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자수필 - 귀농아지매 장정해 씨의 추억은 방울방울

내겐 세 아빠가 있다
하나님 아버지
육신의 아버지
그리고 내 남편…

요즘은 집 앞 배나무 과수원에 남편이 쳐 놓은 가지를 줍느라 봄볕에 얼굴이 검어진다. 배나무가지 사이에 쳐 놓은 매실나무가지, 꾸지뽕가지도 함께 주워 묶다보면 장갑을 꼈는데도 가시에 손가락이 찔려 몹시도 성가시다. 그런데 동네 어르신의 말씀에 따르면, 원래 가시 많은 초목은 자체가 유익하고 귀중한 약효를 가졌지만 스스로 너무 약해서 자신을 보호하느라고 가시를 내었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산야초 발효액을 낼 때도 엉겅퀴, 엄나무, 가시오가피, 두릅, 아카시아, 홑잎, 찔레순, 매실, 꾸지뽕 등 가시를 가진 것이 많다.

가시나무 가지에 찔려 피가 난 손가락을 닦으며 오래전에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한다. 나는 집안에 유약한 외동딸로 태어났다. 남아선호사상으로 꽉 차 있던 그 시절 아버지는 집안에 오가는 모든 편지에 딸 이름을 쓰셨고, 유난히 친할머니를 닮아 키도 작고 피부도 검어서 정말 예쁜 데가 없는 딸이었는데도 아들보다 더 사랑하셨다.

초등학교 시절 아침 일찍 자전거 뒤에 나를 태우고 양젖을 짜는 목장을 오가며 신선한 양유를 사주시던 기억부터, 해마다 신학기가 되면 일 년치 일기장이며, 세계명작을 한 질로 사주셨던 것 등 나는 아버지의 특혜를 받으며 자랐었다. 무엇보다 아버지랑 같이 무슨 일을 하면 일의 아귀가 딱딱 맞아 떨어지고 죽이 잘 맞아 ‘아버지 딸’이란 소릴 들었다. 그 시절 한 번도 아버지께 걱정을 듣거나, 꾸중이나 책망을 듣는 일이 없었고, 무엇이든 내 의견이라면 아버지는 한 번도 거절하지 않고 다 들어주셨다.

자식들과 의견충돌로 부딪치며 싸우고 야단치며 내 의중대로 키워 온 것을 돌이켜 생각해보면, 자식의 의견을 다 받아준다는 것이, 비록 부모일지라도 얼마나 힘겨운 일이며, 항상 자식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줄 수 있어야 가능한 일인 것을 이렇게 늦게서야 깨닫는다. 유약하고 모자라고 막무가내였을 딸을 사랑하여 보호하고 지키시려고 스스로 가시가 되고 거친 겉껍질이 되셨을 아버지가 이제 손자를 둔 이 나이에 와서 왜 이리 생각나는 것인지….

나는 배밭에서 일하는 남편을 밥 먹으러 들어오라고 부른다. 보이진 않아도 어딘가 있을 그를 향해 “아빠~” “아빠~” “아빠~” 목청 터지게 부른다. 나는 안다. 그 아빠라는 외침 속에 세 분이 있다는 것을. 내 영혼을 구원하신 하나님 아버지, 그립고 그리운 내 육신의 아버지, 그리고 내 남편, 두 아이의 아버지. 자꾸 자꾸 부르다보면 눈물이 솟구쳐 난다. “아빠~” “아빠~” “아빠~아” 어서 들어와요~. 맞은 편 먼 산에서 멀리 멀리 메아리쳐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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