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호 농촌진흥청 수확후관리공학과장

무세미 보급은 쌀을 씻지 않고 밥을 지을 수 있어 
주부와 식당종사자들의 일손을 덜어줘 환영 받고
쌀 씻는 물 절약해 수질오염 줄여주는 효과도…

우리나라 미곡종합처리장(RPC)은 1991년 경북 의성과 충남 당진에 국고보조로 RPC 표준모델을 설치하면서 시작됐다. 2017년 현재 전국 쌀 생산지역에 골고루 설치돼 있으며 214개 경영체에서 운영하고 있다. 실제 설치 수는 이보다 많지만 효율적인 운영을 하기 위해 통폐합했기 때문이다.

RPC는 벼농사를 짓는 농업인들의 수확후처리작업을 크게 줄여주고 고품질 쌀을 생산하는데 기여하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 RPC는 벼 수확후처리의 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 각 농가에서 개별적으로 건조하고 저장하던 것을 기술이 확보된 시설에서 함으로써 벼 품질관리는 고도로 발전했다. 표준화된 시설과 도정 방법 덕분에 쌀의 품질이 높아진 것은 당연하다. 

이 혁명적인 RPC사업이 보급된 지 어느덧 30년 가까이 접어들고 있다. 흐른 세월만큼 기술 또한 비약적으로 발전했으나 아직 미흡한 부분도 있다. RPC의 기본 공정은 건조, 저장, 도정으로 나뉜다. 그동안 건조와 저장기술은 기술 투자를 꾸준히 해 일정 궤도에 올랐지만 도정기술은 그렇게 보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자료에 따르면 현미기, 정미기, 연미기(무세미기)의 기술 수준은 아직 벼 도정의 선진국인 일본 기술보다 떨어진다는 것이다. 도입 당시 사용하던 기술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곳도 적지 않다. 기술 발전이 느린 이유 중에 하나는 수요가 적어 기술투자를 꺼려하기 때문이다. 한편, 최근 통계에 의하면 2016년 현재 1인당 쌀 소비량이 61.9kg으로 쌀 소비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럴 때 밥맛 좋은 쌀이 생산된다면 쌀 소비 촉진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물론 밥맛은 쌀 품종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치겠지만 수확후 가공기술도 적지 않게 영향을 미친다. 새로운 가공기술이 현장에 도입돼 고품질 쌀을 생산한다면 쌀 소비 하향 곡선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가운데 최근 고효율 정미기와 무세미기(쌀을 씻지 않고 물만 부어도 밥을 할 수 있는 쌀 가공기계)를 국산화하는데 성공했다. 이번에 개발한 절삭형 정미기는 미세한 칼날을 이용해 벼를 도정하는데, 금강롤러에 의한 연삭식에 비해 도정 후 곡온 상승이 15℃ 이하로 낮아 쌀의 품질변화가 일어나지 않고, 도정효율은 높아 기존 연삭식에 비해 30% 이상의 비용이 절감된다고 한다. 그동안 수입에 의존하던 것을 국산화한 것도 의미가 있다. 건식 무세미기는 물을 사용하지 않고 쌀을 연마하는 방식으로 수질오염을 줄여 환경적이다. 

이 기술과 더불어 농촌진흥청은 쌀 소비활성화를 위해 지난해부터 TOP5 프로젝트로‘밀가루 대체 쌀가루 소비활성화’과제를 추진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의 요지는 가공용 쌀 품종 개발, 건식 분쇄기술(쌀을 불리지 않고 분쇄하는 기술), 그리고 원료곡으로 다양한 가공식품을 개발하는 것이다. 이 가운데 건식 쌀가루 분쇄기는 바로 생쌀(건식)을 분쇄하기 때문에 물에 불렸다가 수분을 제거한 다음 롤밀(Roll mill)로 쌀가루를 가공하는 습식용 쌀가루 생산 방법에 비해 비용을 절반 수준으로 낮출 수 있다. 

이와 같이 쌀을 씻지 않고 바로 가공할 수 있는 무세미와 건식 쌀가루 분쇄기의 조합은 환경오염을 줄여주고 쌀 소비를 활성화하는데 크게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기술들이 현장에 보급됨으로써 얻어지는 효과는 뭘까? 가장 먼저 씻지 않고도 밥을 지을 수 있어 주부들을 비롯해 식당 종사자들의 일손을 덜어줄 테니 환영을 받겠다. 쌀 씻는데 들어가는 물은 절약되고, 쌀뜨물처럼 버려지는 물이 없으니 수질오염을 줄여주는 효과도 기대해볼 수 있다. 밀가루처럼 쌀가루도 마트나 시장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다면 집에서도 다양한 쌀 가공식품을 만들어 먹을 수도 있을 것이다. 새로 개발된 기술들이‘밥맛’을 높여 쌀 소비 확산에 도움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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