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간10주년 특집 - ⑤농사펀드

▲ 농산물 수확기에 투자자들에게 사과를 배송하기 위해 포장작업을 하고 있는 류가농원.

금융권을 달궜던 펀드가 농업에도 진출했다. 일명 ‘농사펀드’가 바로 그것이다. 혹자는 농산물에 투자해 이익금을 받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을 할 수도 있지만 ‘농사펀드’는 이익금이 아닌 농산물을 돌려받는 형태의 새로운 구입방식이다.
농사를 짓기 전에 농업인이 농사 계획서를 올리면 각 투자자들이 투자하고 나중에 농산물로 돌려받는 후원형 펀드인 셈이다.
이 새로운 형식의 농산물 구입방식은 가치 있는 일에 참여하고 싶어 하는 젊은 층과 건강을 생각한 먹거리를 찾는 기성세대 사이에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농업인-영농자금·판로 걱정 없고
투자자-좋은 농산물 믿고 구입

공개하는 생산자, 기다리는 소비자
농산물이 나오기 전에 선 매입하는 농사펀드의 투자는 온라인상에서 이뤄진다.
펀드에 참여하는 농업인은 상품의 소개뿐 아니라 하고자 하는 일, 농사 방식과 환경, 농업인 자신의 이야기까지 모두 공개하며 펀드투자를 유도한다. 투자 금액 당 얼마만큼의 농산물을 어느 시기에 배송할지, 선투자금액을 어디에 쓸 것인지 등 계획서를 꼼꼼히 작성해 올려야 한다.
투자자(소비자)는 사업계획서를 살펴보고 원하는 농산물에 투자할 수 있으나 두 가지 사실을 염두에 둬야 한다.

하나는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돈은 미리 지불하되 농산물을 받을 때까지 수확 시기에 따라 최소 2주에서 최대 6개월 이상은 기다려야 한다. 생산을 약속한 날짜에 농산물을 수확할 수 없다면 더 기다려야 한다.
또 하나는 작황에 따라 풍작이든 흉작이든 투자자가 그 책임을 생산자와 고스란히 나눠야 한다는 것이다.

영농자금, 판로 확보, 농업인의 자존감
과수 농업 3년차인 강원도 강릉 장대기농원 반영숙씨는 무농약, 저농약 농법으로 생산과 판로에 어려움을 겪다가 최근 농사펀드에 펀드를 의뢰하게 됐다. 지난해에 시범적으로 작게 시작했는데 올해는 입소문으로 단 이틀 만에 펀드가 마감됐다.
올해 펀드는 5월 초순 경 약 10만 원 가량의 돈을 투자하고 자두, 복숭아, 사과, 배 등을 과일 수확철에 맞춰 11월까지 5번 가량 배송한다.  

반씨는 “무엇보다도 빚 없이, 판로 걱정 없이 농사를 지을 수 있어 좋다. 미리 돈을 지불하는 것은 보통일은 아니다. 투자자의 믿음을 생각하면 힘들어도 힘이 난다”고 말한다. 한 달에 한 두 번씩 작업일정이나 낙과피해 등을 페이스북에 올리며 소통의 시간을 갖는다는 반씨는 자연재해로 인해 피해를 보면 받는 농산물이 적어지는데도 오히려 격려하고 기다려주는 수준 높은 투자자가 있어 든든하다고 한다.

부모님과 함께 과수 농업에 종사하는 충북 충주 류가농원 유상미씨는 제초제 한번 안 치고 정성껏 키운 사과가 색이나 모양을 문제 삼아 제값을 받지 못하다 농사펀드로 좋은 대우를 받으며 팔려나가고 있다고 즐거워한다. 7월 초순 경 약 6만5000원 가량의 돈을 투자받고 사과품종에 따라 네차례 배송한다.

유씨는 “지금까지 지켜온 철학을 알아주고 소비자가 같이 고민해주고 응원해 주니 좋다. 이런 관계가 쌓이면 외롭지 않게 농사를 지을 수 있을 것 같다”며 “소비자와 꾸준한 소통으로 더 많은 신뢰를 쌓으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한다. 얼마 전 한 투자자에게 수고한다며 호두과자를 선물로 받았다는 유씨는 농부의 입장에서 배려하는 소비자들로 인해 존중받고 있다고 느끼게 된다고….

손해 봐도 괜찮아요~
농사펀드를 통해 여러 농산물을 구입해본 경험이 있는 강릉시에 사는 이금옥씨는 “중간 유통 없이 농산물을 사게 되면 생산자나 소비자 모두에게 이익이라고 생각한다. 농사과정이 공유되니 농산물에 대한 믿음이 더 커진다. 그 과정에서 오는 손해는 기꺼이 감수할 수 있다”고 말한다.
서울 서대문구에 사는 조혜원씨는 “자연이 익혀주는 계절대로, 자연의 순리대로 농산물을 받아보는 재미가 있다. 농사과정을 공유하면서 함께 농사짓는다는 기분이 든다”며 즐겁게 말했다.
이들은 얼마 안되는 돈이지만 소규모 농가에 보탬이 되고 건강한 농산물은 덤으로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기쁘게 참여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더 좋은 먹거리 환경으로
농사펀드를 운용하고 있는 박종범 대표는 생산자와 투자자간 신뢰가 구축되려면 우선 거짓정보는 철저히 배제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 철저히 농가를 검증하고 있는 박대표는 “농업인은 농사에 집중할 수 있게 하고, 소비자는 기다려서 먹을 수 있다면 더 좋은 먹거리 환경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힘줘 말했다.

농사펀드는 생산자와 소비자가 물건을 사고 팔 때 형성되는 갑을관계가 아닌 동업자로 인식할 수 있는 좋은 매개체로 점점 회원 농가와 투자자가 늘어나고 있다. 농사펀드는 앞으로 먹거리뿐 아니라 도·농간 이해의 장으로까지 발전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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