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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막했던 농업, ‘교육의 힘’으로 길 보여■ 제1회 농촌 스토리 공모 우수작 - 곽그루 씨의 스물다섯, 세상의 중심에서 농업을 외치다
김재경 기자  |  goril18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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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8.26  10: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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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앞 고구마 밭을 돌보고 있는 곽그루씨.

본지가 창간 10주년을 맞아 실시했던 ‘제1회 농촌 스토리 공모’ 우수작 중 이번 호에는 곽그루 씨의 ‘스물다섯, 세상의 중심에서 농업을 외치다’를 싣고자 한다.
또한 현장 심층취재를 통해 미처 글로 표현하지 못한 숨은 뒷얘기와 감동을 전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

“나의 꿈은 한국 최고
  마을기업·가족기업 만드는 것”

이제 포털에 내 이름 세 글자를 검색하면 꽤 많은 기사와 포스팅이 등장한다. 공중파를 비롯한 다양한 TV 프로그램에 출연했고, 심지어 어느 문화잡지의 화보까지 촬영했다. 대학교를 졸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내가 수백 명의 대학생들, 청중 앞에서 강연을 하게 되었다. 이 모든 일들은 작년인, 스물다섯 살의 나에게 일어난 일들이다.

올해 귀농 2년차인 내 이름은 곽그루. 전라남도 진도군의 한 작은 마을에 위치한 농장에서 고구마와 고추를 비롯해 사시사철 생산되는 다양한 농산물들을 직접 기르고 또 팔고 있다. 함께 일을 하는 동료이자 인생의 선배인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올해 92세에 접어드신 ‘허양념’ 할머니. 할머니는 이름처럼 참 특이하신 분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곧바로 내려온 내가 아직도 백수라고 생각하시는 우리 할머니는, 내가 용돈이라도 얼마 드리려 하면 일도 안 하는 애가 무슨 돈이냐며 오히려 꽁꽁 숨겨둔 지폐 몇 장을 쥐어주신다. 그래도 본인의 손녀가 TV에도 나오고 높은 사람들도 만나고 다닌다며 자랑스러워하시는 할머니. 요즘 우리 할머니의 가장 큰 소원은 내가 ‘돈이 많고 착한’ 사윗감을 만나 결혼하는 것이란다.

작년에 대학을 졸업하고 친구들처럼 직장이 아닌 창업을, 그것도 논밭을 선택한 이유는 다양하다. 비교적 어린 나이에 일찌감치 지쳐버린 도시의 퍽퍽한 일상, 그리고 우리 엄마 때문이다. 한창 예쁠 나이에 시골로 시집을 와 나이차이가 두 세대 가까이 나는 시어머니를 모시고 집안일에 농사일까지 거들어야했던 우리 엄마. 지금은 완전히 아줌마 중의 상아줌마가 되어버린 엄마를 보며 처음에는 화가 나고 답답하기도 했다.

‘나는 절대로 엄마처럼 살지 않을 테다’라는 말을 밥 먹듯이 입에 달고 다니던 내가 결국 엄마의 전철을 밟게 된 까닭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삶에서 느껴지는 은은한 행복 때문이었다.
우리 엄마 이숙향 여사님을 논하자면 일주일의 시간으로도 부족하다. 다른 엄마들처럼 딸에게 낯간지러운 애정표현도 못하는 까칠한 아줌마지만 누구보다 가정에 헌신적인 현모양처다.

시어머니보다는 할머니에 가까운 우리 허양념 여사님과는 티격태격해도 송산리에서 제일 가는 친구사이다. 씻는 것을 정말 싫어하시는 우리 할머니를 애 타이르듯 어르고 달래서 결국에는 때를 밀어주는 우리 엄마. 예전처럼 몸이 말을 듣진 않지만 자존심만은 하늘까지 닿아있는 우리 할머니도 엄마 앞에서는 치부라는 것이 없다. 그저 아이처럼 징징대기도 하고 혼나기도 한다. 사실 우리 엄마는 이미 몇 차례 ‘효부상’을 받은 자타공인 효녀 며느리이다. 그런 엄마 밑에서 자란 나의 소심한 고민은 과연 나는 저런 훌륭한 며느리가 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우리 아버지 곽청현 아저씨는 나와는 애증의 상대이다. 일평생을 사업만 해오시던 분이라 농사를 지을 때에도 사업가의 마인드로 결정하고 진행하신다. 추진력도 워낙 강하신 분이라 약간은 꼼꼼하고 느린 나와 엄마가 항상 못마땅하신 듯하다. 실은 내가 내려온 지 세 달도 안 되었을 때 어떻게 하면 다시 서울로 올라갈 수 있을까 고민하게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다.

우리의 갈등은 상품을 구성하는 일부터 논밭에서의 작업까지 끊임이 없었다. 예를 들어 내가 농산물에게도 예쁜 옷을 입혀야 한다고 주장하면 아버지는 디자인에 돈을 들이는 것은 쓸데없는 것이라며 가장 중요한 것은 외관이 아니라 품질이라고 일축했다. 십년 넘게 펜과 노트북만 잡았던 내가 서툰 호미질로 아기고구마들을 밭에 옮겨 심었을 때는 이상하게 내가 심었던 줄의 고구마들만 며칠이 지나자 죄다 죽어버렸다. 고추밭에서 아기고추들을 튼튼하게 지지해줄 버팀목들을 만들 때에도 나의 실수는 빛을 발했다.

‘처음 하는 일들이라 그럴 수도 있지’라는 나의 생각과는 다르게 아버지의 엄청난 구박과 잔소리는 진심으로 괴로웠다. 틈만 나면 내 입에서는 ‘다시 올라가 버릴 거야’, 아버지 입에서는 ‘다시 올라가 버려라’ 하는 맘에도 없는 협박들이 오고 가면서도 친구 분들과 은근하게 취하실 때는 항상 나의 칭찬이 빠짐없었다. “니들은 딸이 없지? 딸이 있어야 해.”하며 아들부자들의 마음을 긁어놓기도 하시고, 팔불출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아버지의 대화주제는 언제나 ‘기승전딸’이었다. 나 역시 안에서는 한 없이 버릇없고 이기적인 딸이지만 어느 자리에서도 가장 존경하는 분이자 롤모델로 주저 없이 우리 아버지를 꼽는다.

최근에는 대학에 다니던 남동생도 전공하던 산업디자인을 물려놓고 논밭으로 이직을 했다. 워낙 착하고 성실한 아이라서 나로 인해 골머리를 앓던 부모님의 마음 속 빈 구석이 채워질 수 있었다. 나에게 묘한 열등감을 느끼면서도 친구들에게 누나자랑을 늘어놓는 귀여운 동생이다. 무엇보다도 내가 하지 못했던 힘쓰는 일들이나, 기계를 다뤄야 하는 일들, 조금 귀찮아했던 일들을 척척 처리해주니 나로서는 무지 기특하고 또 반가운 동생이다. 또한 나 하나로 이미 기특해하고 예뻐해 주시던 분들이 우리 남매를 보시면 그 느낌이 감탄과 감동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이런 남매를 둔 우리 부모님의 가정교육 방식과 인품을 찬양한다.

이런 우리 가족이지만 내가 귀농을 한다고 내려왔을 때 사실 주변 분들의 만류도, 걱정도 많았다. 번듯한 대학까지 졸업한 딸을 시골로 불렀다며 우리 부모님도 꽤나 고초를 치렀다.
실제로 나를 만난 사람들은 “진짜 농사짓는 거 맞아요?”하며 놀란다. 도시사람들이 생각하는 농부는 시커먼 피부에 촌스러운 패션을 해야 하는데 나는 꽤나 세련되었나보다. 심지어 내 블로그를 보고 주문전화를 해 주신 분들 중에는 목소리가 너무 어리다며 그냥 끊어버리신 분들도 계시다. 아직도 존재하는 농부에 대한 편견에 젊은 농부, 아가씨 농부로서 내 자신이 더욱 알려져야겠다고 느낀 부분이다.

지금 나의 꿈은 한국 최고의 마을기업, 가족기업을 만드는 것이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아니 살아가는 누구라면 안심하고 정직한 품질의 농식품을 정직한 가격으로 맛볼 수 있도록 일조하고 싶다. 또한 여성이라도, 농민이라도, 농촌에서라도 가능하다는 것을 온 몸으로 보여주고 싶다. 때문에 더욱 성실하고 겸손하게 일하고 크게 성장해서 누군가에게 ‘롤모델’이자 꿈이자 희망이 되고 싶다. 내가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를 보며 자라왔고 배웠던 것처럼.
또 다른 꿈은 농촌의 여성들과 다문화가정, 주부들과 아이들을 위한 아주 쉬운 마케팅 책을 쓰는 것이다.

막막했던 농업에서 길이 보이고 뜻이 보인 것은 모두 교육의 힘이었다. 귀농을 하고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진도군농업기술센터와 전남농업기술원이었다. 잠을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모두 배우는 시간이라 생각했다. 밭에서 혹은 교육장에서. 아주 유용했지만 생소하고 어려운 개념들을 만나기도 했다. 그런 마케팅 개념들을 이해하고 실제로 일과 삶에 적용할 수 있도록 아주 쉽게 풀이한 마케팅 책을 쓰는 것이 나의 사명이자 목표가 되었다.

이제 포털에 내 이름 세 글자를 검색하면 꽤 많은 기사와 포스팅이 등장한다. 얼마 전에는 거리를 걷다가 나를 알아봐주시는 분을 만나기도 했다. 이 길이 정말 내 길이 맞는지 헷갈리며 우울해하던 밤, 값진 농산물과 고마운 손편지에 감동을 전해주시는 고객분들의 메시지에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친구들처럼 회사에 취직했다면 나는 지금보다 더 행복했을까? 아니, 지금처럼 행복했을까? 사실 그것은 확답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내 삶에 감사하며, 주어진 것에 만족하며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스물다섯 살에 세상의 중심에서 당당하게 농업을 외치던 나는 앞으로도 십년, 이십년, 백년 계속해서 외칠 것이다. 나는 농업의 중심에서 세상을 외친다고.

 

■현장 인터뷰

   
▲ 이웃마을 농산물도 함께 판매하고 있는 곽그루씨의 이동수단은 자전거다. 왼편에 어머니 이숙향여사.

완벽한 농부가 아닌 진정한 농부이길…

농산물은 생산·판매 모두 중요
초짜농부 위한 귀농학교 세우는게 최종 목표

이미 많은 매스컴에 노출돼 유명인(?)이 된 곽그루 씨. 곽그루 씨를 만나기 전까지는 농부라기보다 요즘 트렌드를 잘 맞춰 사는 신세대 이미지가 강했다.
진도의 바닷바람이 살짝 불어오긴 하지만 연일 최고기온을 경신하는 폭염 속에서 그나마 선선한 새벽과 오전시간 밭일에 매달리다 땀에 젖은 얼굴로 모습을 드러낸 그는 ‘천상 농부’의 모습 그대로였다.

“새벽에 고추 널고, 밭 한바퀴 돌고 인근 농장에 가서 사진도 찍고 상담도 하고 왔어요.”
곽그루씨는 현재 ‘진도농부 미스팜’ 대표로, 본인이 수확한 농산물은 물론 이웃에서 수확한 농산물까지 블로그, 개인쇼핑몰, 농산물 위탁판매업체나, 농사펀드 등을 통해 판매를 하고 있다.
지난해 5월 사업자등록을 내고 첫 달 13만 원의 이익을 낸 후, 매달 눈에 띄게 매출이 늘고 있어 요즘 신바람 나게 일을 하고 있다.

   
▲ 진도에는 여성 청년 농부가 귀하다. 그래서 각종 사례 발표 자리에 자주 선다. 사진은 2016 강소농 우수자율모임체 경진대회에서 사업계획서를 발표하고 있는 모습.

“농산물도 알아야 잘 팔 수 있죠”
진도군 군내면 송산리에서 농사를 짓던 모친 이숙향씨는 인터넷 카페나 블로그 등을 통해 농사 일기를 쓰면서 판매까지 겸하고 있던 터라 곽그루씨는 자연스럽게 농사일과 판매는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도 힘든 농사일을 직접 지을 거란 생각은 없었어요. 대학에서 상경대 계열에 진학한 것도 농산물 마케팅이나 판로에 더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에요.”

대학을 졸업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인터넷을 통한 직거래 판매를 계획했던 곽그루씨에게 부친 곽청현씨는 “농대를 나온 것도 아닌데 알아야 잘 팔 수 있다”며 농사일을 함께 하길 권유했다.
현재 곽그루씨는 몸은 힘들지만 알아야 잘 팔 수 있다는 말에 공감하며 계속해서 농사일에 재미를 붙이고 있다. 사실 농산물을 판매할 때 농사를 알고 파는 것과 모르고 파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농산물을 대하는 애정도 달라지고 소비자의 요구도 더 잘 맞출 수 있게 됐다고.

기존의 농산물과 차별화 시도
서울이나 외국에서 생활하는 친구들은 식구들과 함께 있고 집밥을 먹는 곽그루씨를 부러워한단다. 물론, 가족이 함께 한다는 좋은 점도 많지만 부친과 너무 닮은 성격 탓에 부딪치는 경우가 많다고.
가장 많은 갈등을 겪는 부분이 바로 디자인이나 포장에 관한 것이다. 옛날 방식 그대로 내실만을 중시하는 기성세대인 부친은 디자인이나 포장에 많은 돈을 투자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디자인을 바꾸고 점점 좋은 결과를 얻고부터는 많이 누그러졌지만 여전히 부친의 잔소리에서 해방되긴 어렵다고.

곽그루씨는 기존의 이미지와 차별화를 위해 시도를 많이 하고 있는 중이다. 고향에 내려오면서 마음속에 품었던 계획을 하나하나 펼쳐보고 싶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늘어나는 1인 가구에 맞춰 젊은 층을 타깃으로 예쁘게 소포장한 농산물을 판매했다. 그런데 오히려 나이가 있는 주부들이 젊은 농부인 곽그루씨를 기특하게 여기며 많이 팔아준다.

내 꿈은 ‘그루시골학교’
억대 매출을 올리고 있는 여럿의 청년농부와 교류를 하고 있는 곽그루씨는 많은 매출을 올리는 것도 좋지만 초짜 농부들을 위한 귀농학교를 만들고 싶은 것이 최종 목표다. 벌써 ‘그루시골학교’라는 이름까지 지어 놨다.

‘그루시골학교’는 남녀노소 국적 제한이 없다. 가장 먼저 가르치고 싶은 것은 ‘자신이 왜 시골에 내려왔는지’ 동기를 확고히 하는 것이라고. 그래야 일괄적이지 않은 맞춤형 교육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한다. 사람마다 성향과 성격이 다르듯이 농산물도 각각 그 성향이 있으므로 그 사람에 맞는 작물을 재배하도록 돕고 싶단다.

“아직 저도 초보 농부지만, 일찍 시작했으니까 어느 정도 연륜이 되면 쏟아낼 수 있는 노하우도 많아지겠죠.”
자연이 좋아 자연을 택한 곽그루씨. 진도는 사시사철 땅이 얼지 않는 지역이어서 1~2월에 ‘겨울꾸러미’라는 이름으로 노지에서 나는 봄동과 시금치, 대파 등 야채를 판매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 해안성 기후에서 자란 진도 구기자는 다른 곳에 비해 가격도 비싼데 한 달 만에 품절될 정도로 잘 팔렸다고 자랑이다.

“진도는 남자가 없어서 그렇지 참 좋은 곳이에요~”
아직 학생티를 벗지 못한 앳된 얼굴로 농담을 곧잘 하는 곽그루씨.
그의 바른 인성과 농업에 대한 열정, 지역을 사랑하는 마음을 본지에 다 싣지 못해 안타까울 뿐이다. 그를 한번 만나고 나니 더 오래오래 알고 지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곽그루씨 우리 친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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