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촌여성신문-농촌진흥청 공동기획 발효식품 신기술, 현장에서 꽃피운다

▲ 명가원 박흥선 대표(사진 왼쪽)와 농촌진흥청 정석태 연구관이 녹파주를 들고 환히 웃고 있다.

④ 전통약주 ‘녹파주’ 제조 - 경남 함양 ‘명가원’

농진청이 복원한 ‘녹파주’ 제조기술 이전받아
지리산자락 맑은 물과 좋은 쌀로 약주 빚어
명인의 손끝 통해 고급약주로의 도약 꿈꿔

1450년경 어의 전순의가 지은 가장 오래된 음식책인 ‘산가요록’. 이 책은 작물과 원예, 축산, 양잠, 식품 등을 총망라한 농서(農書)이자 술, 밥, 죽, 국, 떡 등 229가지의 조리법을 수록한 음식책이다. 2008년부터 고문헌에 전해지는 우리의 전통주 복원과 현대화에 앞장서온 농촌진흥청은 이듬해 산가요록에 기록된 ‘녹파주’를 21세기로 끄집어냈다. 녹파주를 복원한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 발효식품과 정석태 연구관은 “맑고 깨끗한 선비의 지조가 서려있는 녹파주는 거울에 비치는 푸른 파도를 보는 듯 맑다고 해 ‘경면녹파주’(鏡面綠波酒)라 불리기도 한다”고 그 깔끔한 맛을 자랑한다.
녹파주는 2010년 특허출원이 완료되고 그해 경남 함양의 전통주 업체인 ‘명가원’(대표 박흥선)에 기술이 이전돼 애주가들에게 선비의 맛을 전하고 있다.

명가집 손부가 빚은 고급 약주
녹파주 빚는 기술을 받은 명가원 박흥선 대표(대한민국식품명인 제27호, 경남 무형문화재 제35호)는 하동정씨 16대 손부로, 가문에 500년 이상 전해 내려오는 가양주 ‘솔송주’의 전통을 이어가기 위해 술도가를 운영하게 됐고, 1996년 현대식 제조공장을 설립했다.
20여 년 전 시어머니로부터 솔송주 빚는 법을 전수받았지만 시행착오도 숱하게 겪었다. 입맛, 손맛에 따라 술맛이 달라졌고, 술 빚는 기술이 더디 늘면서 버린 쌀만도 몇 가마니는 됐다. 그러던 박 대표는 농촌진흥청 특허기술을 이전받아 양조단계별로 체계적인 기준을 마련해 품질 균일화와 고급화의 기초를 다졌다.

농촌진흥청이 운영하던 전통주 양조교육을 열심히 수강하던 박흥선 대표는 정석태 연구관으로부터 녹파주를 복원했다는 얘기를 듣고 기술을 이전 받으려 적극 러브콜을 보냈다. 가양주인 솔송주에 이어 녹파주를 명가원을 대표하는 고급약주로 키워 일본 사케에 당당히 대응해보고픈 의욕에서였다.
녹파주는 곱게 가루를 내 반죽한 멥쌀과 누룩가루, 밀가루를 섞어 항아리에 넣고 3일 후 찹쌀로 고두밥을 지어 섞은 다음 서늘한 곳에서 10일 정도 발효시키면 누룩냄새가 적고 푸른빛이 도는 깔끔한 알코올 도수 15도의 술이 완성된다.
2011년 기술이전을 받아 현대에 재탄생한 녹파주는 2013년 명가원의 다른 전통주와 함께 서울 대리점을 통해 1천 박스의 매출을 올리는 효자술로 등극하기도 했다.

▲ 고문헌의 전통주를 복원한 ‘녹파주’

명가원 술, 각종 술박람회서 대상
명가원이 위치한 함양군 지곡면은 게르마늄 함량이 높은 농토에서 맛 좋은 쌀이 생산되는 것으로 유명하고, 지리산에서 내려오는 물도 맑기로 소문났다. 명가원의 약주는 이러한 천혜의 자연환경이 맛을 더해준다. 박 대표는 얼마 전까지는 농협RPC에서 쌀을 도정해 술 원료로 사용했지만, 술을 만드는 쌀이 소량인데다 일반 쌀보다 도정을 더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어 개인 도정시설을 갖춘 지역 대농의 친환경쌀을 20가마 이상 쓰고 있다.

명인이 빚은 약주들은 현재 전국에서도 알아주는 전통주의 자리에 올라있다. 솔송주는 2014년 대한민국주류대상에서 약주부문 대상을 수상했고, 솔송주를 증류한 ‘담솔’은 2015년 대한민국 우리술 품평회에서 리큐르 부문 대상을 차지했다. 지난 2012년에는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한 내외 귀빈들이 참석한 농촌진흥청 개청 50주년 기념식 만찬에서 녹파주가 공식 건배주로 선정되기도 했다.
현재 명가원의 약주는 주로 로컬푸드매장, 대형마트, 백화점, 서울의 유명한 음식점 등에 입점돼 있으며, 공항면세점에서도 관광객에게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다. 녹파주는 생산 초기 한 주류 딜러의 중계로 매출이 급상승했다가 그 인연이 끊기면서 감소해 현재는 전체 매출의 2~3%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그래도 한 번 녹파주를 맛본 소비자들은 고정고객이 돼 꾸준히 녹파주를 찾는다고 박 대표는 말한다.

“아직까지는 녹파주에 대한 소비자 인식이 부족한 상황이에요. 그래서 박람회 등 각종 행사에 나가 열심히 홍보하고 있어요. 앞으로는 술 품평회에도 출품해 평가를 받고 인터넷 등을 통해서도 널리 알릴 계획입니다.”

고택 안에 술 전시·판매관 설치
명가원은 고택들이 모여 있는 개평마을 안에 솔송주문화관을 열고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전통주 알리기에도 노력하고 있는데, 그곳에 각종 술을 담그는 도구와 재료 등을 전시하고, 명가원에서 빚은 약주, 와인, 증류주, 녹파주 등을 전시·판매하고 있다.
우리 전통약주의 대중화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애주가들의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동행취재에 나선 정석태 연구관은 힘줘 말한다.

“청주는 대부분의 소비자들이 일본식 술로 알고 있어요. 한국식 청주는 일반적으로 약주로 칭하고 있지요. 우리 약주로 청주로서 당당히 인식돼야 사케를 이길 수 있어요.”
명가 손부의 손맛과 명인의 자긍심, 좋은 원료, 연구기관의 지속적인 컨설팅, 그리고 고택 등의 관광자원이 있기에 녹파주의 화려한 부활은 그리 멀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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