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완주 박사의 농사에 대한 오해와 진실(60)

네덜란드에서 공부할 때, 토양학 교수님은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독일의 한 과수연구소로 우리 대학원 학생들을 인솔해 견학을 갔다. 몇 십 년 흘렀지만 아직 또렷이 기억이 남는 것이 딱 하나 있다.

설명을 맡은 연구소의 담당자가 과수원 현장에서 우리에게 질문을 했다. 고랑의 흙에는 거의 양분이 없는데 왜 그런지 맞춰보라는 것이다. 동행한 십여 명의 학우들이 우물쭈물하고 있을 때, 한 친구가 자신 있게 대답했다.

“비료를 줄 때 기계로 두둑에만 집중적으로 주기 때문이지요.”

우리 모두는 그의 대답이 정답으로 확신했던 것 같았다. 그는 독일어 특유의 강한 억양으로 “나인(아닙니다)”이라며 부정했다. 그리고는 설명을 이어 갔다.

“녹비를 재배한 때문이죠. 녹비를 베어서 과수 쪽으로 몇 년 넘겨줬더니 고랑의 양분이 모두 그 쪽으로 옮겨 갔더군요.”

나는 요즘 와서야 그가 설명하는 의미를 깨닫게 됐다. 우리가 꿀이 먹고 싶으면 벌의 노고를 빌어야 하고, 딸기가 먹고 싶으면 딸기를 길러야 한다. 우리가 벌처럼 직접 꿀을 따거나 딸기를 만들지 못한다. 흙속의 양분도 그렇다. 뿌린 비료가 뿌리가 닿지 않는 곳, 말하자면 근권 밖에 쌓여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속수무책이다. 어쩔 수 없이 무엇인가의 노고를 빌릴 수밖에 없다.

보통 우리는 밭의 전면에 퇴비나 비료를 흩어주곤 한다. 하지만 뿌리는 밭 전면에 뻗어 있지 않다. 수관(樹冠, 나무의 가지와 잎이 있는 부분)의 바로 아래 흙까지만 뻗어 있다. 그러니 수관의 밖에 준 비료는 호랑이에게 우리 밖에 던져준 고깃점과 같다.

그런 경우, 고랑이나 수관밖에 녹비를 재배하면 뿌리가 그것을 빨아먹고, 그것을 베어 근권에 덮어주면 자연스럽게 양분이 필요한 곳으로 간다.

그런데 정말로 꼭 양분이동이 이뤄져야 하는 성분이 있다. 인산이 그렇다. 인산은 이동성이 워낙 나쁜 대표적인 놈이다. 질소가 연간 158㎝, 칼륨이 134㎝ 움직이는데 이놈은 겨우 4㎝만 움직이다. 뭐 이렇게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 꼭 나쁜 것은 아니다. 빗물에 녹아 손실되는 양이 적다는 이점은 있다. 그래서 인산은 100% 밑거름으로 주어야 하는 이유이다. 과수의 경우, 겉흙에만 있으니 뿌리는 먹을 수 없다.

녹비를 재배하면 자라면서 겉흙에 있는 인산부터 차곡차곡 흡수해 뿌리 끝까지 끌고 내려간다. 호밀의 경우 1m, 헤어리베치나 보통의 녹비는 30㎝까지 간다. 그곳에는 인산에 굶주린 뿌리들 천지다. 과수나 곡식, 채소가 얼마나 신날까? 주인을 칭찬하는 소리에 밤잠을 설칠 위험이 있다(?). 녹비재배는 과수의 당도에 보탬이 되는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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