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쌉쌀한 인생

농촌여성신문에 ‘한상덕의 농담(農談)’을 연재하고 있는 한상덕 교수의 초대를 받아 경북 고령을 다녀왔다. 고령군과 매일신문이 공동 주최하고 한상덕 교수가 연출하는 ‘대가야 영화음악제’였다.

막상 가보니 예전 고향 어르신들 잔칫날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그때 마을 스피커에서는 이장님의 목소리가 흘러나왔었다. “잘 주무셨죠, 주민 여러분? 오늘은 평촌댁 할머니 생일상을 정성껏 준비했으니 아침 드시러 오세요!” 그러면 사이다 한 병씩을 들고 할머니들이 잰걸음으로 생일 집으로 모여든다. 얼굴만 봐도 반가운 할머니들이 잔칫상 앞에 모여 앉아 음식을 드시며 손주·며느리 얘기로 마을 통신이 오간다. 함께 늙어가며 생일을 축하하고 음식을 나눠서 기쁜 날이었다.

언제부터인지 지역에서 열리는 축제에 참석해보면 초대가수 몇 명이 판에 박힌 노래를 한다. 청중은 귀에 겉도는 음악이라도 자리를 지키다 어느 순간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뒷모습이 아름답지 못한 행사를 보기가 일쑤였다. 과연 누구를 위한 잔치인지?

하지만 이날 행사는 달랐다. 음악과 영화, 군민이 하나가 된 축제였다. 야외 잔디광장에 배열한 관람석의 배치도 지역 단체장과 귀빈보다도 지역의 어르신인 할머니·할아버지들을 앞자리에 배려한 신선함이 돋보였다. 영화에 음악을 입힌 ‘영화음악제’라서 스크린에서는 영화의 명장면들이 추억처럼 스쳤고 귀에 익숙한 주제곡들이 흘렀다. 경북도립국악단과 한상덕밴드의 가야금과 전자음이 심금을 적시며 하늘로 퍼지고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행사가 시작되면서 이벤트로 관람객 중에서 지휘자를 모셨다. 두려움도 없이 무대 위에 올라 춤추듯 지휘하는 ‘아마추어 지휘자’들의 모습은 웃음을 주었고 함께 소통하는 색다른 즐거움을 주었다.
한 시간 전에 미리 와서 자리를 지키던 할머니·할아버지들이 행사 직전엔 점잖게만 보였는데 흥이 나자 며느리와 아내와 손잡고 춤을 추며 즐겁게 망가지는(?) 모습이 더 살갑게 느껴졌다.  

▲ 류미월 시인, 수필가, 문학강사

별빛이 내리는 돗자리에 앉아 맥주와 치킨을 먹으며 흥겹게 즐기는 모습은 한여름 밤을 제대로 즐기는 근사한 축제의 마당이 되었다. 행사가 끝나고 의자 밑에 흩어진 쓰레기를 일사불란하게 치우고 나가는 관중들의 성숙한 시민의식도 깔끔한 이미지를 줬다.
기발한 발상의 창의적 기획과 연출은 축제의 장을 한껏 풍성하고 볼거리와 만족감을 준다. 농촌여성신문도 이런 행사 하나 만들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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