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료상업주의의 민낯 - 한국의 의료제도, 어디로 가고 있나?

의료서비스, 상업화보다 생명 윤리에 입각해 접근해야

돈이 된다면 뭐든 팔아치우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건강·의술 역시 하나의 상품이 된지 오래다. 초대형 대학병원들은 첨단 장비와 고급 인력, 시설을 무기삼아 환자들을 끌어들인다. 농어촌은 말할 것도 없고 섬의 환자들까지도 초대형 대학병원으로 몰린다. 목숨과 건강이 달린 환자들을 결코 탓할 수 없는 의료구조다. 개업 의사들 또한 무한경쟁 환경이다보니 의료 사업가로 변신했다. 어쩌면 최소 투자로 최대 이윤을 창출하려는 자본의 논리가 가장 첨예하게 드러나는 곳이 의료계일 것이다. 

경제 논리가 아닌 환자 중심의 평등한 의료서비스 제공돼야
최상의 의료서비스를 제공받는 이들은 몸이 아픈 사람들이 아니라, 돈이 많은 사람들이다. 병원은 이미 그들이 제공하는 서비스에서 최소한의 생명윤리와 합리성, 공공성을 상실했다. 이런 의료현실이다 보니 환자들은 환자들대로 돈과 시간과 불편을 감수해야되고 의료인들은 또 그들대로 힘들고 어렵다며 아우성이다.

지금 같은 의료제도와 환경에서 모든 환자들이 평등한 의료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환자들은 병원 문턱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철저한 경제 논리에 의해 구분된다. 환자가 지불하는 진료비에 따라 보험과 비보험 진료, 특진(지정 진료)과 일반 진료로 차별된다. 돈을 더 지불할 수 없는 환자들은 신약 투여와 첨단 장비, 신치료술 이용이 제한된다. 최소한의 비용으로 환자를 낫게 한다는 이념은 이윤 추구라는 더 큰 목적 아래 무너져 내린다. 

불필요하고 반복적인 검사가 일방적으로 시행되며, 진료의 효율화라는 명목 하에 환자들은 검사실과 진료실을 전전한다. 이 과정에서 겪는 소외와 비인간화, 진료비에 의한 차별은 환자의 몸뿐 아니라 마음까지 병들게 한다. 

물론 경제 논리 아래 현대의학이 눈부시게 발전한 것은 사실이다. 신약 개발과 신치료술, 첨단 의료장비의 개발, 병원환경 개선은 의료계의 수요에 의해 이뤄졌다. 양질의 의료서비스 역시 환자들의 요구에 의해 제공된다. 특히 첨단의학의 발달은 자본과 기술의 집적이 없었다면 불가능하다.

그러나 필요한 곳이 아닌 가장 많은 이윤을 창출하는 분야에 집중되는 자본의 논리는 의료계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생명을 위협하지만 수요는 적은 희귀병의 치료제 개발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희귀병 치료제 개발 같은 기초의학 분야보다 비만 클리닉이나 미용 성형, 노화클리닉에 더 많은 의료 인력과 자본이 몰려든다. 산부인과, 외과 등의 정통 메이저과의 전문의들조차 전문과목의 간판을 내리고 미용·성형, 비만 클리닉으로 간판을 바꿔달고 있는 실정이다. 제도가 현실과 맞지않다보니 일어나는 기형적인 모습이다.

상업주의는 현대사회의 모든 분야에 만연해있다. 의료계에만 높은 윤리적 잣대를 요구할 명분은 없다. 그러나 의료서비스가 생명윤리에 입각해 다른 상품과는 다른 특수성을 갖는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의료서비스는 강한 공공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국가가 직접 나서 건강보험제도와 의료보호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우려스러운 부분에 대한 안전장치도 없이 의료산업의 경쟁력 강화라는 명목하에 갈수록 상업화가 심화되고 있다. 예컨데 민영 의료보험 시장을 활성화해 과잉진료, 보험사기, 의료비 급증 등 또 다른 많은 문제점들을 야기하고 있다. 의료의 특수성과 공공성이 점점 더 무색해지고 있다. 

무엇이든 사고파는 시장 논리에 건강과 의술마저 하나의 상품이 됐다. 그러나 건강과 생명까지 일부 돈 많은 계층의 전유물이 돼선 안 된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큰 병에 걸리면 진료비와 치료비부터 걱정한다. 환자가 한 가정의 가장이라면 가족의 생활비와 생계비까지 걱정해야 한다. 아픈 것도 서러운 일인데 경제적 부담마저 떠안은 환자에게 빠른 회복을 기대할 수는 없다. 

민낯은 진실과 사실의 다른 말이다. 아프면 돈부터 걱정해야하는 세상은 좋은 세상이 아니다. 상업주의가 지배하는 이 시대 의료 현실의 서글픈 민낯이다. 확인하고 싶으면 지금 당장 초대형 대학병원엘 가서 보라. 진료비와 검사비, 수술비를 수납하지 않고도 진료를 받고 검사나 퇴원할 수 있는지…. 
전국 각지에서 얼마나 환자들이 몰려들고 있는지. 누구를 위한 의료제도인지, 한국의 의료제도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하루만 살펴봐도 알 수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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