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프로그램에 ‘영계’, ‘꿀벅지’ 단어 사용 양성평등에 어긋나

▲ 남성 육아를 다룬 프로그램인 '슈퍼맨이 돌아왔다'의 육아장면(KBS 자료 사진 )

#아빠 육아를 다룬 ‘슈퍼맨이 돌아왔다’, 남자의 주도적 가사활동이 주요 소재인 ‘살림하는 남자들’ 같은 방송 프로그램은 변화하는 남성과 여성의 역할을 다룬 프로그램들로 성 역할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양성평등 관점의 좋은 프로그램들이다. ‘살림하는 남자들’은 기획의도에서부터 ‘이젠 자의든, 타의든 남자도 살림살이에 참여해야만 안정적인 가정을 지켜갈 수 있는 시대’라 밝히고 있다. ‘꽃보다 할배’ 프로그램에서는 남녀가 함께 저녁 준비를 하고, 식사 자리 배치도 식사 준비에 가장 수고를 많이 한 여성을 정중앙에 앉게 해 서열 중심 문화를 넘어서는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반면에 아직 일반 드라마의 식사 장면에서는 남성 가장은 화면 정중앙에, 자녀들은 그 양 옆에 순서대로 앉는 좌석배치여서 가부장적 서열문화가 가정문화의 중심으로 자리 잡는데 영향을 끼친다.

‘양성평등문화 확산을 위한 방송 프로그램 제작 가이드라인 개발 안내서'가 나왔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국내외 양성평등 방송 제작 관련 규정과 방송 프로그램 모니터링 사례를 검토하고 실무자 전문가 자문을 거쳐 제작했다.

방송은 성평등의 가치를 제대로 담아내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남성과 여성에 대한 그릇된 고정 관념을 깨뜨리거나, 여성이 처한 현실의 불평등을 바로잡는 데 영향력을 발휘하기보다 오히려 이를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는 걱정의 목소리도 높았다. 더 우려되는 점은 방송에서 보여지는 잘못된 성 고정관념과 성 상품화는 일반 성인뿐 아니라 자라나는 아동·청소년의 성역할 사회화에 큰 영향을 미치기에 뉴스, 토론, 교양과 예능 프로그램 등을 망라해 양성평등 관점이 배제되지 않아야 한다. 언어에 집중된 성차별 문제를 넘어 성별 임금격차, 불평등한 사회적 대우 등 사회적 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여 차별해소와 인권보호에 앞장서야 할 책임이 방송에 있기 때문이다.

안내서는 방송사와 제작진이 방송을 제작할 때 준수할 사항을 ▲주제 선정 시부터 양성평등 적극 반영▲남성과 여성 모두를 균형있게 대표 ▲성역할의 고정관념을 깨고 양성의 다양한 삶을 보여줄 것 ▲성폭력·가정폭력을 정당화하거나 선정적으로 다루지 말 것 ▲성차별적 언어 사용에 민감성 가질 것 등 5가지를 제시했다.

더구나 특정한 성의 불평등한 현실 소재는 개인의 책임을 부각시키지 않아야 않다고 안내서는 권고했다. 워킹맘이 처한 불평등한 육아·가사 부담에 대해 남성의 참여, 장시간 근무, 육아·보육 시설 부족 등의 문제를 조명하기보다 가정의 형편이나 개인의 역량에 더 집중하는 경우다.

프로그램에서 전문가의 의견을 구할 때는 성별 균형을 고려할 것도 주문했다. 여전히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의견을 주는 전문가는 대다수가 성인 남성이며 이것은 공적 논의,사회적 대안 제시에서 여성·여아의 의견이나 관점이 배제되는 결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남녀가 공동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 특정한 성이 보조 혹은 장식적인 역할만을 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일 것과 특히 어린이 프로그램에서 남자는 씩씩하고, 여자는 얌전해야 한다는 등의 이분법적인 묘사나 제언을 하지 않도록 주의할 것도 주문했다. 어린이 프로그램에서 남아가 주인공인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으며 성인 프로그램보다 성비 불균형이 더 심한 상태로 시대적 흐름인 여성성·남성성의 벽을 넘어 여성성과 남성성을 골고루 발달시키는 방향과 역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안내서는 무엇보다 개인의 성취를 묘사할 때 남성은 능력, 여성은 외모 등 서로 다른 기준을 강조하지 않도록 주의 할 것도 상기시켰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여자 아이돌 가수의 본분을 확인하겠다는 의도로 노래 실력보다 성적 매력만을 강조하는 무리하고 황당한 요구를 하는 경우다. 스포츠 중계에서 한 해설자는 경기를 치르고 있는 외국 여자 유도 선수를 향해 “살결이 야들야들한데 상당히 경기를 억세게 치르는 선수“라고 표현해 비난을 받은 경우도 있다. 스포츠 경기에서 선수를 소개할 때 남성은 ‘태극전사’과 같이 능력중심으로, 여성은 ‘미녀요정’ 같이 외모중심으로 소개하는 것도 점검이 필요한 부분이다.

안내서는 드라마에서 육아문제는 여성의 책임이며 여성의 영역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대사가 자주 등장해 육아에 대한 성역할 고정관념을 기정 사실화하고 있는 점도 지적했다. 자녀가 다치거나 학업성적이 떨어질 경우 남편이 아내를 나무라는 장면은 자녀양육에 대한 책임이 아내에게 있다는 점을 은연 중 드러내기에 육아는 공동 책임으로 관점이 전환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성폭력 사건을 보도할 때 피해자의 대부분은 여성인데 가해자보다 피해자에게 과도하게 주목하고 있지 않은지, 또 교통사고 등 일반사건 보도와 달리 피해자에게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할애해 시청자의 눈길과 호기심을 끌려고 하지는 않는지에 대한 점검도 요구했다.

보도 프로그램에서 “여자가 꼬리치면 안 넘어올 남자가 어디 있어. 어린애도 아니고 그 시간까지 같이 있을 때는”, “바래다주면서 잘 잠그고 자라고 그랬는데도 그냥 열어주니까”처럼 사건의 원인을 피해자의 탓으로 돌리려는 사례가 빈번하기 때문이다.

차별을 조장하는 언어인 ‘김치녀’, ‘김여사’, ‘맘충’, ‘한남’ 등 혐오를 조장하는 언어가 사용되었는지도 체크하고 개선해 혐오 현상의 부당성을 드러내기 위해 불가피하게 사용되는 경우라도 사용이 과하게 사용되지 않도록 수위조절 에 엄격할 것도 요구했다.

특정 성을 성적 대상으로 묘사하거나 외모 열등감을 조장하는 언어 사용도 금물이다.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연상시키는 ‘영계’, ‘꿀벅지’, 남성의 외모를 우열의 문제로 다루는 ‘180cm 미만 루저’와 같은 단어를 방송에서 사라져야 할 단어로 꼽았다.

여성가족부 박난숙 여성정책국장은 “방송에서 보여지는 잘못된 성 고정관념과 성 상품화는 일반 성인뿐 아니라 자라나는 아동과 청소년의 성역할 사회화에 큰 영향을 주기에 방송제작자들은 사회적 영향력에 대해 책임감을 갖고 양성평등 가치에 대한 감수성과 민감성을 갖도록 노력해야 양성평등한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밝혔다.

저작권자 © 농촌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