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회 농촌 스토리 공모 우수작 - 김선영 씨의 청년농업인 창농을 꿈꾸다

▲ 28살 도시청년 삼채재배로 창업에 성공, 삼채는 누구나 쉽게 재배할 수 있는 품목.

본지가 창간 10주년을 맞아 실시했던 ‘제1회 농촌 스토리 공모’ 우수작 중 이번 호에는 김선영 씨의 ‘청년농업인 창농을 꿈꾸다’를 싣고자 한다.
또한 현장 심층취재를 통해 미처 글로 표현하지 못한 숨은 뒷얘기와 감동을 전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농업·관광 접목한 새로운 산업 만드는 게 꿈
스타트업의 한 분야에 창농도 있다

안녕하세요. 호주에서 유학 후 창농을 한 청년농업인 귀농 4년차 28살 김선영이라고 합니다.
저는 농촌에서 태어나지도, 그리고 농업에 대한 공부를 한 적도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농촌에 있으면서, 농업회사법인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농업은 앞으로 무궁무진한 발전을 가져올 것이며 저의 꿈을 이룰 수 있는 특별한 산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계속해서 외국에 나가 공부를 하고 싶었던 저는 군복무를 마치기 전부터 아르바이트 할 곳을 찾았습니다. 전역을 하자마자 하루에 2개의 직업을 갖고, 잠을 줄여가며 비행기 티켓과 기본 생활비를 모았습니다. 부푼 꿈과 열정 그리고 저의 뜨거운 에너지를 가지고 호주 브리즈번이라는 도시에 도착했습니다. 처음부터 유학생활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영어도 통하지도 않고 생활비로 모아둔 돈은 바닥나고, 학교생활도 어렵고...

하지만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절대로 눈물을 흘리거나 후회하지 말자라는 게, 저의 큰 유학생활 목표였습니다. 따라서 약 3년의 유학생활 동안 한국말은 한 번도 하지 않고, 한국사람들과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호주에서 있으면서 정말 다양한 일을 했습니다. 새벽4시 청소부부터, 럭비경기장에서 맥주도 팔고, 자전거타고 인력거처럼 관광객들 가이드도 시켜주고, 특급호텔에서 일도 해봤습니다.

그러면서 평소 제 마음속에는 ‘창업을 하자’라는 마음이 항상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다른 나라 친구들과 종종 농업에 관한 이이야기를 했었고, 교수님이 앞으로 농업은 전세계적으로 가장 유망한 산업이 될 것이라고 강의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 말을 들으면서 농업과, 그리고 내가 공부를 하고 있는 관광을 접목시켜 새로운 산업을 만들어 보자라는 마음이 커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더 큰 꿈과 그리고 30세 이전에는 한국에 돌아올 생각이 없었던 저는, 과감히 유학생활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오게 됐습니다. 그 이유는 ‘삼채라는 채소가 있다’는 이야기를 아버지로부터 소개받았고, 조사해보니 굉장히 매력적이었기 때문입니다.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삼채’라는 채소 재배에 몸과 마음을 받쳤습니다.
부족한 지식을 채우기 위해 aT농식품 유통교육원에서 농산물 마케팅과정과 외식산업 과정을 수료했습니다. 그리고 중간중간 시간을 만들어 계속해서 공부 했습니다. 처음에 농사를 짓고 재배를 하면, 다 팔리는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돈을 벌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수확을 하고 나서도 재배한 삼채에는 아무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때부터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경영자마인드를 가지고 전략적으로 농업을 ‘창농’의 개념으로 접근하지 않으면, 수익은 커녕 농촌생활을 접을 수밖에 없겠구나. 직접 판로를 개척하고, 살아남기 위해서 열심히 뛰어야 된다고 생각하고, 제 마음속에 뜨거운 에너지가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그 첫 단계로 블로그를 운영하기 시작했습니다. 주위에 있으신 분들은 경매시장에 들어가라, 가락시장에 들어가라 조언을 해주셨지만, 저는 정성들여 재배한 저의 채소들을 헐값에 넘기고 싶지 않았습니다. 제 머릿속에는 직거래를 해야겠다는 생각만 있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서울 강남에 가서 블로그를 운영하는 방법, 마케팅을 하는 방법에 대해 배우고 공부했습니다. 그 결과 제 블로그에는 하루에 3,000명 씩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직거래로 매출을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SBS 등에 삼채총각으로 저희 삼채농장이 소개되면서 전국의 많은 사람들이 농장을 방문해 주시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직거래로 소비자들한테 판매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다음 단계로 생각해낸 것은  삼채라는 채소를 잘 모르기 때문에, 레스토랑에서 요리를 해서 나가면 분명 소비자들은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삼채는 달고 쓰고 맵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요, 파, 마늘 부추 등을 합쳐놓은 맛이라서 한국인들이 분명 좋아할것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 즉시 서울에 있는 유명 레스토랑 등을 찾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가진 것이라고는 뜨거운 열정과 두 다리였습니다. 여기저기 사업계획서를 집어넣고, 미팅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작년에 대기업 S그룹에서 운영하는 한식레스토랑에 삼채라는 채소를 납품할 수 있었습니다. 정말 운이좋게도 다른 곳과 계약이 거의 성사될 뻔했지만 저희가 키운 삼채를 보고 품질이나 가격면에서도 너무나 좋다고 하면서 극적으로 계약이 이루어졌습니다.
현재 그곳 외에도 다양한 곳과 삼채 납품과 관련해서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농법은 계속해서 발전을 해야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현재 삼채를 양액재배로 재배하기 위해 많은 연구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4계절 내내 납품처에 공급함으로써 농가소득 증대에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 밖에도 농업과 관광을 접목시키기 위한 브랜드 개발에도 많은 생각과 시간을 투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농촌에서 저의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다 보니, 2013년도 진천군 영농후계자로 선정됐으며, YTN사이언스 방송에도 출연을 하게 되고, 최근에는 서울에서 귀농·창농에 대해 강의를 하게 돼 지금까지 정말 쉼없이 달려온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제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며, 제 나름대로 성취감이 있기 때문에 점점 중독이 되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농업이 많이 어렵습니다. 농촌은 고령화시대에 접어든지 오래고, 일할 사람들이 없습니다. 하지만 도시에서는 일자리가 없다고 난리고 청년들은 공무원과 대기업 취직에 목숨을 걸고 있습니다.
청년들이 농업에 뛰어든다면 그리고 인식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계기가 생긴다면, ‘스타트업의 한 분야에 창농도 있구나’라는 사고의 전환이 이루어지면 우리나라 농업은 한 단계 발전할 것이고 더 큰 기회의 산업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정부에서는 청년들이 창농을 할수 있게끔 다양한 지원정책이 필요하다고 절실히 느낍니다.
남들이 다가는 길이 꼭 안전한 길이 아니고, 누구나 원하는 대기업 취직이 우리 삶의 절대적인 행복을 가져다 주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농업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청년농업인 김선영이었습니다. 창농으로 더 많은 농촌사회의 변화에 기여하고 싶고, 많은 분들게 건강한 먹거리를 선사하고 싶습니다.
여태까지 저의 경험과 창농의 생각을 적어봤습니다.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 com/Sk378
블로그: blog.naver.com/naturalsstar

 

■ 현장 인터뷰

불굴의 의지로 꿈을 열어가는 28살 삼채 총각

 쉽게 쓰러지지 않는 경주마…불굴의 사나이
“삼채 먹은 신선한 삼계탕 선보이고파”
 삼채 총각, 청년 창농 위한 포럼 설립 추진

서울에서 태어나 농업·농촌을 전혀 모르고 자랐던 젊은 청년이 호주 유학을 접고 홀연히 귀국해 농업에 대한 무한한 가능성을 발견하고 농업으로 창업에 도전해 성공을 이뤄가고 있다.
그는 바로 삼채총각으로 유명한 김선영 씨다. 28살, 아름다운 나이에 청년은 아스팔트가 아닌 흙을 밟을 수 있는 농촌에 두 발을 딛고 있다. 그가 농촌으로 향한 건 취업을 못했던 것도 아니고, 농촌에 연고를 둔 것도 아니었다.

과거로 돌아가 그는 논산육군훈련소 조교시절, 꿈을 이루기 위해 휴가를 반납한 채 아르바이트 전선에 뛰어들었다.
“제대 후 공부를 하고 싶어 아르바이트를 열심히 했어요. 그리고 호주로 떠났죠. 제가 호주를 선택하게 된 건 공부도 있지만 돈을 벌어야 했던 이유도 있어요. 미국 같은 경우는 학생비자를 발급받아 가게 되면 아르바이트를 병행할 수 없거든요.”

‘농업은 유망한 산업’…창업 결심
학창시절 캐나다에 사는 이모의 집을 방문한 뒤로 김선영 씨는 좁은 한국 땅이 아닌 더 넓은 외국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가슴 속 깊이 새기고 있었다. 이후 고등학교 3학년 때 관광학을 진로로 정했고 군 제대 이후 아르바이트를 해 낸 돈으로 호텔·관광학을 전공하기 위해 호주 브리즈번으로 떠났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근근이 생활을 이어오던 어느 날 “미래의 가장 유망한 산업은 농업이 될 것”이라는 한 교수의 강의에서 눈이 확 뜨이고 귀가 번쩍 열렸다. “바로 이거다”라는 생각과 함께 전공하고 있던 관광·식품을 농업에 접목한 융·복합 산업으로 30세 이전에 창업해 꼭 성공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됐다.
부푼 꿈에 가슴이 울렁거려 공부가 되질 않자 3년의 유학생활을 과감히 접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표를 끊었다. 남들이 보면 이상하다고 손가락질했을지 모르지만 그는 이미 열정으로 가득 차 다른 사람의 곁눈질은 신경 쓰지 않았다.

김선영 씨는 한국으로 다시 돌아올 당시 세계적인 기업들과 투자자들은 농촌에 투자를 하고 있지만 한국만은 첨단산업에만 몰두해 있었다며 “단순한 귀농이 아닌 창농으로 구체적인 꿈을 결정하게 됐어요. 다양한 창업아이템들 사이에서 IT산업 외에 농업도 분명히 가능성이 있다고 믿었거든요”라며 당시의 생각을 드러냈다.

이후 그는 새로운 꿈이 한 가지 더 생겼다. 유학시절 배운 관광과 호텔을 농업에 접목시켜 새로운 산업을 만드는 것이다. 농촌에 관심이 없는 도시 사람들과 농촌의 교량 역할을 하며 농촌의 장점을 부각시켜 청년들을 농업으로 이끌고 싶은 것이 그의 가장 큰 꿈이다. 그는 인터뷰 당시 6차산업 인증 심사를 기다리고 있다며 설렘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삼채와 체험농장이 안 어울린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농촌으로 도시사람들을 불러 모아 ‘농촌이 이렇게 좋은 곳이구나’라는 걸 몸소 느끼게 하고 싶어요. 남들이 안 가는 길을 간다고 걱정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남들이 가는 길이 항상 안전한 건 아니잖아요?(웃음)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했다는 것 자체가 큰 매력이죠.”

도시에서 사업을 하시던 부모님께서 충북 진천에 귀농을 위해 마련해 놓은 땅을 이용해서 창업을 결심하게 됐다. 과수원으로 이용되던 밭이었기에 밤마다 땅을 일궈 삼채를 키울 수 있는 터로 재탄생시켰다.
하지만 처음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김선영 씨는 꿈만 가득한 청년이었을 뿐 농업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였다. 부모님도 농촌에 살고 계시지 않아 도움받을 곳을 찾다가 aT농식품유통교육원을 발견하게 됐다. 그 후 농산물 마케팅 공부를 시작했고 이젠 단순한 공부뿐만 아니라 업무협약식 등에 참석해 삼채를 무료로 제공하는 봉사활동도 하고 있다고 한다.

“농산물에 대한 교육을 받기 전엔 삼채를 노지재배로 해서,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풀을 베면서 온 몸으로 농사를 터득해나갔죠. 병해충에 대해 자세히 몰라 재배에도 어려움이 많았지만 부추와 인삼처럼 삼채가 병해충에 강해 삼채 덕도 보았어요. 삼채의 이런 점이 저를 더 농업의 세계로 끌어들인 것 같아요. 요즘 무농약으로 재배할 수 있는 기술은 늘었지만 무농약 재배가 쉬운 게 아닌데 삼채는 그걸 가능하게 하니까요.”

이외에도 김 씨는 햇빛을 많이 받으면 질겨지는 삼채의 특성을 고려해 진천농업기술센터에서 시범사업을 지원받아 차광이 되는 그늘막을 만들었다. 혼자 힘으로 덤벼들기보단 도움 받을 수 있는 모든 것을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발로 뛴 마케팅…대기업 프랜차이즈에
고정납품 길 열려

첫해 삼채재배는 순조로웠다. 하지만 판매처를 알아놓지 않고 수확에만 몰두한 탓에 수확시즌이 되서 부리나케 삼채를 팔아보려 발버둥 쳤지만 야속하게도 50% 이상의 삼채를 팔지 못했고, 냉장고도 없었던 탓에 삼채를 모두 땅속에 묻어야만했다. 판로, 경영에 대한 생각 없이 뛰어든 창업은 완전한 실패였다.

“제가 그 이후부터 느낀 것이 재배도 중요하지만 무조건 팔아야한다는 생각이었어요. 못 팔면 수익이 날 수 없으니까요. 금을 재배하든, 보석을 재배하든 팔아야 돈이고 보석이라 생각해 그때부터 블로그를 시작했어요.”
소비자들과 소통할 수 있는 매개체가 필요하다고 느낀 김선영 씨는 자신을 브랜드화 시키는 데 성공했고 삼채총각으로 널리 이름을 알리고 있다. 운이 좋게 매스컴에 떴다고 말하는 그이지만 삼채를 알리기 위한 그의 노력을 들어보면 운이 아닌 노력이고 실력이었다.

“블로그도 그냥하면 사람들의 눈길을 끌 수 없더라고요. 그래서 일주일에 한 번씩 진천에서 서울까지 올라가 마케팅 교육에도 참석하고 제가 재배하는 방법과 일상이야기 등을 블로그에 차례차례 올렸어요. 그렇게 노력하다보니 이젠 5,000명 정도의 사람들이 블로그를 방문해주세요.”
이런 모든 것들이 “쉽지 않았다”고 말하지만 그의 표정에선 당당함이 엿보였다. 실패할까봐 전전긍긍하는 청년들과 달리 그는 자신의 꿈을 말할 때면 눈에서 불꽃이 타오른다. 이 점이 도시의 청년들과 분명 다른 점이다. 그는 뚜렷한 목표의식 없이 정상만을 향해 달리는 도시 청년들과는 다르게 확실한 목표의식을 가지고 달렸다.

삼채는 파와 부추 마늘을 합쳐 놓은 채소로 요리를 통해 그 맛이 인정되면 새로운 수요가 발생하리라 생각하고 김 씨는 서울 소재의 고급 레스토랑을 찾아다니며 직접 요리를 시연하고 맛을 선보이는 등, 남들이 하는 노력의 두 배 세 배를 투자해 삼채요리법과 삼채효능을 알리는 홍보자료를 만들어 기업의 문을 두드렸다.

“농촌에 계신 많은 분들은 농협을 바라보며 생산물을 팔아달라고 하시는데 저는 아무래도 삼채가 사람들 눈에 익지 않은 채소라 농협은 포기하고 외식업, 요리를 할 수 있는 곳의 문을 두드렸어요. 삼채를 직접 먹어봐야 삼채의 수요가 올라갈 거라 생각했거든요. 단순히 시장에 내놓고 팔면 어떤 요리인지 모르니까요.”
그 결과, 김 씨는 신세계 한식뷔페 ‘올반’에 삼채를 납품하기 시작했고, 얼마 전 CJ 한식뷔페 ‘계절밥상’에 삼채뿌리와 삼겹살을 이용한 요리도 내놔 삼채를 고정 납품하면서 삼채는 수요가 달릴 정도다.

 자연농법, 삼채사료 개발…“삼채삼계탕 선보이고파”
삼채농사를 시작했다가 실패한 사람들은 너무 많지만 그는 틈새시장을 공략해 작년에 연 매출 3억5천만 원 정도를 올리게 됐다. 중소기업 창업지원금, 농업 경영인으로 선정돼 자금을 지원받는 등 농장은 4ha로 확장했다. 충북대학교와 산학협력공동연구도 하고 진천군농업기술센터 삼채시범농가로 선정돼 삼채양액재배시설도 갖추고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

양액재배는 농과대학 출신 농업인들도 실패하는 어려운 기술임에도 김선영 씨는 도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올해 처음으로 시도하는 것이기에 양액재배의 장점과 단점을 수집하고 분석해 잘못된 점을 보완해 발전할 생각이란다.

삼채농장 앞에 자리한 그의 집은 도시청년들이 보면 경악할 정도로 세련되지 못하다. 덩그러니 서있는 집은 앞엔 삼채농장이, 양옆엔 강아지와 닭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밤낮 가리지 않고 울어대는 강아지와 닭들을 보고도 김선영 씨는 “시끄럽다”는 1차원적인 생각이 아닌 농업과 연계해 발굴하려고 또 생각하고 생각해 삼채가루를 첨가한 양계사료개발과 자연방목을 통한 건강한 닭을 길러 삼채삼계탕을 연구하고 있다.
또한 그는 귀농교육 전문 강사로 초청되는 등 삼채분야에 전국 최고전문가로 거듭나고 있다.

농축산디자인포럼하우스 열어
청년창업지원

김선영 씨는 미래의 비전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눈빛을 반짝이며 “저와 같은 도시 젊은이들이 농업, 농촌에서 꿈을 펼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강조한다.
그는 이제 청년들이 ‘스펙세대에서 에너지 세대로(가칭)’ 바뀌어야 한다는 제목으로 창농 성공이야기를 책으로 출간할 예정이라고 한다. 제목처럼 그는 고스펙보단 무언가를 생산하고 가꾸는 에너지를 청년이 가져야할 중요 덕목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스스로 실천하고 있다.

또한 서울의 젊은 청년들의 창업 기회를 만들기 위한 ‘농축산디자인포럼하우스’를 계획하고 있다. 앞으로 기반이 잡히는 농촌에서 생산과 가공, 관광서비스를 연계해 한국에서 가장 멋진 ‘농가형 레스토랑’을 만들어 보는 것 또한 꿈이라고 말한다.  

“가장 큰 꿈이요? 더 많은 청년들이 농촌에 들어와 농업을 살려 에너지 넘치는 농촌을 만드는 거예요. 청년 농업인 없이 농촌은 발전하기 힘들 거예요. 그래서 도농업기술원을 방문해 청년귀농자들을 위해 강의를 하러가고 있어요. 청년들이 아니라면 본업에만 충실했겠죠. 하루빨리 청년들이 농업의 매력을 느끼고 저와 함께 농업 전선에 뛰어들길 바라요.”
마지막으로 그가 “호주 유학생활을 통해 살아가는 방법을 배웠다면 농촌은 저에게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해 고민할 시간을 주는 것 같아요”라고 말한 만큼 앞으로 농촌에서 자신의 꿈을 멋지게 그려나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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