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덕의 농담(農談)<18>

▲ 쇠비름.

최근 도시민들의 귀농귀촌이 활발하다. 이들 중에는 성공적인 농촌정착으로 제2의 인생을 사는 이도 있고, 낯선 환경에서 어려움을 겪는 이도 있다. 본지는 재밌는 한상덕 씨의 생생한 귀촌일기 연재를 통해 후배 귀농귀촌인들의 시행착오를 덜어줄 지름길을 알려주고자 한다.

없는 사람이 살기는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지만 올 여름은 아닌 듯하다. 에어컨 없는 시골생활이 보통 힘든 게 아니다. 열린 문으로 불같은 바람이 들어오고 벌에 쏘인 듯 등이 따갑다. 날파리들이 극성을 부려 밤은 물론이고 낮 시간 외출도 어렵다.

추울 땐 옹기종기 모이는 것만으로도 체온이 올라가는데 더울 땐 자기의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부터 미워하게 된다. 통혁당 사건 무기수 출신 신영복의 편지에서 읽은 “옆사람을 단지 37도의 열 덩어리로 생각하게 만든다”는 구절이 제대로 실감나는 폭염이다.  
 폭염 탓에 오이도 겨우겨우 하루를 견디는 눈치다. 축 늘어진 덩굴손은 뻗어나가지를 못하고 매달린 열매는 알아서 노랗게 야위어가고 축 늘어진 그림자는 눌러 붙은 듯 꼼짝하지 않는다.

하지만 야생초들은 여전히 녹색으로 중무장한 채 더위도 먹지 않고 가뭄도 타지 않는다. 특히 쇠비름은 전신으로 천지의 기운을 빨아들인 듯 음기와 양기를 동시에 보여 준다. 생기(生氣)는 푸른빛 잎으로 나타나고, 사방으로 뻗어나가 성장하는 기운은 빨간 줄기로 나타나며, 땅 속의 기운은 하얀 뿌리를 만들고, 쇠비름의 모든 건 검은 씨로 집약된다.

그렇거나 말거나 아내는 쇠비름을 좋아하지 않는다. 잎은 간에 좋고 줄기는 심장에 좋고 뿌리는 폐에 좋고 특히 여성 갱년기에 특효라고 아무리 말해도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생김새가 마음에 들지 않고 끈적거리는 느낌이 있어 나물 같지 않단다. 민간 약재로 쓰인다는 건 알지만 흔하디흔한 야생초여서 귀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고 뚱하게 말했다.

나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왜 아내가 쇠비름을 제쳐놓고 상추 같은 채소류를 먼저 챙기는지 이해가 되질 않는다. 다양한 약효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인간의 입맛에 인공적으로 맞춘 것에 불과한데 말이지.
물론 나물로서의 쇠비름은 맛으로도 채소에 지지 않는다. 미끄덩거리고 무덤덤하고 무내용이어서 자주 먹어도 여전히 그 맛이다. 사람으로 치면 세련된 사람을 만나는 느낌보다는 속 깊은 사람을 만난 기분이다.

야생초와는 달리 채소는 여름 더위를 잘 견디지 못한다. 인위적으로 재배되는 동안 자연에 대한 적응력이 저하됐고 천지 기운을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 또한 감소됐기 때문이리라.
인간의 이기심이 채소의 기운을 빼앗고 그로인해 다시 인간이 피해를 보고 있는 셈이다. 채소를 보면 눈앞의 이익에만 급급해 스스로 발등을 찍는 우리들 자화상이 보인다. 너무나 슬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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