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진흥청 도시농업과 김경미 연구관

"가족경영협약 맺은 농가들은
농업정보 교환이 확대되고
대화가 늘어나 부부간 화목

무엇보다 여성농업인의
책임감과 자존감이 향상돼
자부심도 늘어나고
농업생산성도 증가한다"

▲ 농촌진흥청 도시농업과 김경미 연구관

어느 날 젊은 부부가 찾아왔다. 서울에서 다른 일을 하다가 부모님 땅에서 농사일을 시작한 지 10여 년이 돼 가는데 가공공장을 지으면서 고민이 생겼다는 것. 부모님은 가공공장을 맡아 책임지고 잘 해보라며 격려하셨지만 실제로는 가공공장 부지도 부모님 명의이고 가공공장 사업 지원금도 아버지 명의로 받아낸 터라 그 모든 수익금이나 사업관리를 아버님 명의를 통하지 않고는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가정생활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농지도 소득도 모두 부모에게 의존하다보니 이미 결혼해서 아이가 학교에 다니고 있음에도 독립적인 가정생활이 어려워 아무래도 부모와 갈등이 생긴다는 것이다. 아들이나 딸이 승계자인 경우 그 배우자는 아무래도 불편한 입장에 놓일 수밖에 없다.

농업의 6차산업화는 현정부의 핵심 국정과제이자 농정의 주요방향이다. 이제 더 이상 1차 생산물에만 의존하지 말고 가공과 체험 서비스 등을 통해 농업의 부가가치를 높이자는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일을 하려면 여성농업인의 역할이 증가하고, 성공한 농식품 가공 농가의 경우는 승계자들이 참여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그야말로 가족기업으로 성장하고 있는 셈이다. 효율적인 농가 경영을 컨설팅하는 많은 전문가들은 기업처럼 농가를 경영할 것을 주문한다. 그러려면 무엇보다도 농가의 가족 내에 종사자의 역할과 지위가 명확해야 하며, 성과에 대한 책임과 보상이 뒤따라야 한다.

일본에서는 1980년대 우루과이 라운드 이후 농가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농림성에서 ‘가족경영협약’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부부 중심의 가족농이 대부분인 일본에서 여성농업인의 지위를 인정해주고 그 역할에 맞는 성과를 인정하는 정책을 시행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다가 1990년대 들어오면서부터 승계자 대상으로 협약이 확대됐고 농가 기술지원의 첫 단계에서 우선적으로 ‘가족경영협약’을 하도록 지원하고 있다. 2015년까지 55,435농가가 협약을 체결했다.

우리 농가도 농지의 소유주는 대부분 남편이거나 아버지다. 그러므로 젊은 승계자의 영농기반을 튼튼히 하고 경제활동의 주체로서 경력을 쌓고 자금을 축적할 수 있는 기회가 필요하다. 가족경영협약은 농업에 종사하거나 농가에서 함께 사는 가족의 역할과 책임을 분명히 하고, 그 역할에 따른 성과를 적절하게 보상하면서 농사를 짓는 직장과 가정생활을 영위하는 생활에 대한 규칙을 정함으로써 농가를 기업형 경영으로 변화하게 하는 데 유용하다. 또 참여하는 여성농업인이나 청년 승계자들이 경제행위의 주체로서 자긍심을 갖게 함으로써 더욱 의욕적으로 일할 수 있게 한다. 가족경영협약을 맺은 농가들은 부부의 농업정보 교환이 확대되고 대화가 늘어나서 부부간에 화목해진다고 한다. 무엇보다 여성농업인의 책임감과 자존감이 향상되면서 자부심도 늘어나고 농업생산성도 증가한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2004년에 이 협약을 처음 시도하여 지금까지 약 300농가 이상이 협약을 맺었다. 대부분은 부부가 협약을 맺었지만, 올해는 승계자도 참여해 농업인 부부와 승계자가 함께 협약하는 사례도 3농가가 탄생했다.

농업이 젊어지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까? 여성이 좋아하는 농업이 되기 위해서 무엇을 먼저 해야 할까? 가족경영협약을 가장 먼저 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우리 농정에서도 이제는 ‘사람’에 대한 농정을 강화할 때다. 이미 농업은 더 많은 생산, 더 좋은 품질만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고 선언한 만큼 더 좋은 가치를 추구하는 농업으로서 6차 산업화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먼저 즐겁고 보람 있는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줘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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