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영덕의 한 시골 마을회관. 흡사 잔칫집처럼 왁자한 웃음소리가 처마를 들썩인다. 점심식사를 위해 마을 어르신들이 삼삼오오 모여들고, 회관 주방에선 식사 준비를 하는 부녀회원들의 손길이 부산하다. 생선을 굽고, 찰진 쌀밥에 도토리묵, 콩나물 무침, 텃밭에서 막 솎아온 상추며 풋고추가 한 상 가득 차려진다. 상차림이 그닥 화려하진 않지만 빙 둘러앉아 점심상을 받는 스무명 남짓한 마을 노인들의 얼굴엔 행복에 찬 웃음이 가득 가득 넘쳐난다. 이 마을 노인들은 지난 해부터 일주일 중 일요일을 제외한 6일간 이렇게 마을회관에 모여 함께 마을 부녀회원들이 차려주는 점심상을 받는다.

이 모습은 지난 해부터 영덕군이 노인 돌봄 문제 해결을 위해 시행하고 있는‘밥상공동체’사업이다. 특히 갈수록 심화돼 가고 있는 고령화와 독거노인들의 돌봄 문제에 대한 고민에서 이 사업을 시작하게 됐노라고 군 측은 추진 배경을 밝혔다.

이 사업의 시행 덕에 평소에는 홀로 집에서 끼니를 해결해야 했던 노인들이 건강밥상을 받으면서 몸ᆞ마음 두가지 건강을 모두 챙기게 됐다. 더 나아가 밥상머리 소통으로 마을 주민간의 화목까지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두고 있다. 마을 이장이란 이는“전에는 요양원으로 가는 마을 어르신들을 자주 봤는데, 요즘엔 그런 곳에 가는 어르신들이 없다. 한 끼 식사 대접이 어르신들에게 건강과 사회안전망, 마을 화목까지 챙기는 최고의 복지가 되고 있다”며 싱글벙글 이다.

이 밥상공동체와 같은 우리 민족 고유의 공동체 조직이 예전에도 있었다. 바로 두레다. 이 두레는 논농사가 많은 지역( 주로 중남부지방)에서 한 마을의 성인 남자들이 서로 협력하며 농사를 짓거나, 부녀자들이 서로 도와가며 길쌈을 하던 공동의 노동조직 이었다.

두레에 의한 공동노동은 주로 모내기, 물대기, 김매기, 벼베기, 타작 등 농사 경작 전과정에 걸친 것이었다. 특히 일시적으로 많은 사람의 품이 요구되는 모내기와 김매기에는 거의 반드시 두레가 동원 되었다. 또한 마을의 공동잔치로 풋굿이나 호미씻이(백중놀이)와 같은 논농사 이후의 놀이도 하였다. 대체로 조직 구성원들이 모여 음식과 술을 나누어 먹고 농악에 맞추어 흥겹게 놀면서 농사로 인한 노고를 풀기도 했다.

그러나 이 두레도 토지사유화 확대와 화폐경제의 발달로 그 원형이 없어졌다. 게다가 농삿일 거의 모든 과정이 과학영농이란 이름으로 기계화 돼 전에는 사람 품이 들던 일을 기계가 대신해 준다. 모내기는 이앙기가, 벼베기와 타작은 콤바인이 썩썩뚝딱 깔끔하게 마무리 해 주니,이제 농삿일에서조차 사람 정 붙일 곳이 없는 세상이 됐다. 그나마 밥상공동체라도 훈훈하게 살려내고 있다니, 아직은 시람 살 맛 나는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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