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 권택윤 연구관

전주로 2년 전 이사하였다. 인근의 김제평야가 지평선을 이룬다. 벼농사는 지방으로 이전하면서 하고 싶은 일이었다. 농촌현장을 경험하고 생각하면서 실행하고 싶었다. 이왕이면 벼농사를 경험하기로 한 것에는 몇 가지가 이유가 있다. 우리 민족의 주식은 쌀이다. 민족의 주식은 그저 먹거리가 아니다. 민족의 역사이고 문화이다. 벼는 우리 선조가 먹어 왔었던 것처럼 손자의 손자 세대에게도 전해질 문화이다.

벼는 세계 자유무역 환경에서 큰 이슈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쌀을 지켜야한다는 강한 정치적 선언을 한다. 그 과정에서 벼를 생산하는 농민들의 사정이 애절하다. 직접 벼농사를 하면서 그 애절한 현장을 경험하고 싶었다. 그리고 나름의 해결방안을 고민하고 싶었다. 농업을 30년 이상 공부하면서 탁상공론에서 탈피하고 싶었다. 70년대 쌀 자급을 달성하였고 현재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가졌음에도 벼농사가 도전을 받고 있다는 것은 문제이다.

벼 연구에 대한 세계 경험을 현장에서 다시 기억하고 싶었다. 필리핀에 있는 국제미작연구소를 20년 전 방문하였다. 벼가 세계 4대 식량작물임을 배웠다. 1970년대부터 아시아 벼 생산성 증진 연구개발 현장을 보았다. 아이러니하게도 필리핀은 경제적 비교 우위론에 따라 벼 생산에 소극적이었다. 그러다 보니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협의체인 ASEAN의 협상에서 필리핀은 쌀 무역에 있어서 항상 수세적 위치에 있다.

몇 년 전 필리핀 정부 연구소 벼 전문가와 한국 정부의 공적원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한국 정부가 수십억 원을 들여 원조한 벼의 수확 후 처리 시설이 무용지물이라고 하였다. 사연인 즉 현지에 기술자가 없어서 운용이 제대로 안 된단다. 운용 인력육성 정도는 수혜국에서 준비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은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 다음 방문한 곳이 태국의 벼 생산 현장이었다. 태국 벼 연구소 소장님의 안내를 받아 연구소와 국왕의 벼 생산 모델 프로그램 현장을 방문하였다. 태국은 우리나라 벼 생산면적의 약 13배 규모로 세계 시장에서 쌀 수출 1위국이다. 약 3백 만 헥타르가 과다 염분 농도로 피해를 받고 있다고 하였다. 2008년 자연재해로 벼 생산량이 급격히 감소하여 수출을 제한하였다. 그 때 쌀 수입국인 말레이시아에서는 평상시 가격의 3배로 쌀 가격이 상승하였다. 돈 주고도 쌀을 살 수 없는 심각한 상황이 발생하였다. 몇 년 뒤 말레이시아 정부의 고위 관료를 만났는데 쌀 생산성 증진 정책의 느슨함을 한탄하고 있었다.

몇 년 뒤 파푸아뉴기니 동부 고원지방의 벼 생산 지역을 방문 한 적이 있다. 그 곳은 우리나라 기업이 건축한 '용기댐'의 아래 지역으로 벼농사에 적합한 조건으로 보였다. 재미난 사실은 그 지역 도지사님이 우리나라의 벼농사 현장을 둘러보고 벼 생산 정책을 결정하였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2억 원 어치의 벼 생산 기계장비를 구입하였단다. 현지 1인당 GDP가 300달러 미만인 것을 생각하면 어마어마한 투자규모이다. 식량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란다. 옛 식인종의 나라에서 쌀을 생산하고 있다니 색다른 생각이 들었다.

그 다음 방문지는 서부 아프리카 세네갈이다. 쌀의 생산과 소비가 늘고 있는 지역이다. 벼를 키우기 위해 원조사업으로 관개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고온 다습한 기후와 광대한 면적을 보면 쌀 생산 최적지임에는 분명하다. 논에는 벼 반 잡초 반이다. 생산기술이 현저히 떨어진다. 잡초만 잘 제거하여도 생산량이 30%로 증가한다는 현지 전문가의 말이 인상적이다. 일본 정부는 아프리카 대륙 전역에 벼 생산 기술 전파를 하고 있다. 아프리카의 식량 부족 문제를 쌀로 해결하려는 노력이다.

미국 농무성의 지원을 받아 캘리포니아에서 벼 연구를 2년 동안 했었다. 미국 환경법은 논에 비료나 농약을 살포하면 물을 일정기간 가두어 두어야 한다. 캘리포니아의 건조하고 강한 햇 빛은 논물의 증발을 일으켜 물속의 염분을 농축시킨다. 염분의 농축은 벼의 생산성을 현저히 감소시킨다. 이 현장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연구를 하였다. 최근 장기가뭄으로 물이 많이 필요한 벼 생산이 직접 영향을 받고 있다. 호주도 물 부족으로 벼농사를 포기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현재 농촌진흥청에서 가뭄과 염분이 과다할 경우 벼는 어떻게 생리반응을 하는가에 대한 연구를 수년 동안 하고 있다. 기후변화로 물 부족과 염분 문제가 일어나고 있다. 해결 방법을 벼가 가르쳐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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