은 존재다. 겨울이 오기 전에 스스로 잎을 다 떨궈내어 자기를 최소화하는 나무처럼 불필요한 겉치레 인간중심의 이기심을 벗어버리고 겸손하게 엎드릴 때 우리는 불어오는 겨울바람을 견디며 버텨나가지 않을까.

어느새 사방은 어둑어둑해지고 멀리 기러기 떼가 누운 시옷자 대열로 구름 사이로 산을 넘어 날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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