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고

유전체는 한 생명체의 유전정보 전체를 말한다. 사람의 유전정보는 약 30억 쌍의 DNA 염기서열로 이루어져 있으며, 벼의 유전정보는 약 3억7천만 개의 DNA 염기서열로 이루어져 있다. 각각의 DNA 염기서열에는 아데닌(A), 구아닌(G), 시토신(C), 티민(G) 네 가지 염기 중 하나가 있게 된다. 사람의 유전체에는 약 20,000-25,000개의 단백질을 코딩하는 유전자가 있고, 유전자는 수백~수만 개의 염기서열들로 이루어져 있다. 유전자상의 염기서열들이 어떻게 배열되는가에 따라 단백질의 구성이 결정되고, 유전자가 조절하는 특성이 정해진다.

2001년 인간 유전체 DNA 염기서열이 완전 해독된 이래, 유전체 해독 기술은 급속히 발달하였다. 당시 인간 유전체 해독 프로젝트에 13년간 25억불의 비용이 투입되었던 반면, 현재는 몇 일내에 약 1,000불의 비용으로 개인 유전체 해독이 가능해졌다. 이렇게 된 데는 2007년부터 도입된 차세대 유전체 해독 기술(Next Generation Sequencing : NGS)이 중심 역할을 했다. NGS 기술은 유전체를 무수히 많은 조각으로 분해해 각 조각을 동시에 읽어낸 뒤 생물정보학적 기법으로 데이터를 조합함으로써 방대한 유전체 정보를 빠르게 해독하는 것이다. 한번 실험으로 인간 유전체의 7배에 달하는 200억 염기서열의 데이터를 생산할 수 있다. 이 기술은 곧 암 진단/예방, 태아의 유전병 진단, 신약 및 맞춤 의학 개발 등 보건의료 분야에 폭넓게 실용화될 전망이다.

NGS 기술은 농업분야에도 폭넓게 활용되고 있다. 포도, 감자, 토마토, 오이, 고추 등 주요 작물과 도열병균, 키다리병균, 벼멸구 등 주요 병균 또는 해충의 유전체 해독에도 이용되고 있다. 그리고 유전분석을 통해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유전자, 환경 스트레스에 잘 견디게 하는 유전자, 병충해에 저항성을 가지게 하는 유전자, 품질 또는 기능성 성분 함량을 증진시키는 유전자를 찾는데도 활용되고 있다. 또한, 품종 육성과정에서 우수한 유전자 조합을 가진 개체를 선발하는데도 활용되고 있다.

필자가 속한 연구실에서는 NGS 기술을 이용하여 병충해에 강한 유전자를 찾는 연구를 하고 있다. 그 한가지로 최근에 벼농사에 큰 문제가 되고 있는 키다리병에 저항성을 부여하는 유전자를 찾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우선 벼 키다리병에 강한 품종과 약한 품종의 유전체를 해독하여, 이 두 품종 간에 약 30만개의 잠재적 염기서열변이가 있음을 발견하였다. 이 염기서열 변이들을 이용하여 벼 유전체 전체에 비교적 고르게 분포한 수백 개의 DNA 마커들을 만들었다. DNA 마커는 염기서열 변이형을 검정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표식자이다. 그리고 강한 품종과 약한 품종을 교배하여 생긴 후대 계통들을 대상으로 DNA 마커 각각의 변이형을 검정하고 키다리병 반응을 검정하였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저항성 유전자가 벼 1번 염색체의 약 22~24 백만염기서열 부위에 존재함을 발견하였다. 이 부위에 위치하는 유전자들 가운데 병 저항성과 관련이 있는 유전자 그룹에 속하는 유전자들을 선별하여 이들 가운데 어느 유전자가 키다리병 저항성을 부여하는지를 연구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 저항성 유전자가 밝혀진다면 키다리병 저항성 신품종을 육성하는데 시간과 비용을 단축시킬 수 있고, 농약사용 절감과 친환경 농업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연구 방법은 벼 이외의 다른 작물과 다른 특성들에 대해서도 우수한 유전자를 분리하는데 활용될 수 있다. NGS 기술을 활용하여 우수한 유전자들을 찾고 품종육성에 활용함으로써 식량주권을 지키고, 경쟁이 치열한 세계 종자시장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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