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덕의 농담(農談)<40>

최근 도시민들의 귀농귀촌이 활발하다. 이들 중에는 성공적인 농촌정착으로 제2의 인생을 사는 이도 있고, 낯선 환경에서 어려움을 겪는 이도 있다. 본지는 재밌는 한상덕 씨의 생생한 귀촌일기 연재를 통해 후배 귀농귀촌인들의 시행착오를 덜어줄 지름길을 알려주고자 한다.

잔걱정이 잦으면
행복은 그만큼 멀리 간다
빈 마음으로 살다보면
내일이 또 온다…

축제 연출 관계로 2주 이상 집을 비웠더니 방울토마토는 성장을 멈췄고 고추는 녹색을 잃어버렸다. 호박잎은 누렇게 병들었고 올해 오이 농사는 포기 직전이다. 긴 가뭄에 개의치 않고 녹음은 여전히 짙어가건만 작물은 생기를 잃었고 무심한 햇빛은 맨살을 드러내고 있다.
지하수일 때는 잘 몰랐었는데 수돗물을 사용하고 보니 밭작물에 물을 주는 일이 보통 눈치가 보이는 게 아니다. 마르면 안 쓰고 넘치면 사용하는 물이 아니라 군민이 함께 사용하는 생명수이기 때문이다.

주인의 발자국 소리에 맞춰 농작물이 자란다더니 빈말이 아니다. 집을 비운 티가 줄줄 나고 해야 할 일이 차고 넘친다. 살아가는 의무를 가능한 줄이려고 선택한 귀농인데 할 일이 산더미 같고, 자식 같은 밭작물이 타들어가니 내 마음도 동시에 타들어간다.

삶의 질을 따질 때 한국인이 꼽는 최우선적 조건 중 하나가 ‘안전’이란 서울대 의대 연구진의 자료를 읽고 보니 묘한 생각이 든다. 집을 비운 적이 한 두 번이 아니고, 그동안 어떤 일이 일어나지 않았음에도 끊임없이 집 걱정을 하지 않았던가. 할매 친구들이 도시 아파트 경비원들처럼 집 앞 쉼터에서 버티고 있고, 누군가가 탐낼 물건도, 없어지면 안 될 물건도 없는 터에 무어 그리 걱정할 일 있다고 말이지.

행복을 지키고 가꾸는 데는 ‘안전’보다 진취적 도전이나 모험적인 선택이 더 필요하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중남미 국가들이 경제 수준 대비 높은 행복감을 보이는 건 그래서란다. 우리들에 비해 여유가 넘치고 잔걱정에 사로잡히지 않기 때문이라고 들었다. 주저하지 않고 열정적이고 숨김없이 자신을 드러내기 때문이란다.

그런데 우리네 삶은 어떤가. 생기지도 않을 걱정과 불안으로 삶의 절반 이상을 보내고 있지 않은가. 해결할 수 없는 자식 걱정에, 밤새 이야기해도 끝나지 않는 나라 걱정에 한시도 마음 편할 날이 없질 않던가. 심야 밤거리가 자유로운 몇 안 되는 나라에 살면서도 늘 불안해하고 말이지. 

가뭄으로 바짝 말라버린 밭작물을 보고 안타까워하는 나를 보고 할매 친구들이 허허롭게 웃으며 말한다. 한 해 잘 될 때 있고 한 해 못 될 때도 있다고. 어느 해에는 농사가 잘되고 어느 해에는 농사가 못 될 터이니 걱정할 일도 좋아할 일도 아니란다.
그래, 맞는 말이다. 입안에 있는 혀도 깨물릴 때가 있는 법. 잔걱정이 잦으면 행복은 그만큼 멀리 간다고 하질 않던가. 오늘 그저 비어있는 마음으로 살다보면 내일이 또 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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