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삼릉 뒤 불편당(不便堂)은 이름부터 불편하다. 앞문을 닫아걸고 뒷 창은 열어 제친 집, 달 아래 세알 젖무덤, 죽은 왕들과 같이 눕는 명부전, 도끼눈 붓대 쥔 외팔 늙은이, 불편당 세 글자 이마에 새겼다. 무시로 드나드는 달빛 저리 밝으니 잠은 오시오? ~ 중략」 이빈섬 시인의 불편당이란 시의 한 구절이다. 불편당은 한국화의 대가 박대성 화백이 살고 있는 집의 당호(堂號)다.

한국전쟁 당시 빨치산에게 부모를 잃고 자신도 왼쪽 팔이 잘렸다. ‘그의 제일 큰 스승은 바로 없어진 한 팔이었다’고 말한다. 화백은 스스로 불편을 예찬하며 그의 인생 좌우명도 ‘불편’이라 한다. 물질문명에 길들여진 현대인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우리는 항상 불편에서 벗어나려 애 쓰고 생활에 편리한 것들을 구입하기 위해 치열한 생존경쟁에 내 몰리고 각박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최근 도시생활의 편리함을 접고 농촌으로 귀촌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농촌생활은 편리함보다 불편함이 더 많다. <잡초 레시피>를 출간해 잡초 요리사로 알려진 권포근 씨 부부의 귀촌사례도 농촌의 헌집에서 불편함을 벗 삼아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는 이야기다. 이들 부부도 살고 있는 집을 ‘불편당’이라 명했다. ‘불편과 친하니 불행이 멀어지고 근심 걱정이 없어지더라’라고 말한다. 농촌생활은 바로 대자연이 주는 삶의 이치를 깨닫고 자연에 순응하는 삶이라 하겠다.

세상의 아름다운 것은 고통 속에서 태어난다. 한 송이 국화꽃도 된 서리를 맞아야 진한 향기를 뿜어낸다. 성인들도 하나같이 불편 속에서 삶의 길을 찾았다. 우리네 삶도 어쩌면 자연의 일부분이다. 자연이 주는 불편쯤은 즐기면서 이웃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그런 세상이 다시 오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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