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생활개선연합회장 탐방 - 곽노경 천안시연합회장

▲ 배에 씌우는 포장을 손보고 있는 곽회장.

한국생활개선천안시연합회에서 20여 년의 회원 활동과 회장으로 4년을 꽉 채워가는 곽노경 회장. 고단한 농부로 살아가는 동안 좋은 벗이 돼준 생활개선회에 대한 마음이 남다르다. 임기가 끝나면 회원으로 돌아가 그 소임을 다하겠다는 곽회장을 만나봤다. 

묘목 나누며 수확의 기쁨도 함께
기술센터에 생활개선회 상징탑 건립 예정

“아직도 멀었지만
 품어주는 마음으로
하려고 노력했죠~”

구불구불 시골길을 들어가니 내비게이션은 미치지 못하나 초록의 산세가 기분 좋은 바람과 마중 나온다. 널찍널찍한 논과 과수원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아담한 체구의 곽노경 회장의 자연과 어우러지는 미소가 삶의 깊이를 가늠하게 한다.
곽회장은 22살 어린 나이에 시부모, 시할머니, 대고모, 미혼의 시누 3명, 시동생까지 대식구가 있는 죽계리로 시집을 왔다. 친정 마을에 사시는 시고모님이 곽회장을 눈여겨보고 18살 때부터 조카며느리로 들이려고 친정부모님을 설득했다고 한다. 건축 일을 하며 살림이 넉넉했던 친정부모님은 귀한 딸을 시골로 시집보내기 싫어서 수년간 거절을 했건만, 5살에 엄마를 여의고 계모 밑에서 자랐을 남편을 생각하니 마음이 가더란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시집을 왔지만 현실은 너무나 달랐다는 곽회장. 그래도 특유의 뚝심으로 개간한지 3년밖에 안된 과수원의 묘목을 돌보며 안팎으로 살림을 도맡아 했다.
아이를 한 번 업어 줄 시간이 없을 정도로 과수원 일에 매달린 결과, 시작할 때는 4950㎡(1500평)였으나 1만9800㎡(6000평)로 과수원을 넓힐 수 있었다. 현재 생산되는 배의 70%는 성호배작목반을 통해 미국으로 수출하고 나머지는 직거래와 청과시장 판매로 안정적인 판로를 두고 있다.
층층 시댁 식구들에 기계도 없고 장치도 편리하지 않았지만 그 많은 일을 해가면서도 1994년 생활개선회원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생소한 영역이지만 매사에 열심히 하면 된다는 마음으로 무조건 열심히 했더니 2013년 천안시연합회장에 취임하게 됐다.

“큰 강과 바다는 작은 물줄기를 가리지 않는다”는 말을 하며 “아직도 멀었지만 품어주는 마음으로 하려고 노력했죠~” 라며 생활개선회를 이끄는 마음가짐을 드러냈다. 여자가 밖으로 나다니면 흉이 잡히던 시절. 생활개선회 활동에 누가 되지 않도록 밥은 굶더라도 집안일이건 바깥일이건 부지런히 해 놓고 활동을 했단다.

회원들의 문화동아리를 만들어서 즐겁게 활동하던 일,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하던 것, 여러 봉사활동 등 보람있는 활동도 많았지만, 행사에서 기념품 대신 나눠준 묘목을 잘 키워서 열매를 수확했다는 회원들의 말을 들으면 기분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더란다. 수확의 기쁨을 진정 누릴 줄 아는, 그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은 곽회장이야말로 뼛속까지 농부가 아닐까?

그렇게 부지런을 떨며 다녔던 생활개선회. 이제 4년을 꽉 채울 임기도 얼마 남지 않았다. 현재 천안시농업기술센터에 생활개선회 상징탑 건립을 준비하고 있다는 곽회장은 “이제 나는 회원으로 돌아가서 후임 회장이 잘 이끌어 나갈 수 있게 보필하고 격려해 줘야죠”라며 퇴임을 앞 둔 서운함보다 새로운 시작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설레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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