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자수필 - 귀농아지매 장정해 씨의 추억은 방울방울

엄마가 되는 일은 
평생 동안 계속되는 일이고 
끊임없이 자신을 바꿔가는 일…
생명의 연결고리가 되는 
인류의 가장 위대한 일… 

요새 친구들에게서 손주의 출생을 알리는 소식을 자주 받는다. 사연도 가지가지다. 결혼도 포기하고 아이도 낳지 않는 그런 세태 속에서 참 반가운 소식이다. 모두와 축하와 격려의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내게도 30개월 된 손자가 있으니 오래 지 않은 출산의 감동이 살아있다. 둘째 딸의 출산은 대체로 순조로웠다. 

출산 전 날까지 회사에 출근했고 예정일새벽에 병원에 가서 오전에 자연분만으로 3.9㎏의 손자를 낳았다. 그리고 산후조리원에 가서 한달 동안 몸을 추스르고 집으로 돌아왔다. 우리 집안에 거의 30여년 만에 처음으로 만난 새 생명, 거의 기적과 같이 신비로운 존재였다. 너무나 오랜만에 만난 감동이라 평생 잊을 수 없는 얘기가 되나보다. 딸은 아이를 낳고 젖을 먹이며 자주 문자를 보냈다. 엄마도 나를 이렇게 낳고 길렀을 것을 이제야 알겠노라고, 고맙고 사랑한다고,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지만 아이를 낳고 보니 철이 드는 것 같고 살아가는 힘이 되는 것을 알았다고, 눈물어린 고백을 한다.

나도 내 엄마에게 이런 철난 고백을 했던 적이 있었던가? 내가 중학교 때였나? 사춘기를 겪으며 외모에 관심이 많았던 때였나 보다. ‘엄마는 왜 나를 이렇게 못생기게 낳았어? 피부도 검고, 키도 작고, 오리 궁둥이에다, 스타일도 없고, 형제도 없고, 엄마는 키도 크고 살결도 희고 늘씬한데….’ 엄마는 가만히 대답했었다. ‘아이고, 그러지 말거라. 내가 결혼하고 첫 아들을 가졌는데 거꾸로 들어앉아서 낳다가 사산을 했다 아이가. 그리고 너를 낳은 기라. 종갓집 맏며느리가 아들을 낳아야 해서 네 밑으로 임신한 것이 자궁외 임신이 돼서 병원에서 적출 수술을 한기라. 그래서 너 하나 밖에 없는 거지. 내 사주에 자식이 없단다. 그나마 딸이라도 하나 건진 건 천운(天運)이라. 나는 니가 내게 태어나 내 자식이 된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하고 고맙다. 니가 어디가 못 생겼노? 아빠와 친할머니를 닮은 친탁을 해서 그런 거지. 자식이 부모 닮는 것이 가장 잘 생긴기다. 안 그렇나?’ 엄마는 나를 안고 등을 토닥여 줬다. 그 후로 나는 다시는 출생에 관해 묻지 않았다. 그것이 엄마에게 얼마나 큰 상처인지를 알게 됐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결혼할 때는 결혼 그것에 대해선 관심이 많아도 출산과 육아, 자녀교육 등 결혼이 바로 생명의 둥지를 만들어가는 일이란 점에 대해 무지했던 것 같다. 결혼하면 집을 사고 살림을 키우는 일에만 열심이었고 자식은 으레 낳고 키우는 정도로만 생각했었다. 

나는 첫딸을 난산으로 어렵게 출산하고 한 달간 병원에 누워있어야 했다. 2인 병실에 계속 입원해 있는데 2박3일 일정으로 옆자리의 산모는 계속 바뀌었다. 첫 아들을 낳고 둘째로 딸을 낳았는데도 딸이라고 와보지도 않는 시댁식구 때문에 산모가 울어서 눈이 퉁퉁 붓고, 가난한 가정에 아기가 체중미달로 태어나 인큐베이터에 들어가 경제적으로 고민하는 산모, 산후우울증으로 정신과로 가는 산모 등등 한 달 동안 병실에 누워 이런저런 사연을 보고 들으며 나는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자식을 몇 명씩이나 낳아 기르는 선배 엄마들이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나 역시 결혼할 때만 해도 나만 잘나면 그만이었다. 그리고 성실하게 살면 됐다. 이렇게 자기중심적 사고와 가치를 가지고 살다가, 결혼하고 내 몸을 찢어 생명을 걸고 자식을 낳고 일상을 떠나 홀로 고립된 한 달 동안의 병실에서 나는 정말 무엇이 중요한 것이며, 그 새 생명을 통해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정말 새롭게 생각하게 됐던 것 같다. 

인생은 머리로 배우는 일보다 몸으로 배우고 마음으로 깨닫는 일이 진짜인 것을 알게 됐다. 엄마가 되면 자식만 보인다는 것, 진짜 사랑을 하게 된다는 것도 배웠다. 엄마가 되는 일은 평생 동안 계속되는 일이고 끊임없이 자신을 바꿔 가는 일이며, 생명의 연결고리가 되는 인류의 가장 위대한 일임을 알아가는 일인 것을 지금도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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