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동 시인·칼럼니스트

"농업 인력의 고령화
농축산물 시장개방 확대 등
농업여건이 갈수록 악화…
피해갈 수 없는 시장경제

부지런히 농사를 지어온
농업인에게 더 이상
아픔을 줘서는 안 된다"

▲ 김훈동 시인·칼럼니스트

한 해가 저물어가는 12월은 회고와 성찰의 달이다. 세밑이 되면 저마다 자신과 가족, 친구를 돌아보며 한 해를 정리하고 새해를 기약한다. 한데 올해는 개인이나 가족보다 나라를 더 걱정해야 할 처지가 되어 안타깝다. 모두들 정치를 얘기하며 나라의 앞날을 걱정한다. 농업인들도 예외가 아니다.
해마다 겪는 일이지만 올 해도 쌀 가격 문제로 몸살을 앓았다. 그나마 정부는 쌀 농가의 소득 지지와 수급 안정을 위해 기존의 추곡수매제도의 식량안보 기능을 공공비축제로 바꿨다. 전체생산량의 9% 남짓 물량이 공공비축이다. 농업인의 소득보장 기능은 쌀소득보전직불제로 개편했다. 쌀값에 따른 농가소득 하락을 직불금을 통해 보완하는 체계다. 문제는 생산은 많아지고 소비는 줄어들어 쌀 시장은 공급과잉 구조가 지속되어 연평균 24만 톤의 쌀이 남아돌 것이라는 전망이다.

정부의 쌀 재고 역시, 적정재고 80만 톤의 두 배 이상 많은 수준이다. 그나마 가공용 쌀 공급을 확대하고 오래된 묵은 쌀은 사료용으로 공급 하는 등 쌀 수급안정 정책을 추진하고 있어 다행이다. 하지만 국산쌀이 쌓여가는 것은 해마다 국내 생산량의 9~10% 잉여물량 수준인 수입쌀이 국산쌀을 대체하고 있기 때문이다. 농정당국은 의무수입량을 상쇄할 강력한 생산조정이나 남는 쌀의 나라밖 격리 등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는 일이 급선무다. 쌀값도 그렇고, 남아돌아 비록 눈총을 받는 천덕꾸러기가 된 쌀이지만 101%의 쌀자급률이 우리나라 식량자급률 23.8%를 유지해주는 버팀목이 아닌가. 그래도 OECD 국가 중 최하위권이다.    

우리 농업은 수입농축산물 영향으로 생산과 소비기반이 동시에 무너지며 멍든 한 해였다. 국내산 쇠고기 자급률이 36.3%에 머물렀던 한우고기는 축소돼 30% 후반대로 하락할 전망이다. 결국 시장에서 외국산이 가격 결정권과 같은 영향력을 발휘하게 되고 국내산은 끌려가는 처지가 되어 걱정이다.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과 시장개방, 경기침체 등으로 위기에 처한 농축산업을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있다. 하지만 정부나 국회는 원론적인 입장을 고수하며 개정의 기미를 여전히 보이지 않고 있다. 고품질 농축산물 생산에 전념해 온 농업인에게 경제적 피해뿐만 아니라 영농의욕을 실추시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제45대 대통령의 등장으로 한·미 간 농산물 시장 추가 개방에 대한 압박이 거세질 것이라는 우려다.

그렇다고 농업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지혜를 모아 우리 농축산물에 대한 구매충성도를 높여가야 한다. 농업 인력의 고령화, 농축산물 시장개방 확대 등 농업여건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물론 피해갈 수 없는 시장경제의 세계적 추세다. 부지런히 농사를 짓고 살아온 농업인에게 더 이상 아픔을 주어서는 안 된다.

“어진 농부가 홍수나 가뭄이 들었다고 밭갈이를 그만두지 않고, 어진 장사꾼이 밑진다고 장사를 그만 두지 않듯이, 군자는 세상이 혼란스럽다고 해서 일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정조 홍재전서에 나오는 글이다. 그렇다. 농업이 망해가고 있다는 장탄식보다는 제4차 산업혁명에 뒤처지지 않는 농정의 대전환을 준비해야 한다. 기후변화에 따른 세계 식량위기 가능성은 시한폭탄과 같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상황이다. 재앙은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다. 농업은 게임이나 공연이 아니다. 생명산업이다. 그때 가서 “이렇게 될 줄 몰랐다”고 말하지 않길 바란다. 언 발에 오줌누기식이 아니거나 지엽적인 일에 연연하지 말고 중장기적인 농정전략 수립에 집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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