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란법 시행과 농업계 명암

▲ 화훼농가 대부분이 선물용으로 보내졌다가 다시 들어온 화훼를 처리하는데 곤란함을 겪고 있다.

결혼과 수능 등으로 화훼 수요가 한창일 시기이지만 꽃집은 물론 화훼단지에도 사람들의 발길이 끊겼다. 지난 9월28일 시행된 김영란법 때문이다. 이 법이 시행되면서 많은 화훼단지들이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승진인사와 병문안은 물론 일반 개업식에서도 화환이 사라지면서 매출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 김영란법 시행으로 화훼단지가 어떤 피해를 입고 있는지 하남화훼단지를 찾아 이야기를 들어봤다.

배달한 난 70% 반품
팔리지 않은 꽃은 폐기할 수밖에…
화훼관련업체도 줄도산 위기

경조사에서 가장 많은 이들이 찾는 호접란은 한 대에 7000원부터 2만 원 선이다. 하지만 하나만 심어 선물하는 일은 드물다. 적어도 3~4개 정도를 심기 때문에 적은 비용인 7000~8000원이어도 3만 원대를 훌쩍 넘긴다. 또한 호접란만 파는 것이 아니라 화분과 흙, 포장과 배달 비용까지 합쳐져 5만 원을 맞추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에 하남화훼단지에서 호접란을 판매하고 있는 A씨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그는 “수익은 작년에 비해 반 토막이 났다. 지난달에는 공직자나 일반기업에 김영란법 가격대에 맞춰 서양난을 30개 정도 보냈는데 그중 22개 정도가 다시 되돌아왔다”며 입을 열었다.
이어 “호접란의 90%는 관공서나 기업의 승진인사 선물용으로 팔리고 있다”며 “김영란법에서도 사교나 의례 목적으로 5만 원 이하의 선물 제공은 허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팔린 꽃들이 다시 화훼단지로 되돌아오고 있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일명 란파라치(김영란법과 파파라치의 합성어)에 걸릴까봐 두려운 이들이 적정한 가격에 선물을 받았다고 해도 구설수에 오르기 싫어 난을 다시 화훼단지로 보내고 있는 것이다.
소득의 어려움은 호접란 뿐만이 아니다. 분재를 판매하고 있는 B씨 또한 소득에 많은 피해를 입었다.

“김영란법이 시행된 후 안 받고, 안 보내는 문화가 이어지면서 소득이 10분의 1로 줄어들었다. 게다가 손님을 못 받는 날도 많아 하루 종일 사무실만 지키다 간 적도 있다.”
B씨 또한 호접란을 판매하는 A씨처럼 5만 원 이하의 ‘김영란 화분’을 만들어 영수증과 함께 선물을 보내지만 선물 자체가 부담스럽다며 다시 반품된 적이 많다고 말했다.
이처럼 하남화훼단지는 도매시장인데도 불구하고 손님들이 뜸하며, 도매업자들의 발길도 끊겼다. 또한 B씨는 장사를 하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들이 원하는 가격에 맞춰 최대한 낮은 가격에 분재를 팔려고 하지만 이마저도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기 힘들다고 한다.

호접란과 분재는 공직자들의 승진 등 선물로 많이 나가는 편이지만 관목은 대부분 개업식에 많은 선물되는 편이다. 하지만 관목도 김영란법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다른 농가와 달리 관목을 직접 키우며 판매까지 하고 있는 C씨는 김영란법 이후 손님들의 방문이 줄었다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얼마 전에는 하루 6만원밖에 못 팔았다. IMF나 메르스 등 나라에 많은 위기가 있었지만 이렇게 소득이 적었던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관목을 파는 C씨는 김영란법 전에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농장에서 관목을 가져왔지만 지금은 오히려 가져오는 관목을 다시 농장에 되돌려놓는다.
꽃모종을 판매하고 있는 D씨는 공직자들을 향한 선물이 사라지면서 일반인들의 소비도 축소됐다며 입을 열었다.

▲ 김영란법으로 인해 손님들의 발길이 끊긴 하남화훼단지.

그는 “예전에는 손님들이 오면 모종을 1판씩 사갔는데 요즘에는 1개, 2개씩 낱개로 가져간다. 때문에 모종이 어정쩡하게 남으면 팔 수 없어 버리게 된다”고 말했다.
호접란과 분재, 관목, 모종 등 다양한 화훼농가를 만나봤지만 이들 모두 꽃이 팔리지 않아 시들면 버릴 수밖에 없다며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했다.

또한 화훼농가와 함께 상생하는 농가들은 모종을 80~100원 선에 판매하고 있지만 김영란법으로 인해 100원의 소득도 올리기 힘든 상태이다.
이처럼 김영란법은 단순히 화훼농가의 뿌리를 흔드는 것이 아니라 화훼와 관련된 모든 사업들을 흔들고 있다.

또한 새롭게 화훼산업에 뛰어든 젊은 창업인들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문을 닫거나 다른 대체 작물을 키우기 위해 화훼농가를 떠나고 있다.
화훼농가들은 이 같은 이유를 열거하며 김영란법이 원예산업의 근간까지 흔들 수 있는 만큼 대책마련이 시급하다고 힘줘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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