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 - 풀꽃시인 나태주

좋은 시를 쓰려면
자연의 아름다운 모습을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고
가슴 속 깊이 오래 지녀야

영혼의 목마름이 있어야
시를 쓰고 시를 읽게 돼

시는 마음에 스며든 곱고 슬픈 감성과 눈에 드는 아름다운 광경을 짧고 감미로운 글로 표현해내는 문학의 한 장르다.
이에 시는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읽혀진다. 16살 어릴 적부터 시를 쓰기 시작해 지금에 이르기까지 57년 시력(詩歷)의 나태주 시인을 만났다.
나태주 시인은 풀꽃이 지닌 고즈넉한 아름다움과 순박하고 애련한 자태를 우리 삶에 녹여내는 감동적인 시를 써내
‘풀꽃시인’이라 불리며 많은 독자를 보유하고 있다. 나태주 시인의 시작(詩作) 활동에 얽힌 이야기를 들어봤다.

고1때 좋아하는 여인에게
사랑 전하려 시 쓰기 시작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16살 제 소원은 오직 좋아하는 여인에게 사랑하는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였죠. 고민하며 속을 까맣게 태우기도 했고요. 그녀에게 내 마음을 전하고 싶어 속이 답답할 때마다 시를 썼습니다.
그때부터 시가 밥이고, 물이고 공기라고 생각하며 시를 썼습니다. 시를 쓰는 게 삶의 한 선택사항이 돼야 함에도 불구하고 필연으로 받아들이며 사명감을 갖고 시 쓰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이후 시를 쓰는 게 생활이 된 그는 73세인 지금도 시를 계속 써오고 있다.
“현재까지 총 38권의 시집(詩集)을 냈습니다. 한 권에 대략 50여 편이 실려있으니 2천여 편의 시를 썼다고 봐야죠. 올해 들어서도 벌써 2권의 시집을 냈어요. 4권의 시집을 더해 올해 안에 6권의 시집을 낼까 생각 중입니다.”
어떻게 이처럼 많은 시를 쓰게 됐냐고 물었다.
“영혼의 목마름이 있어 시를 씁니다. 시를 쓰면 육신의 목마름이 해갈되더군요. 그래서 시를 쓰게 되죠.”

시는 쓴다는 건 90%의 기량에
10%의 노력이 있어야…

시를 쓰는 창작능력은 타고 나는 것 같다고 그는 말했다.
“조지훈 시인은 타고난 기량 90%에 시작(詩作) 노력 10%가 더해져 시를 쓰게 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저도 시를 쓰는 기량은 타고 난 것 같아요. 시를 쓰다보면 마음속의 목마름과 갈망, 소망이 시 속에 녹아들어요. 그렇기에 시를 읽는 독자도 시인의 메시지에 공감하며 감정이입이 되는 것이죠. 독자는 시인이 시로 건네는 삶의 치유와 자존감 회복, 축복 등을 받게 됩니다.”
그러면서 그는 독자들로부터 ‘풀꽃시인’이라는 별칭을 얻게 해준 그의 애착시 ‘풀꽃’을 조용조용 읊어줬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이 시는 아주 간결하고 단조롭지만 자세히 읽으면 시인의 위축되고 찌그러진 자존감을 일으켜 세울 뿐만 아니라 독자들에게 자존감과 위로, 그리고 축복을 주는 듯해서 많은 사랑을 받는다고 했다.
이 시를 읽은 한 평론가는 “명시는 아름다운 언어로 치장을 하고 태어나는 게 아니라며 작가의 따뜻한 감성과 시각이 녹아있어야 한다”고 했다고 한다.
나태주 시인의 시는 누구나 단번에 알아 볼 수 있도록 간결하게 쓰여 있어 모든 연령대가 따뜻하게 쉽게 읽어 내려간다.
나태주 시인은 그의 애착시 몇 편을 더 들려줬다.

마당을 쓸었습니다
지구 한 모퉁이가 깨끗해졌습니다
꽃 한 송이 피었습니다
지구 한 모퉁이가 아름다워졌습니다
마음속에 시 하나 싹텄습니다
지구 한 모퉁이가 밝아졌습니다
나는 지금 그대를 사랑합니다
지구 한 모퉁이가 더욱 깨끗해지고
아름다워졌습니다.
- 시, 마당을 쓸었습니다

하늘아래 내가 받은
가장 커다란 선물은 오늘입니다
오늘 받은 선물 가운데서도
가장 아름다운 선물은
당신입니다
당신 나지막한 목소리와
웃는 얼굴, 콧노래 한 구절이면
한 아름 바다를 안은 기쁨이겠습니다
-선물

나태주 시인은 좋은 시를 쓰려면 말을 많이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른 사람이 좋은 표현과 말로 대화하는 것을 귀담아 들었다가 이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내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과 꽃, 풀, 그 밖에 자연의 아름다운 모습을 내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넓고 넉넉한 마음을 오래오래 지녀야 한다고.

19세 초교교사로 시작해 교장으로 퇴직
교직은 직업, 시인은 본업으로 생각

나태주 시인은 1945년 충남 서천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1963년 공주사대부고를 졸업하고 19세 되던 1964년 경기도 연천군 군남초등학교 교사로 부임해 교사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2007년 공주 장기초등학교 교장으로 정년퇴임할 때까지 43년간 교편생활을 했다.
나태주 시인은 남들처럼 많이 배우지 못한 공부결핍증으로 책을 많이 읽었다고 한다. 특히 그는 교직을 직업으로 여기고 시인은 본업이라고 생각하며 시 공부에 지나치게 몰두했던 것에 대해 동료교사들에게 많이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시 공부에 매진한 덕에 26세이던 19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대숲 아래서’라는 작품으로 정식으로 시인으로 등단했다.
“다행스럽게도 교직을 대과없이 마무리해서 직업은 없어졌지만, 시인이라는 본업이 남아 있기에 요즘이 더 분주합니다. 공주시의 지원으로 풀꽃문화원을 설립했고, 시민들을 대상으로 시 쓰기 지도를 하고 있습니다. 8년째 맡아오고 있는 공주문화원장직도 무척 자랑스럽습니다.”

공부결핍증으로 독서에 몰두
최근엔 동서양 고전에 심취

나태주 시인은 일반 사람들도 밭을 갈고 벼를 심고, 채소를 가꾸며, 과일을 재배하고 벼를 수확한 뒤 배추를 거두고 과일을 따는 농민들의 삶을 본받으며 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인생을 단조롭게 살지 말고 농민처럼 우정과 사랑, 봉사의 씨를 뿌리며 직장생활, 취미생활, 봉사활동 등 다양한 분야에서 보람된 활동을 많이 해야 한다고 거듭 힘줘 말했다.

“가정파산에 따른 가난으로 초등학교 5년 때 중퇴한 일본의 마쓰시타 고노스케는 가난과 배우지 못함, 좋지 않은 건강 등을 축복으로 받아들이고 이 같은 결핍을 채우는 데 힘써 2만여 종업원을 거느린 대기업을 세웠습니다. 저도 배우지 못한 공부에 대한 목마름으로 남들보다 더 많이 책을 봤습니다. 그중 헨리 데이빗 소로가 쓴 ‘월든’과 동양고전인 노자와 논어 등을 감명 깊게 읽었죠. 최근엔 사마천이 쓴 사기(史記)를 보고 있는데, 밤늦게 귀가해도 2~3장을 꼭 읽고 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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