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덕의 농담(農談)<29>

▲ 올해 우리 밭에서 수확한 무.

최근 도시민들의 귀농귀촌이 활발하다. 이들 중에는 성공적인 농촌정착으로 제2의 인생을 사는 이도 있고, 낯선 환경에서 어려움을 겪는 이도 있다. 본지는 재밌는 한상덕 씨의 생생한 귀촌일기 연재를 통해 후배 귀농귀촌인들의 시행착오를 덜어줄 지름길을 알려주고자 한다.

초등학교 동창 송년모임에 가서 귀농해서 혼자 산다고 했더니 여자동창생 얼굴에 측은지심이 가득하다. “어쩌다…”라며 말을 끝내지 못하는 이도 있고 도와주고 싶다는 눈치를 노골적으로 보이는 이도 있다. 별 생각 없이 현재의 근황을 솔직하게 말한 것뿐인데 오해가 실제로 둔갑해 날개를 달았다.

이쯤 되고 보니 당황한 건 오히려 내 쪽이다. 사실을 말하려고 해도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고, 웃으려고 하니 애써 웃는 것처럼 보이고, 슬픈 표정을 짓는 건 실제 감정이 아니어서 이래저래 죽을 맛이다.
귀촌해 첫 무씨를 뿌렸는데 싹이 나지 않았다. 무씨 하나하나에 온 정성을 다했고 제조일자가 최근인데도 싹이 나올 기미가 없었다. 알고 보니 무씨를 깊게 파묻은 게 문제였다. 씨앗의 두께만큼 흙을 덮고 바람이 실어 나르듯 건성건성 뿌려야 했었다.

해서 다음 해에는 제대로 씨를 뿌렸는데 또 싹이 나지 않았다. 할매 친구들에게 까닭을 물어보니 새들의 모이가 되었을 것이란다. 가을 햇살도 피하고 수분도 유지할 겸 그물망을 덮어야하는 데 그걸 하지 않았던 거다.
그리고 또 다음 해에는 그물망을 치울 시기를 놓쳐 무 싹이 콩나물 같았다. 흙 밖에 얼굴만 내밀어야 하는데 다리까지 드러나 일일이 다리를 흙속에 파묻어야 했다. 무엇보다 자라기 시작한 무를 솎아내는 일이 보통 어려운 게 아니었다. 잘 자란 무부터 뽑아 열무처럼 먹어야 하는 건지, 덜 여문 무를 뽑고는 남은 무를 튼튼하게 자라게 해야 하는 건지 보통 헷갈리는 게 아니었다.

우리네 결혼생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사랑의 깊이가 너무 깊어도 얕아도 문제가 될 것이다. 내 그림자로 인해 상대가 어둡지 말아야하고 내 뿌리로 인해 상대의 뿌리가 방해 받아서도 안 될 것이다. 멀리서 보면 숲으로 보이겠지만 가까이서 보면 나무와 나무 사이에 간격이 있듯 부부 사이에도 간격이 있어야 할 것이다.

아내의 스마트폰에 있는 내 이름은 ‘지인’이고 내 스마트폰에 있는 아내 이름도 ‘지인’이다. 아직도 서로를 알아가는 단계이니 ‘지인’이라는 이름이 어색하지 않고, 영원히 알 수 없을 것 같으니 ‘지인’은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물론 실제로 이행하는 게 쉽지가 않다. 농촌은 도시보다 춥다며 초겨울부터 발걸음을 딱 끊은 아내 덕분에 외로움은 겨울바람처럼 시리고 모질다. 한참을 자고 일어나도 한밤중인 겨울밤이 야속하기만 하다. 그럼에도 봄은 오는데 뭘. 이중 삼중 덮어쓴 이불 속에서도 봄은 피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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