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덕의 농담(農談)<22>

최근 도시민들의 귀농귀촌이 활발하다. 이들 중에는 성공적인 농촌정착으로 제2의 인생을 사는 이도 있고, 낯선 환경에서 어려움을 겪는 이도 있다. 본지는 재밌는 한상덕 씨의 생생한 귀촌일기 연재를 통해 후배 귀농귀촌인들의 시행착오를 덜어줄 지름길을 알려주고자 한다.

▲ 무밭.

이번 추석에는 요즘 명절 보내기의 대세라는 역귀성이라는 걸 해봤다. 서울에 있는 두 아들이 내려오기보단 우리 부부가 움직이는 게 나을 것 같아서였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조상신이 어딘들 찾아오지 못할까’ 라는 자가당착에 가까운 논리까지 개발해가며 서울에서 차례를 지냈다.

하지만 도시에서 보는 보름달과 농촌에서 보는 보름달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꼭 같은 보름달인데도 서울의 달은 창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노인 같았다. 내 마음을 내가 정확히 알까만 우리 동네 할매 친구들이 그리워서일 것이다. 달빛을 배경으로 밤송이가 툭툭 떨어지지 않아서일 것이고, 잎이 몇 개 남지 않은 감나무가 달빛 그림자를 만들지 않아서일 것이다.

추석에도 농촌은 그저 그런 일들의 연속이다. 여전히 씨를 뿌리고 모종을 심고 쉼터에 모인다. 게으르고 싶으면 게으르고 부지런하고 싶으면 부지런하면 된다. 새벽에 일어난 새는 많은 모이를 구하면 되고 늦게 일어난 새는 그만큼의 모이를 구하면 된다. 고속도로가 정체되건 말건 인천공항이 북새통을 치건 말건 가을 농부는 배추모종을 심고 무씨를 뿌린다.

교직에 있을 땐 몰랐는데 귀촌해 살아보니 자식 기르는 걸 ‘자식 농사’라고 말하는 까닭을 이해하겠다. 농사와 자식은 내 맘대로 되지 않지만 노력한 결과가 헛되지 않은 게 닮았고, 줄기를 당긴다고 성장이 빨라지지 않는 것도 둘의 공통점이다. 물이 많으면 뿌리가 썩고 물이 없으면 말라서 죽는 것도 겹치는 부분이다.

오이를 예로 들어보면, 오이는 스스로 알아서 잘 뻗어나가지만 넝쿨손이 감아서 지탱할 기둥은 농부가 만들어줘야 한다. 그래야만 실처럼 가는 넝쿨손이 침대처럼 스프링을 만들어 어른 팔뚝만한 오이를 매달 수 있는 것이다.  
자식과 부모와의 관계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싶다. 넝쿨손에게 기둥을 만들어주는 것처럼 자식 스스로 제 할 일을 할 수 있을 때까진 부모가 도와주어야 한다. 자립심을 길러 주는 것과 무관심은 다른 것이고 욕심과 사랑은 동의어가 아니다.  

오이는 내게 물을 달라고 하지 않았고 거름을 달라고 하지 않았다. 자식 또한 마찬가지가 아니던가. 나 좋아서 기른 자식이고 내가 사랑해서 낳은 자식이다. 해서 ‘내가 너를 위해 얼마나 희생했는지 아느냐’ 식의 늙은 아버지의 중얼거림은 삼가야한다. 하지만 말은 이렇게 해도 뜨거운 무언가가 가슴 속에서 치밀어 오른다. 아내는 가져온 음식 보따리를 푸느라 분주한데도 두 아들놈은 각자의 방에서 나오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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