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촌여성신문-한국언론진흥재단 기획특집 : 소외되는 농촌여성의 삶, 함께 나누며 풀어가자

▲ 농촌여성들은 안전의식 부족과 열악한 농작업 환경 등으로 안전사고 위험에 상당수 노출돼 있다.(사진은 기사안 특정사실과 무관함)

① 농촌여성의 안전한 농작업을 위한 노력은…

열악한 작업환경·안전의식 부족이 원인
보장성 낮은 안전보험, 국가가 관리해야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커졌다. 대한민국 안전을 돌아보게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이곳저곳에서 사람을 중시하는 안전관리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하지만 자칫 세상에 회자되는 대형사고 중심의 안전관리를 떠올리는 것 같아 안타깝다. 주변에서 작은 관심조차 주지 않았던 ‘아차’하는 사고가 인생의 큰 상처가 되는 중대사고로 둔갑할 수 있는데도 우리 농업인은 물론, 사회 문제로도 크게 다뤄지지 않고 있다.
그 동안에도 농업인과 그 가족들이 농장을 운영하고 농사를 지으면서 크게는 사망사고에서  작게는 골절 등 많은 사고들이 일어나지만 신문지상이나 TV 등 대중매체에 크게 보도되지 않는 게 현실이다.

국민들의 관심도 농업농촌과 떨어져 있고, 농업인들도 이러한 사고에 특별한 대비를 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사고를 당한 농업인의 삶은 어떻게 변해갈까?
이러한 무관심이 낳은 농촌사회의 농작업 안전사고 현황을 돌아보고 치유방법을 모색해야 할 필요가 있다. 특히 안전의식 부족과 열악한 작업환경에 노출된 농촌여성에 대한 관심이 더욱 요구되고 있다.

#1. 경북 문경에서 고추농사를 짓는 여성농업인 김OO(55세) 씨는 5년 전 생각만 하면 지금도 아찔하다. 그녀는 마당에서 말리던 고추를 밤이 되자 판에 담아 건조기에 넣으려다 중심을 잃고 뒤로 넘어졌다.
농산물 건조기의 맨 위 칸이 그녀의 어깨 높이보다 높고, 고추를 담은 판이 무거워 무리한 힘을 가하다보가 일어난 사고였다. 게다가 밤 9시라 어두워 시야도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 전조등도 없고, 또 안전인식 부족으로 슬리퍼를 착용한 상태였다.
매년 수차례 했던 작업이었기에 ‘설마’하는 방심이 큰 화를 부른 것이다. 결국 그녀는 허리 골절로 약 45일간 병원 신세를 졌고, 250여 일 간 농사일을 할 수 없었다.

#2. 경북 군위의 장OO(71세) 할머니는 2009년 밤나무 옆 경사진 농로에서 농약을 치던 중 다리에 힘이 풀려 뒤로 넘어지면서 허리가 삐끗했다. 장시간 휴식을 취하지 않고 다리에 피로감이 누적된 데다가 무거운 농약통에 등에 메고 작업을 하다 일어난 사고라 부상 정도가 가중됐다. 장 할머니는 1주일간 통원치료를 받았고, 열흘간 일손을 놓아야 했다.

#3. 강원도 원주에서 논농사를 짓는 우OO(79세) 할머니는 2011년 7월 오전에 논물 관리를 위해 농두렁을 걷다가 가장자리 쪽을 밟는 순간 한쪽 발이 미끄러졌다. 몸의 중심을 잃고 넘어지는 순간 왼손으로 바닥을 짚어 골절이 발생했다. 논두렁의 폭이 좁고 일정하지 않으며, 지반이 무르고 경사가 있는 상황이었지만 고무슬리퍼를 착용하고 평소 습관대로 걸었던 것이 사고로 이어진 것이다.
우 할머니는 약 1주일간 입원치료를 받았고, 이후 120일 동안 논에 나갈 수 없었다.

#4. 충북 제천에서 사과 농사를 짓는 안OO(76세) 할머니는 과수원에서 사다리를 이용해 사과 봉지 씌우기 작업을 하던 중 사다리 한쪽 다리가 미끄러지면서 사다리가 넘어지는 바람에 1.5m 높이에서 추락해 팔꿈치가 골절되고 인대가 파열되는 부상을 당했다.
과수원 바닥이 단단하지 않은 흙으로 돼 있고, 사다리도 펼침 각도 제어를 위한 장치가 돼 있지 않았으며, 추락 사고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안 할머니의 안이함이 부른 사고다.
안 할머니는 1개월간 입원치료를 받고 40일간 농사일을 접어야 했다.

평소 안이한 습관이 사고 불러
이 처럼 여성농업인의 농작업 중 안전사고는 예기치 않은 장소와 시간에 발생한다. 평소 습관과 복장, 행동이 사고로 이어지는 것이 대부분이고, 거의 모든 사고가 대형농기계를 사용하다가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소형 기계나 인력이 요구되는 작업 과정에서 일어난다.

남성의 경우지만 2009년에는 충남 서천에서는 경운기에 밤을 실고 야산을 내려오다 경사진 비탈길에서 미끄러진 경운기와 나무사이에 끼여 숨진 채 발견되는 사고도 발생했다. 또 한 농업인은 6월 중순 무더운 날씨에 조명나방 적기방제를 위해 살충제 살포작업을 하면서 너무 더워 농약 방제복은 물론 상의조차도 제대로 착용하지 않고 작업하다 병원 응급실 신세를 지기도 했다. 여름철 한더위에 농사일을 하다 고온장애로 사망하거나, 돈사 분뇨처리를 하다가 질식사한 사례도 있다.
이러한 사고들에는 평소에 관심을 둬야 하는 사전 안전관리 훈련이나 작업관리 절차도 없었고, 응급구조 관리나 알람시스템도 보이지 않는다. 안전교육을 받지 않은 채 기계작동을 하고 보호장비도 착용하지 않았으며, 한 낮의 더위작업과 질식사에 대한 위험경고도 없고 실시간 사고확인도 되지 않고 있다.

농업재해, 일반재해보다 2배 높아
우리나라 농업인의 인적재해는 타 산업 근로자보다 최소한 2배 이상 높게 나타나고 있다.
2012년 통계에 따르면 고용노동부의 산업재해보상보험에 가입한 농산업 근로자는 4만6489명으로 전체 근로자 1554만8423명의 0.3%에 불과하다.
주로 육묘장, 단위조합, 식품가공 공장 등에서 근무하는 농산업 근로자들은 어느 정도 관리가 되고 있는 작업장에서 일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상재해율이 1.3%에 달해 전체 산업근로자의 보상재해율(0.59%)보다 2배 이상 높다.

보통 산업재해의 특성상 소규모 공장이나, 이주·고령 근로자일수록 사고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나는데, 우리 농업인은 소규모 자영형태의 고령농업인이 대부분인데다 2020년에는 다문화 농가가 농업노동력의 40%를 차지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어 이대로 방치하면 농작업재해는 증가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종합병동인 농업인들은 바쁜 농사일로 병원에 들락거릴 처지가 아니라서 뒤로 미루게 되고 그러다보면 병을 키우게 된다. 그러다보니 억대 수입을 올리는 농업인이라도 자녀들이 농사를 짓겠다고 하면 반대한다. 돈도 돈이지만 회사에 다니면 아프면 쉴 수 있고, 다치면 치료도 해주고, 사고 나서 병원에 입원하면 일당도 주는데, 농사꾼은 사고 나서 누워버리면 일 못해서 농사 망가지고, 가계도 어려워 사람구실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결국 사람구실 할 수 있는 농사꾼이 되려면 근로자와 같은 튼실한 산업재해보상제도가 있어 농업활동 중에 발생할 수 있는 사고·질병 등을 제때에 치료하거나 관리할 수 있어야 하고,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이 관심있게 바라보고 직업인으로서 대우하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관련법 제정됐지만 갈길 멀어…
다행히 올해부터 ‘농어업인의 안전보험 및 안전재해 예방에 관한 법률’이 시행돼 농어업 근로자의 부상·질병·장애·사망 등을 보상할 수 있는 법적인 근거가 마련됐다. 하지만 턱없이 부족한 예산과 취약한 보장성 등은 개선·보완돼야 하며, 당연가입 방식으로 전환해 국가가 관리해야 더 많은 농업인이 형평성 있는 정책지원을 받을 수 있다.

안전재해 예방과 관련해서는 법으로부터 농어업 분야 안전재해 예방 조사연구, 교육, 홍보 등을 위임받은 농촌진흥청이 중장기 계획을 수립하고, 그에 따른 예산과 인력을 확보하는 등 관련조직 정비를 서둘러야 한다.
결국 안전재해의 예방과 현실적인 보상 등 근본적인 대책은 제도나 정책의 기초를 잘 세우고 관련부처 행정의 손발이 척척 맞아 들어갈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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