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쌉쌀한 인생

“냉장고 문짝이 떨어져 나가고 대형 TV 화면이 깨진다. 도끼와 전기톱으로 집안 구석구석을 닥치는 대로 부숴버린다.” 파열음에 공포감이 들다가도 묘한 후련함이 느껴진다. 남자 주인공은 무엇이든 파괴하지 않고는 살 수가 없다. 부수면서 그 안에서 슬픔의 실마리가 풀리는 것처럼 집요하게 같은 일을 반복한다.

최근 상영 중인 영화 〈데몰리션(Demolition)>에서 보여주는 장면들이다. 남자 주인공 ‘데이비스(제이크 질렌할 분)’는 교통사고로 하루아침에 아내를 잃는다. 상실감에 빠진 그는 뭔가를 고치기 위해선 전부 분해하고 그 속에서 원인을 알아내야 된다고 믿는다. 산산조각 나버린 감정 속에서 자신을 찾아가는 해법처럼 무서운 파괴력을 보여준다.
완전한 파괴는 어떤 의미에서는 새로운 시작일 것이다. 오래된 건축물은 수시로 보수공사 하는 것보다는 새 건물을 짓는 게 효율적일 때도 있지 않던가. 억지 같지만, 사람에 대입해보면 머릿속에 낡은 생각들이 가로막혀 있으면 새로운 생각들이 들어갈 구멍이 없을 것이다. 머릿속을 비워야 여유로운 공간 속에서 좋은 생각들이 자리할 수 있지 않겠나.

본격적인 휴가철이다. 휴가철에는 나를 내 자리에 놓아두어야겠다. 매번 생각하다가 중간에 포기할지도 모르겠지만 올해만큼은 그랬으면 좋겠다. 첫 번째 행동 수칙. 휴가 기간만이라도 ‘완전한 나’로 살아보는 거다. 일단 호칭부터 파괴해보면 어떨지. 엄마·아내·며느리·남편·가장이라는 호칭들을 모두 훌훌 떼어버리고 잠시 본래의 나로 돌아가서 자유인이 되어 보는 일. 나는 나를 주체적으로 파괴할 권리가 있다. 자신을 스스로 옥죄는 가치관과 의무감들로 인해 숨통을 막던 장벽을 부숴보는 거다.

가수 김국환은 노래했다. “자~이제부터 접시를 깨자, 접시 깬다고 세상이 깨어지나”  ‘우리도 접시를 깨뜨리자’라는 이 노래를 듣다 보면 여성을 위한 위안처럼 들리며 속이 다 후련해진다. 마음속에 쌓인 화나 분노를 파괴하고 여유 있고 즐거운 마음을 가져보는 거다.

▲ 류미월(시인, 수필가, 문학강사)

부정적 의미의 파괴가 아닌 긍정적 의미의 파괴를 말하고 싶은 거다. 휴가 기간만이라도 뇌 속의 불필요한 강박들을 파괴해야겠다.
‘break’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니 <깨다, 부수다 외에 명사일 때는 휴식(休息)>이라는 의미로 쓰인다. 휴가를 맞아 나를 힘들게 하는 목록을 정하고 맘껏 부숴야겠다. 비움은 다시 시작할 힘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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