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칼럼
잊혀져 가는 여름 풍정박광희 칼럼 -누리백경(百景) ⑨
박광희  |  history814@hanmail.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7.08.11  12:50:07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나른한 한여름 대낮, 널따란 한옥 대청마루 한가운데에 젊은 사람 서넛이 돗자리를 깔고 그 위에 누워 죽부인(竹夫人)을 끌어 안은 채 까끌한 모시베개를 베고 낮잠을 청한다. 서늘서늘한 바람은 처마 끝에 맴돌고, 매미·쓰르라미 소리만이 한낮의 정적을 깨운다.
이 괴이쩍은 모습은 서울 남산골 한옥마을이 도시민들을 대상으로 진행하고 있는‘남산골 바캉스-오수체험’, 즉 낮잠체험 프로그램 모습이다.
우리의 옛 선인들의 여름나기 모습을 재현해 보는 것이다. 

앉거나 눕는 좌식·와식 생활구조로 되어 있던 우리 전통사회의 옛 생활양식에서 돗자리는 빼놓을 수 없는 일상의 주거용품 이었다. 한옥의 대청마루나 냉골 방바닥에 깔아놓고 땀을 들일 때의 그 매끈하고 서늘한 감촉이라니… 재질인 왕골 특유의 보드랍고 꺾이지 않는 촉감은 그 어떤 깔개도 대신해 주지 못했다. 그래서 아무리 가난할지라도 결혼할 때에는 신행(新行) 짐 속에 돗자리 한 잎은 꼭 챙길 만큼 단순 풍류를 넘어선 그 이상의 가치를 부여했다.
대청마루 바닥에 돗자리를 깔고는 문간엔 발을 내걸었다. 이 발은 햇빛을 차단하는 그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어른어른 얼비치는 이 발에는‘꿈 같이 반쯤 본다’,‘산처럼 물리쳐 두고 본다’는 정신적 미학이 숨어 있다.

그 발 속에 모시옷을 입은 여인이 있고, 버선발이라도 얼비치게 되면 더할 수 없는 시정(詩情)을 느끼게 해 준다. 그리하여 우리 옛 선인들은‘주렴 속에 반월(半月)이 숨었다’고 읊기도 했으니, 이 모두가 눈의 호사요 복이었다. 우리 전통 유교사회의 고집적인 내외법이 숨어있는 것도 발의 미학이었다.
뿐이랴. 생활여유가 좀 있는 반가에서  한 여름에 사랑채에 장만해 모셔두던 것이 죽부인이었다. 죽부인은 잘마른 황죽 대나무 가지를 참숯불에 지져가며 얇게 다듬어 얼기설기 엮어가며 구멍이 나도록 성글게 짜서 원통형으로 만든다. 길이는 대략 넉자 반(약 1.3미터)에 원통의 지름은 한 아름 정도다. 이 죽부인에 삼베 홑이불을 씌워 흡사 사람 몸통처럼 만든 다음 품에 품고 잔다. 이 죽부인을 가슴에 품고 한 다리를 척 위로 걸치고 자노라면 허전함을 덜 뿐 아니라 원통 속으로 솔솔 스며드는 소슬한 바람이 스르르 숙면에 빠지게 한다. 

이 죽부인 만큼은 부인 대용품이라 의인화해 ‘죽부인’이라 일렀고, 특히 아버지의 것을 아들이 절대 사용하지 않는 보이지 않는 범절도 있었다.
돗자리·발·죽부인 못지 않게 한여름에 챙겼던 선비들의 필수품이 부채였다. 예전 왕조시대에 전라감영에서는 부채를 만드는 공방인 선자청을 두고 최상품의 부채를 만들어 음력 오월 단오 전까지 왕실에 진상을 하면 오월 단오때 왕이 신하들에게 그 부채를 나누어 주는 풍습이 있었다. 이를 단오선 이라고 했다. 고작해서 대나무 살에 한지를 붙인 이 부채가 바람은 하찮지만 유장한 선비의 여유와 정서를 느끼게 해 주었다.

그러나 이 모두가 현대 기계문명의 저 뒷전으로 밀려나 시나브로 그 명맥이 끊겨가고 있으니, 아쉬움만 절절할 뿐이다.

박광희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수원시 권선구 수인로 43-23 길전빌딩4층(서둔동 9-36)  |  대표전화 : 031-294-6166~8  |  팩스 : 031-293-6166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유미
농촌여성신문의 모든 컨텐츠(기사)는 저작권법 보호를 받으며, 무단복제 및 복사 배포를 금합니다.
Copyright © 2013 농촌여성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rw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