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수 아이콘마케팅연구소 대표

▲ 김대수 아이콘마케팅연구소 대표

"농업생산이
남성중심의 산업이기 때문에
마케팅도 그렇게 해야 한다, 그것은 큰 오산이다.
농산물의 구매자는
남성이 아니라 여성이다."

농사를 짓고 있는 농업인 부부 중에서 누가 마케팅 활동을 더 잘할까? 남편일까. 아내일까. 실제로 조사한 자료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여성, 아내가 하는 것이 유리한 시대상황인 듯하다.
전통적으로 농업은 전쟁과 더불어 남성들의 전유물로 인식되어 왔다. 상형문자인 한자어에도 ‘남자는 밭을 갈 수 있는 힘’을 가져야 한다고 해서 ‘사내 남(男)’은 힘 력(力)이 밭 전(田)을 이고 있는 모습으로 합쳐져 있다. 즉 농업생산은 곧 노동력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산업혁명 이후 농업분야에도 생산력 향상을 위한 다양한 농업기계가 개발되어 보급됨에 따라 밭을 가는 힘을 가진 남성의 일을 경운기, 트랙터, 이앙기, 콤바인 등이 대신해 왔다. 이러한 기계화는 남성들에게 뜻밖의 엄청난 기회를 가져 다 주었다. 그것은 바로 ‘여가’. 기계를 이용해 과거보다 훨씬 많은 면적의 농지를 훨씬 빠른 시간 내에 작업하여 더 많은 농산물을 수확할 수 있게 되었다. 열흘 이상 걸리던 농작업도 하루에 끝내 버리기도 한다.

반면 농업생산활동의 보조자 역할을 하여 온 여성들은 농기계의 발전으로 인해 더 많은 농산물을 다듬고, 저장하는 등 생산 이후 작업들에 과거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쏟아야 한다. 기계화가 생산과잉을 불러왔기 때문에 여성농업인들은 ‘과로’라는 예상치 못한 짐을 떠안게 된 것이다. 여성 농업인의 여가시간은 줄었고 하루 종일 논과 밭, 농장 등에서 일해야 해서 영농현장을 떠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 사이 남성 농업인들은 늘어난 여유시간을 활용하여 더 많이 생산된 농산물을 판매하는 마케팅을 주로 맡아 왔다. 마케팅은 농가소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남편, 남성농업인이 당연히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았다. 한마디로 농업생산이 남성중심의 산업이기 때문에 마케팅도 그렇게 해야 한다는 식이다. 그러나 그 것은 큰 오산이다. 마케팅은 고객을 상대로 하는 생산활동이다. 힘이 필요치 않다. 고객과 싸우거나 힘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이 원하는 것을 제공하여 만족을 주는 것이다. 또 농산물의 구매자는 남성이 아니라 여성이다.

특히 최근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가 향상되고 소득도 늘어나면서 농식품 구매과정에서 여성들의 의견이나 의사는 절대적이 되었다. 과거 가장인 남편이 직장을 다니는 외벌이 가구가 일반적이던 시대에 아내는 남편이 벌어온 월급을 남편 대신 집행하는 대리인이었다. 그래서 남편의 눈치를 보며, 남편이 좋아하는 식품을 장바구니에 담았다. 여성들이 장바구니를 들고 있지만 소비의 주체가 아닌 소비의 객체였을 뿐이다.

지금은 어떠한가? 가정에서 우월적 가장이나 남편은 존재하지 않는다. 맞벌이여부에 관계없이 여성이 소비의 주체가 되었다. 여성들은 내가 먹고 싶은 것, 내가 조리하고 싶은 품목을 고른다. 남편의 눈치도 보지 않는다. 조리하기 어렵거나 까다롭게 손질해야 하는 농산물에는 관심을 덜 가진다. 직장여성이라면 요리시간이 길어지는 것도 원치 않는다. 그런 시대가 되었다.

핵가족화, 양성평등 등 과거와 달라진 시대상황 속에서 여성소비자들의 마음을 남성들이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나 여성농업인은 가정에서 아내이고 주부이다. 그들은 농장이라는 직장에서 근로기준법이 정한 시간보다 훨씬 많은 노동을 하고 저녁에 가사일을 돌보는 도시의 슈퍼맘과 다르지 않다. 때문에 여성소비자와 동질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여성 소비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알 수밖에 없다. 여성소비자들의 지갑을 자연스럽게 열기 위해서는 여성농업인들이 적극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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