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아흔넷에 접어드신 할머니와 며칠 동안 함께 지내면서 살아온 인생에 대해 얘기 들은 적이 있다.

일제의 수탈이 극에 달하던 1940년대 초반 할아버지의 징용을 피하고자 걸어서 경북 영주에서 만주까지 가셨던 일, 만주에 도착했지만 중국인들의 갖은 핍박과 괴롭힘 당한 일들, 그곳에서 얼기설기 지어 다 쓰러져 가는 집의 틈 사이로 뼈가 시릴 정도로 불어대는 겨울바람의 냉기, 광복 후 몇 년 뒤에 일어난 6·25전쟁에서 고향 땅에 들이닥친 공산당한테 총살 당할 뻔 했던 일,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이루 말할 수 없는 배고픔을 이겨내려고 집에서 만든 손두부를 머리에 이고 매일 수십리 길을 걸어 6남매의 끼니를 해결했던 일까지.

그동안 교과서나 TV를 통해 보고 들어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지만 할머니가 직접 겪었던 일들이라고 하니 이야기 하나하나가 가슴 속에 절절히 와 닿았다. 글이 아닌 말로 해주신 어쩌면 할머니의 자서전인 셈이다.

최근 본지가 하고 있는 ‘농촌여성 자서전 쓰기’ 특강 역시 이와 일맥상통한다. 평범하지만 성실하게 본인의 영역에서 불철주야 일해온 우리들의 할머니, 어머니들이 쓰는 자서전은 더할나위 없는 위대한 유산이다.

자서전은 위대하고 특별한 이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이 땅의 어떤 세대보다 고난과 역경의 시간을 견뎌 왔던 할머니와 같은 이들의 자서전은 그 어떤 위인전보다 더 큰 마음이 울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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