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자수필 - 귀농아지매 장정해 씨의 추억은 방울방울

"은금화의 진한 향기가
그 시절 치자꽃 피었던
머무르고 싶은 순간으로
돌아가게 했나보다…"

10여 년 전 서울 살 때 우린 꽃시장엘 자주 가곤 했었다. 지난 일요일 서울 간 김에 남편을 따라 양재동 화훼공판장에 들렀다. 비닐하우스 화훼동쪽보다 그 언저리에서 파는 야생화 모종가게를 둘러보다가 우리집 농원 입구 조그만 꽃밭이 생각났는지 남편은 화분 몇 개를 골라 보란다. 사실 시골에도 꽃은 많은데 구태여 이름도 잘 모르는 꽃을 사야하나 망설이다가 분홍색 꽃이 여러 개 달린 작은 화분과 애플민트 하나를 골라 나오는데 뭔가 익숙한 향기가 코를 스친다.

하도 여러 가지 꽃들이 피어서려니 뒤돌아보지도 못하고 바쁜 걸음으로 양재동을 나와 괴산집으로 향했다. 작년에 은금화 꽃잎으로 차를 만들어 볼까 해서 집 앞뒤로 몇 그루 심었더니 요즘 집에는 막 피기 시작하는 은금화가 가는 곳마다 향기를 토해낸다. 그 꽃 한 송이 따려는 순간 아까 양재동 화훼공판장에서 스친 향기가 뭔지를 은금화의 진한향기가 말해주었다. 아! 치자꽃었구나~~

1974년 5~6월경 사범대 국문과 4학년의 늦은 봄, 나는 모교인 진해여중으로 교생실습을 나갔었다. 내 딴에는 이것저것 준비하고 신경 써온 가슴 떨리는 4주간의 실습시간이었다. 첫날 수업을 치르고 둘째 셋째 날이 지나도 별 반응이 없었다. 내가 중고등학교 시절 교생 샘은 얼마나 인기가 좋았었던가! 일주일이 다 됐어도 조용하기만 했다.

다른 과목 교생 샘에겐 아이들이 교무실로 찾아오고 하는데 나는 영 인기가 없는 것이었다. 수업시간에 아이들은 교과서 수업보다 질의응답이 많았다. 무슨 꽃을 좋아하냐, 무슨 색을 좋아하냐, 혈액형은 뭐냐, 무슨 음식을 좋아하냐, 무슨 책을 좋아하냐, 미팅은 해봤냐, 연애는 해봤냐 등등 나는 순순히 대답했고 대부분 그 또래가 읽을 만한 책을 소개하고 또 줄거리를 들려주기도 했다. 수업은 그런대로 잘 들어줘 고마웠는데, 한 주간이 끝났음에도 아이들은 내게 전혀 곁을 주지 않았다. 다음 주에는 어떻게 해야 하나, 나는 선생소질이 없는 걸까? 아이들과 친해지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이 됐었다.

둘째 주 나는 일찍 출근해서 수업내용도 점검할 겸 자리에 앉아 펜을 꺼내려고 철제 책상 서랍을 쑥 당겼다. 그 순간 나는 꽈당 소리를 내며 의자에서 벌렁 나자빠졌다. 정신이 혼미해졌고 멀리 계시던 선생님 몇 분이 달려오셨다. 그 서랍 속엔 치자꽃잎이 한 가득 들어차 있었고 갇혀있던 그 센 향기의 폭발이 온 교무실을 뒤덮었었다. 며칠 전 수업 중에 무슨 꽃을 좋아하냐는 물음에 치자꽃이라 말한 것 밖에 없는데, 순진한 교생 한사람이 모교에서 순직할 뻔 한 것이었다.

나 또한 그러하지만 지나고 보니 원래 경상도 아이들은 자기 맘을 금방 드러내지 못한다. 사귐에도 뜸 들이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었다. 그 소문이 퍼지면서 아이들이 등교 전 우리집 앞에서 기다리기 시작했고 수업 마치는 종이 울리기 무섭게 몰려왔다. 쪽지 편지에, 고민 상담에, 지난 밤 제사를 지냈다고 가져온 신문지에 싼 백설기에 활자가 까맣게 박힌 떡, 엄마 몰래 따온 애호박에, 학부모가 정성껏 싸 보낸 달걀 꾸러미.

그 때 시골중학교 교생이 받을 수 있는 모든 관심과 사랑과 마음을 누리면서 나는 교생실습을 행복하게 끝낼 수 있었다. 실습을 마치고 떠나는 날 오전, 학교에서 작별을 하고도 아이들은 교장선생님의 허락을 받아 삼랑진역까지 따라와 이별의 눈물로 울며불며 헤어졌다. 다음 해 나는 부산에 있는 중학교로 발령을 받은 후에도 아이들과 오랫동안 소식을 주고받았다.

내가 다닐 때 진해여중고는 교문이 하나였다. 교문에 들어서면 약 500m 쯤 일직선으로 뻗어 있는 등교길 양옆으로 교목(校木)처럼 치자나무가 쭉 심겨져 있어서 꽃이 필 때는 그 향기가 학교 근처 동네까지 흘러 넘쳤었다. 그 길에서 왼쪽 건물은 여고였고 오른쪽 건물은 여중이었다. 중고등학교 6년을 걸었던 길에서 그 치자꽃 향기를 잊어버리기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오늘 꽃 생김새는 아주 달라도 이 은금화의 진한 향기가 그 시절 치자꽃 피었던 머무르고 싶은 순간으로 돌아가게 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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