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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 가는 날■ 독자수필 - 귀농아지매 장정해 씨의 추억은 방울방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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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3.10  13:4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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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간에서 평생 없는 살림에
남편 눈치, 자식 눈치 보며
살았을 어르신들의 세월이
가슴 한복판을 찡하게 한다

   
 

오늘은 우리 동네(충북 괴산군 감물면 하유창리) 어르신들과 함께 목욕 가는 날이다. 농사가 시작되기 전이라 이불 속에서 늦장을 부리다 일어나 아직도 깨지 않은 남편을 두고 목욕가방을 챙겨 나왔다. 싸하니 콧등을 스치는 바람이 차다. 마당에 걸어놓은 온도계가 영하를 가르킨다. 산 중턱에 걸쳐있는 우리 집은 산 아래 평지의 날씨보다 약 3~4℃는 더 내려가기가 보통이다. 은연중 봄을 기대해서인지 요사이 날씨가 한겨울보다 더 춥다. 약속한 아침 9시에 맞춰 마을회관으로 차를 몰아갔다.

“안녕하세요?” 회관 안쪽 미닫이문을 열고 보니 벌써 옹기종기 모여 와 계셨다.
“아침 식사는 하셨어요”
“야~” 일동 대답하신다. “그럼 목욕가게 나오셔요~.”
RV차량이라 좀 높아서 어르신이 타기가 쉽지 않다. 한 분 한 분 부축해서 태우고 보니 나까지 일곱이다. 모두가 팔십을 넘기신 노구의 몸이라 거미처럼 가늘고 허리가 굽어 거동이 쉽지 않다.
“자~ 출발합니다. 저는 가는 동안 어르신을 모실 운전사 장정해입니다. 목적지는 문광온천이구요, 소요시간은 대략 15분이 되겠습니다. 앞에 있는 간식통에 사탕이 있습니다. 하나씩 드시면서 내리실 때까지 편안하고 즐거운 시간되십시오.”

안내 멘트가 끝나니 뒤통수에서 박수소리와 함께 왁작 웃는 소리가 들린다.
차는 마을을 천천히 빠져나오고 차창 밖의 풍경이 바뀌면서 어르신들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아이고~ 저 밭 사과나무는 지난겨울에 안 땄나벼~ 아직도 사과가 달려있네.” “저 집은 옛날에 안 씨 부부가 살았는데 지금은 다 죽었다지~ 참 좋은 사람인데…”
“자네가 어찌 아는가?”
“저거가 내 친정이라요. 고향사람이라 알지.”
“내 고향은 그 위 모촌이여~”, “나는 그 아래 동네 남창.”

나는 옆자리에 앉은 분께 “어르신은요?”하고 여쭈었다. “나는 청천에서 시집왔지. 이 중에서 젤 먼데서 왔지.”, “난 바로 앞동네 상유창이여. 언제 가봤는지 한 번을 못 가보네.”
모처럼 집을 나와 보니 고향생각이 나시나보다. 그 중 목청 좋으신 양대춘 할머니가 한 소절 하신다. “고향이 그리워도 못 가는 신세~ 우리 모두 다 같이~”`
“고향이 그리워도 못 가는 신세~~~”
모두 따라불렀다.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다음 소절이 생각나지 않는 것이다. 모두 대충 흥얼거리는데 갑자기 김진해 어르신이 “남편 아침은 주고 나왔냐?”고 물으신다.

“아뇨, 지금도 자고 있어요. 11시 넘어야 먹어요.”
“저런 밥도 안주고 나왔어? 우릴 태워다주고 목욕시키고 가도 냄편이 아무소리도 안해야?” 하신다.
“걱정마셔요. 어르신 모시고 잘 다녀오라고 인사까지 받은걸요~”
세상에 그런 남편이 어디 있냐고 인물도 이쁘고 얌전한 게 너무 착하다고 한마디씩 하신다.
“옛날에 우리 영감 살았을 땐 어림짝도 없었지. 잠깐만 안 보여도 여자가 어딜 마실 다니냐고 방맹이질이었어~” 하신다.

괴산 오지 산간마을에서 평생을 없는 살림에 남편 눈치, 자식 눈치보며 살았을 어르신들의 세월이 가슴 한복판을 찡하게 한다. 친정을 지척에 두고도 이젠 늙어 걷기조차 어려워 못 가신다는 말씀을 들을 땐 맘이 시려온다. 차는 어느새 문광온천장 주차장에 들어갔다.
“자, 이제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가져오신 물건 잘 챙기시고 한 분씩 천천히 내리시겠습니다.”

나는 온천장 안으로 계단을 오르며 ‘고향이 그리워도 못 가는 신세’ 이 노래의 전체가사를 찾아서 다 함께 부를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다음 번 목욕을 하러 올 땐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부르고 불러서 노래로라도 그 한이 풀어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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