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해로’라는 주례사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시대에 살고 있음을 실감한다.
‘황혼이혼’이라는 신조어도
생긴 지 오래다.
하지만 믿음과 사랑이 있으면
모든 걸 지킬 수 있다."

▲ 안호원(열린사이버대 특임교수, 칼럼니스트·시인·수필가)

부부는 영원히 남남이면서도 남남이 아닌 무촌(無村)의 관계다. 무촌에서 사랑의 관계로 하나가 되는 것이 바로 부부 관계다. 화창한 봄이 되면서 청첩장이 하루가 멀다 하고 날아든다. 그러면서도 적잖은 부부들이 헤어지는 것을 우울하게 옆에서 지켜보면서 ‘백년해로’라는 주례사의 단골어휘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시대에 살고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황혼이혼’이라는 신조어(新造語)도 생긴 지 오래다. 맞는 옷 하나 찾아 입는 것도 수월치 않은 세상인데, 하물며 입맛에 맞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겠는가. 부부 관계가 악화되면서 5월 가정의 달에 ‘둘이 하나가 된다’는 의미로 21일을 부부의 날로 정하고 기념하는 것 같다. 진정으로 사랑하는 부부는 서로에게 맞춰주는 역할에 충실한다. 그래서 가정에는 화기가 돌고, 세상의 온도는 체온에 가까워질 수 있다.

얼마 전 결혼한 제자 부부에게 짧은 주례사를 했다. 혹시나 앞으로 결혼 생활 중 뜻하지 않은 어려움이 있더라도 주례사를 기억하며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고 간곡하게 당부했다. 주례사를 간략히 소개하면 “보이는 것만을 사랑하지 말고, 보이지 않는 마음까지 사랑하라. 이 세상 모든 생물은 다 변하고 영원하지도 않다. 아무리 좋은 음식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변한다. 똑같은 음식이라도 어떤 음식은 발효되고 또 어떤 음식은 부패된다. 발효음식은 오래 될수록 맛과 향기를 내며 곁에 두게 되지만, 부패된 음식은 오래 갈수록 악취를 풍겨 버릴 수밖에 없다. 부부 관계도 마찬가지여서 발효음식 같이 오래도록 맛과 향기를 품어내며 곁에 두는 사랑의 부부가 되기를 부탁한다. 누구나 믿음과 사랑이 있으면 모든 것을 지킬 수 있다. 특히 서로에게 덕 볼 생각을 하지 말고 오히려 덕이 되는 사람이 돼라. 또 먼저 베풀고 나누는 그런 부부가 돼야 한다. 서로에게 감사함을 잊지 않고 느낄 때 그 사랑은 영원하고 그 가정은 행복한 가정이 될 수 있다.”

흔히 아내를 자랑하면 팔불출이라지만 내 아내를 자랑하고자 한다. 아내는 36년을 내조하면서 외형만 변했을 뿐, 마음은 그대로다. 언제나 아침이면 내복을 갖다놓고, 또 식탁도 함부로 차리지 않는다. 더운 여름에도 새 밥으로 정성스레 식탁을 차린다. 그런 아내를 어찌 미워할 수 있겠는가. 때론 언쟁이 벌어져 따발총 같은 아내의 고성이 날 때도 묵묵히 있다가 편지를 띄운다.

혹 퇴근 후 현관에서 두부에 돼지고기를 넣은 김치찌개 냄새가 나면 살짝 미소를 짓는다. 아내가 편지를 받고 마음을 풀었거나 미안해하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주위에서 다음 세상에서도 아내를 택하겠느냐고 물으면 서슴없이 ‘네!’라고 답한다. 이제까지 말없이 내조한 아내 덕에 살았는데, 그만한 아내를 찾기는 쉽지 않다. 아내 역시 다음 세상에서도 필자를 택하겠다고 하는 데, 이유는 다르다. 나 같이 속 썩이는 사람을 다른 여자에게까지 속 썩이게 할 수 없으니 별 수 없이 자기와 살 수밖에 없단다. 그런 아내이기에 늘 고마움과 미안함을 갖고 산다.  

5월은 가정의 달로 많은 기념일이 있는 달이기도 하지만 내겐 유독 더 기억되지는 5월이다. 5월6일은 천사 같은 아내를 이 세상에서 처음 만난 날이다. 37년 동안 이날만 되면 우리가 만난 시간에 아내에게 전화를 하고 감사의 인사를 잊지 않았다. 불가에서는 한 번의 옷깃만 스쳐도 삼천겁의 인연이 있는 것이라고 하는데, 늘 함께 얼굴을 맞대고 때로는 살짝 웃음까지 지어보이는 아내와의 삶은 얼마의 인연이 되는 것일까. 생명은 영원하지 않다. 그래서 언젠가는 이별을 할 시간이 온다. 오늘 이 시간의 인연이 마주 한 우리, 귀한 존재로 기억되기를 바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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