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완주 박사의 농사에 대한 오해와 진실(65)

수십여 년 전, 나이 열다섯쯤 됐을까. 그때 먹었던 사과 맛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병으로 며칠을 굶은 나에게 어머니는 국광을 주셨다. 그 사과 한 알에 기운을 차려 이불을 박차고 일어났다. 국광의 단물과 아삭아삭한 식감이 아직도 기억에 새롭다.

후지 사과의 본 고장인 일본에서도 그런 맛은 못 봤다. 그런데 2년 전 경북 문경에서 먹어본 사과 맛에 나는 깜짝 놀랐다. ‘감홍’이란다. 감홍은 또 다른 이유에서 나를 놀라게 했다.

우리 연구원 동료들은 문경, 거창, 김천, 충주, 군위 지역에서 감홍과 홍로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이 두 품종은 우리나라에서 육성된 대표적인 품종인데 감홍은 세계 사과 중에 최고의 당도를 자랑한다. 물론 후지도 감히 그 맛을 따라오지 못한다.

옥의 티처럼 감홍의 가장 큰 아킬레스건은 고두병, 그래서 전국 확대의 걸림돌이 되지만, 전혀 이 문제가 없는 문경의 농가는 없어서 못 판다. 칼슘(Ca)이 부족해 사과 표면에 검은 반점이 생기는 생리병이다. 미리 손을 쓰지 않으면 수확 직전이나 냉장저장 중에 나타나 증상이 보였을 때는 어쩔 수가 없다. 과실로는 팔 수 없어 큰 손해다.

주원인이 과실에 칼슘이 부족 때문으로 판단되지만 매우 복잡하다. 우리 대상농가 중 김천의 한 농가는 토양산도가 7.8로 알칼리성이다. 또한 토양의 칼슘도 충분한 6.0을 넘어 8.1이나 된다. 그래도 어떤 해는 절반이, 지난해는 38%나 이 병에 걸렸다.

미국의 캘리포니아 주 토양에는 칼슘이 매우 높다. 사과 잎에도 칼슘이 충분히 있지만 고두병 때문에 골치다. 소노마 카운티의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여러 가지 조사를 해 본 결과 원인으로 지목된 것은 다음과 같았다.

①낮은 pH 또는 높은 마그네슘 함량 ②K(칼륨) 또는 N(질소)의 과다한 시비 ③균일하지 않은 물주기 ④수확 후 냉장 지연 ⑤특별히 예민한 품종 등을 원인으로 꼽고 있다.

김천의 농가도 고두병에 좋다는 석회를 시비하다 보니 오히려 pH 7을 넘겼다. 그래도 미심쩍어 석회가 들어 있는 엽면시비 비료를 5월 하순 봉지 씌우기 전에 2번, 9월 봉지를 제거한 후 2번, 도합 4번을 뿌렸지만 허사였다.

흙에서는 움직이기 매우 싫어하는 대표적인 성분이 인산이라면, 식물의 몸속에서는 Ca이 그런 성분이다. Ca도 다른 양분처럼 일단 물에 녹아야만 흡수된다. 흡수된 Ca은 식물체내에서 움직임이 워낙 나빠 잎에 충분히 있어도 과실로 쉽게 들어가지 않는다.

일단 가뭄이 오면 이어서 비가 와도 흡수됐던 Ca가 꼭 필요한 과실로 가지 못한다. 그래서 고추의 속썩음병이나 토마토의 배꼽썩음병이 자주 나타나 농부를 괴롭히는 병으로 손꼽힌다.(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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