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쌉쌀한 인생

영화관에 자주 가는 편인데 요즘 들어 뜸해졌다. 최근에 이렇다 할 히트작이 없어서일까? 그보다는 온 나라를 태풍처럼 강타한 ‘최순실 게이트’의 실상이 시시각각으로 영화보다 더 드라마틱하게 펼쳐져서이다. 양파껍질은 하나씩 벗기다 보면 결국은 끝이 보이는데 이와는 달리 끝을 가늠할 수 없이 밝혀지는 사실들이 <전설의 고향>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여서 분노감과 비애감이 든다. 일부 발표된 검은 돈에 입이 딱 벌어진다. 두 발을 딛고 사는 이 나라 현실이 한없이 나를 초라하고 수치스럽게 한다.

정지용의 시 <호수>를 패러디해봤다. ‘뻔뻔한 얼굴이야 마스크와 모자로 가린다지만 국민 앞에 지은 큰 죄는 하늘도 땅도 용서 못 하니 고개를 떨굴 수밖에’. 권력을 등에 업고 칼을 휘두른 행각이 하나둘 밝혀질 때마다 어안이 벙벙해진다. ‘그들만의 천국’에서 온갖 것 다 누리며 눈 가리고 아웅 하듯 부정으로 쌓은 바벨탑이 무너질 줄 그들만 몰랐던가.

나의 평소 식습관은 음식을 적게 먹는 편인데 어쩌다 뷔페식당이나 큰 음식점에 가면 그곳 분위기와 맛깔스런 음식에 이끌려 과식할 때가 있다. 그런 날은 탈이 나서 약에 의존하기 십상이다. 그들이 과식한 검은 돈의 꼬리는 길어도 너무 길었다. ‘꼬리가 길면 밟힌다’라는 속담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말인데…. 나라를 송두리째 뒤집고 있는 요즘의 사태는 기형적으로 길어진 물고기의 꼬리가 멀쩡한 몸통에 흠집을 내고 뒤흔드는 꼴이 되고 말았다. 어이없이 상처를 입은 몸통인 순박하고 선량한 국민은 그래서 온몸으로 분노하는 것이다.

대통령에 대한 믿음, 정부에 대한 신뢰, 국가에 대한 기대가 한꺼번에 무너지고 있는 요즈음이다. 지난 주말 필자도 광화문 시위현장에 있었다. 군중은 마치 장자의 <소요유(逍遙遊)>에 나오는 ‘곤(鯤)’을 떠올리게 하는 거대한 물고기 같았다. 현장에는 희망을 갈망하는 촛불로 하루 저녁에 100만 명이 하나가 되는 힘을 과시했다.

▲ 류미월 시인, 수필가, 문학강사

광장에 마련된 무대 위에는 시민 발언대에 나선 시민들의 비난과 분노가 하늘에 닿았고, 다른 쪽에선 가수의 열창을 따라 부르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분노와 축제의 장이 공존했다. 내 나라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각자의 다짐이자 함께 견뎌내자는 위로이기도 했다. 타오르는 촛불이 정치추문을 뜻하는 ‘게이트(Gate)’를 넘어 새로운 ‘문(門)’으로 환하게 열리길 희망했다. 광장을 지키던 시간은 어두워도 어둡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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