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태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

농업생산과 농산물 교역환경 
변화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것이 ‘포스트 FTA’ 시대를 
규정짓는 기준이 될 것이다.

하늘․땅․사람이 조화로운
농업․농촌․농민을 유지하는 게
포스트 FTA시대를 대비하는
첫걸음이다.

▲ 지성태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

2004년 4월 1일 한·칠레 FTA가 발효되고 10년이 훌쩍 넘었다. 이후 업계마다 온도차는 있었지만 사회 전체적으로 마치 FTA가 글로벌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유일한 대안인 것처럼 인식되면서 FTA 체결에 몰두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농업부문에서만큼은 신규 FTA를 체결할 때마다 작지 않은 마찰을 겪어야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식량자급률이 30%에도 미치지 못해 수입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에서 FTA가 그나마 유지하고 있는 농업 생산기반마저 위태롭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FTA 체결국 중에서도 농산물 주요 수입대상국(경제권)인 EU, 미국, 중국, 영연방 3개국(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등과의 FTA 체결 시 농업계는 긴장해야 했다. 이처럼 FTA 경제영토가 확대돼 전체 수입농식품 중 80% 이상이 FTA 체결국에서 수입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앞으로 다수의 신규 FTA가 추가로 추진될 예정이다. 한·중미 FTA가 실질적으로 타결됐고, 한·중·일, RCEP, 한·이스라엘, 한·에콰도르 FTA가 협상 중에 있다. 현 시점에서‘포스트 FTA’를 논하는 것이 시기상조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한·칠레 FTA를 포함한 한·싱가포르, 한·EFTA, 한·아세안 FTA 등은 발효된 지 이미 10년이 지나 그 효과가 제한적이다. 또한 발효 6년차를 맞는 한·미 FTA의 경우 미국측이 개정협상을 요구하고 있어 이에 대응한 새로운 전략을 수립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리고 최근 4차 산업혁명이 분야를 막론하고 미래 발전의 중요한 트렌드로 부각되면서 농업부문에도 획기적인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빅데이터, 스마트 기술 등을 활용한 4차 산업혁명은 농업의 생산단계서부터 가공·유통단계는 물론 국제 교역에 이르기까지 가치사슬(value chains) 전체에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아마도 현재 우리 농업이 당면하고 있는 농업인 고령화에 따른 노동력 부족, 자연재해와 가축질병 발생에 따른 수급 불안정, 생산비 상승에 따른 수익성 저하 등의 문제를 해소하고, 소비 트렌드를 파악해 농식품 소비를 촉진하고 부가가치를 높이는데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국제 농산물 교역부문에서도 국가별, 지역별 생산·유통·소비분야를 모두 아우르는 빅데이터를 활용해 거래처, 가격과 품질, 유통채널 등에서 맞춤형 거래가 이루어짐으로써 수출국 생산자, 수입국 소비자, 유통업자 등 모든 이해관계자의 효용이 극대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은 아직까지 그 실체가 불명확하고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이기에 농업분야와 농산물 교역부문에 미칠 파장에 대해 현재로선 예측하기 어렵다. 이는 수입개방을 표방한 FTA가 수입국 소비패턴 변화와 생산량 감소, 수출국 수급여건 변화, 비관세조치, 정치·외교 이슈 등 다양한 요인과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그 순효과를 가늠하기 어렵다는 점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앞으로 농업 생산과 농산물 교역의 환경이 변화할 것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것이 바로‘포스트 FTA’ 시대를 규정짓는 기준이 될 것이다. 이러한 시대를 맞아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인간의 노동으로부터의 소외’라고 본다. 즉, 경제활동에서 생산성, 효율성, 편리성만을 강조하다보면 그 과정에 내포된 노동의 가치가 경시될 수 있다. 소위 삼농(농업, 농촌, 농민) 중에서 농민이 기계 혹은 자동화 설비에 의해 대체되면 공간적 의미로서의 농촌은 소멸하고, 다원적 기능을 가졌던 농업은 단순히 농산물만을 공급하는 산업으로 전락할 것이다. 하늘(天)과 땅(地), 그리고 사람(人)이 조화를 이룬 농업·농촌·농민을 유지하는 것이 포스트 FTA 시대를 대비하는 첫걸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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