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쌉쌀한 인생

남의 경험담을 듣는 것만으로도 내 삶에 밑거름이 될 때가 많다. 내 경험인 듯 남의 경험인 듯 헷갈릴 때가 특히 그러하다. A가 말했다. “요즘 부모 노릇 하기가 왜 이렇게 힘들지? 딸한테 정말 실망했어. 내 딸 맞나? 싶어” 듣고 나서 뜨악한 나에게 A가 이유를 설명해주었다. 외국에서 대학을 마친 딸은 귀국 후 좋은 직장에 취직했고 결혼도 시켰고 시가도 잘 사는 편이었다. 반면에 아들은 형편이 어려웠다. 해서 혼기에 찬 아들의 장래가 걱정된 부모는 일부는 대출금으로 충당해 아들 명의로 작은 아파트를 샀다. 그러자 딸이 그 사실을 알고 전화를 걸어와 다짜고짜 따지더란다. 아들만 자식이고 딸은 자식이 아니냐고…. 듣는 순간 자식이지만 정말 미웠다고 했다. 자신의 노후대책 마련하기에도 급급한 부모들은 속이 상할 수밖에.

주말에 싱싱한 포도를 사려고 안성에 있는 포도농원에 갔다. 가까운 곳에선 ‘남사당 바우덕이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행사장에 들어서자 마침 입구에 서있던 트럭에서 소가 내렸고 마차 행렬을 위한 채비가 한창이었다. 가까이에서 이런 광경을 눈여겨보게 되었다. 누런 암소 코에는 코뚜레를 걸고 차례대로 굴레를 씌우고 고삐를 묶고 어깨엔 멍에를, 등위엔 안장을 얹었다. 안장과 연결하여 수레를 달고 수레 안에는 머리를 풀어헤친 죄인을 태웠다. 그 과정을 지켜보는 동안 내 몸도 옥죄는 듯 갑갑함이 느껴졌다.

채비를 끝내고 행렬이 시작되었다. 외국인 참가자들이 자기 나라 전통복장을 입고 따라갔고 맨 뒷줄에 소가 걸어갔다. 따가운 햇볕에 멍에를 멘 소는 큰 눈망울을 껌벅이며 힘겹게 걸어가고 있었다.
소를 보다가 A의 얼굴이 겹쳐졌다. 굽은 등과 큰 눈이 닮았다. 자식들 뒷바라지로 숨차게 달려온 삶이었을 것이다. 이제 자식들을 키워놓고 한숨 쉬려고 했는데 자식들의 이기심이 어미의 고삐를 죄는 것이다.

▲ 류미월(시인, 수필가, 문학강사)

네 집 내 집 할 것 없이 녹록하지 않은 세상이라선지 다들 마음의 여유가 없는 듯하다. 자식에 대한 사랑도 어느 한쪽으로 기울면 집안이 시끄러워지지 않던가. 누이가 동생을 업어 키우던 시대는 지났다 해도 푸근했던 가족애마저 사라지는 것 같아 씁쓸하다.
행렬이 끝나가고 먹거리 장터 한쪽에는 돼지국밥과 막걸리가 준비되어 있었다. 퇴장하는 소의 발은 부었는지, 퉁퉁한 발로 뚜벅뚜벅 무소의 뿔처럼 앞으로 향했다. 멍에는 소만 진 게 아니었다. 고단함을 내려놓고 숨을 고르는 세상의 어미, 아비들로 장터가 붐볐다.

저작권자 © 농촌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