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칼럼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독자수필-귀농아지매 장정해 씨의 추억은 방울방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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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9.22  15: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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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눈에는 다 동일한가 보다
남녀노소, 빈부귀천 가림 없이…
느끼는 그대로만 반응한다. 

새벽에 산통이 시작돼 아침에 병원으로 간다는 전화를 받고 우리는 괴산에서 차를 밟아 부리나케 병원에 도착했다. 딸은 진통 끝에 무사히 자연분만을 했다. 산모도 아기도 모두 건강했다. 신생아실의 격리된 유리창 밖에서 손자와 첫 대면을 했다. 흰 포대기에 싸여서 우리를 바라보는 눈빛이 범상치 않다. 마치 ‘너는 누구냐?’하고 묻는 표정이었다. 갓난아기의 눈빛에 순간 압도됐다. 물론 근 30년이 넘게 갓난아이를 본 적이 없기도 했고, 내가 아이를 낳았을 때 기억도  안나지만 갓난아이가 저렇게 당당하게 내려다보는 게 막연히 기대하고 생각했던 첫 만남의 그림은 아니었다. 

아기가 6개월 됐을 때 한 달 정도 제 엄마와 함께 괴산에 내려와 있었다. 작년 여름 아기를 돌봐주시던 시부모가 미국에 사는 딸에게 두 달간 가는 바람에 괴산에서 우리 부부가 외손자를 돌봤다. 올해가 손자 녀석이 맞는 세 번째 여름이다. 늘 함께 하지 못했지만 주말에 쉬는 딸의 직장스케줄에 맞춰 시댁 어르신께 육아의 짐을 덜어 드리려고 손자를 만나러 매주 서울을 다니고 있다.

사돈댁 가족들은 물론이고 우리가족 모두 새로 태어난 생명을 향해 어쩔 줄도 모르면서 온통 관심이 아기에게 집중됐다. 

나는 영유아 보육책을 다시 읽고 인터넷을 뒤지고, 먼저 할머니가 된 친구들에게 요즘 육아의 노하우와 조언을 들으며 손자를 돌보고 있지만 순간순간 어찌해야 할지를 모를 때가 많다. 그러나 손자 사랑은 마약 같은 것인가 보다. 남편도 손자 이야기만 나오면 반색을 하며 맞장구를 치면서 금방 입이 귀에 가서 걸린다. 평생을 함께 살아왔지만 자기자식을 낳았을 때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았다. 체면이 중요하고 음전을 빼는 충청도 양반이 손주 녀석 앞에선 헤벌쭉해서 별 짓을 다한다. 재울 땐 어찌나 예쁜지 팔이 아픈지도, 다리가 아픈지도 몰랐다. 일요일 저녁 괴산집으로 돌아올 때는 가슴 한 복판에 커다란 구멍이 난 듯 서울에서 점점 멀어지는 것이 슬프기까지 했다. 

이번 주말에도 어김없이 손자 녀석을 보러 다 모였다. 나는 갓난아이 때부터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한다. 빤히 쳐다보며 가만히 듣고 있는 것이 이미 다 알고 있다는 표정이다. 나는 순진무구하고 천진난만한 얼굴에 내 마음을 숨길 수가 없고 정말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된다. 아주 옛날 내 삶에 세상이 자리하기 전에 가졌던 수줍음, 부끄러움, 그리움 같은 손자 앞에서 나는 처음의 나를 기억해내고 있었다. 이유식을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작고 하얀 숟가락에 미음 반 숟가락을 받아먹느라 입을 뾰족이 내밀고선 제 엄마를 그렇게 간절하게 바라보던 표정을 잊을 수 없다. 이미 어른이 돼 잃어버린 동심, 순수함, 두려움, 수줍음, 아름다움, 정결함 그런 보이지 않는 중요한 가치를 되살아나게 했다. 그래서 윌리엄 워즈워드는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고 노래했던가! 어떻게 이 나이에 이토록 감동을 주는 사랑을 다시 할 수 있을까? 어린 손자를 통해 모든 가족관계가 회복되고 가족이 무엇인지를 다시 배우게 된다. 

오늘 아침에도 전화가 왔다. 이제는 제 할 말을 또박또박 다하는 손자가 할미를 꿈에서 봤다며 할미가 보고 싶다고 해서 영상통화를 한다. “할미 꿈에 봤어” “그래~ 그렇구나” 얼굴이 보여도 뭐 딱히 할 말이 있는 것은 아니다. 늙어 쭈글쭈글한 할미 얼굴이 뭐가 그리 보고 싶을까? 성경에서 예수님도 말씀하셨다. 천국은 어린아이와 같은 자의 것이라고. 아이 눈에는 아름답고 못난 것, 남녀노소, 빈부귀천 가림 없이 다 동일한가 보다. 손자 녀석과의 몇 마디 통화 속에서 서로 금방 동화가 되고 소통이 된다. 간절한 마음의 일치가 이뤄지면 우린 천하무적의 관계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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