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와인을 찾아서 - ⑧경북 영천 ‘까치락골’ 와이너리

▲ 까치락골 와인너리 시음장이 있는 본관 전경

친척집에 온 것처럼 숙박하며 와인을 맛보고 사갈 수 있는 곳

▲ 까치락골 와인

와인의 유명 생산지역 중 하나인 프랑스 부르고뉴 지방은 포도원의 규모가 크지 않고 ,포도밭의 위치나 농부의 손길에 따라 품질의 차이가 크게 나타나서 여러모로 우리나라와 닮은 점이 많은 지역이다. 포도원의 규모가 비슷하다보니 농사나 생활방식도 우리나라의 농촌과 흡사한 부분이 많다. 특히 손님들이 방문했을 때 밥도 먹고, 술도 한 잔 마시고, 자고 가라는 접객 스타일은 우리나라의 시골이나 마찬가지라 할 수 있다.

지금은 자꾸 사라져가는 그 곳의 전통 중 하나는 휴가철에 가족들과 함께 자신이 좋아하는 와이너리를 방문해 며칠 쉬면서 포도원 체험과 더불어 휴식과 힐링의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갈 때는 1년 동안 마실 와인을 구입해서 가져가는 것이다. 손님은 친척집을 방문한 것처럼 편안하게 쉬면서 와인을 맛볼 수 있고, 주인장도 와인을 소개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있으니 서로 좋은 일이다. 이러한 체험은 짤막한 한모금의 시음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와인의 본질로 우리를 다가서게 만든다. 백화점 행사나 와이너리 투어에서 모기눈물만큼 따라주는 와인을 홀짝 마시는 시음을 30분간의 맞선 데이트에 비유한다면, 와이너리에 묵으면서 그 집에서 준비한 음식과 함께 와인을 즐기고, 푹 자고 일어나 약간의 숙취와 함께 느껴지는 와인의 뒷맛도 느껴보고, 해장까지 마치는 것은 마치 부부가 돼 몇 년 함께 살아보는 것처럼 확실하게 와인을 이해하게 해주는 경험이라 할 수 있다.

국내의 와이너리를 탐방하면서 프랑스 부르고뉴 못지않은 경험을 하게 해준 와이너리들은 필자에게 더욱 깊게 각인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경북 영천의 ‘까치락골’ 와이너리를 잊을 수가 없다.
날이 저물어 늦은 시각에 도착한 포도원은 고요하고 양조장 불빛만이 휘황했다. 주인장인 임채만 대표는 몇 년 만에 만나는 것이었음에도 그저께 보았던 사람처럼 나를 반겨 맞이했다.

▲ 까치락골 와이너리의 별채에서는 숙박도 가능하다.

무덤덤하면서도 정이 가득한 전형적인 경북 사투리의 그 말투는 필자에겐 너무나 익숙한 것이기도 해서 마치 삼촌댁에 찾아온 것처럼 편안한 마음으로 집안에 들어섰다. 번듯한 와인시음장도 갖추어져 있건만 굳이 안방 아랫목으로 나를 잡아끌더니 밥상부터 차려내셨다. 뜨끈한 된장찌개 맛에 혹해서 얼떨결에 밥 한 끼를 뚝딱 비우는 사이 화이트와인과 레드와인도 한 잔씩 걸쳤다. 체면 차릴 여유도 없이 밥상이 술상으로 변하고, 왁자지껄 떠들어도 걱정 없는 농가의 밤이 깊어갔다.

손님을 위해 따로 마련된 별채에서 늘어지게 아침까지 자고 일어나니 밤에는 보지 못했던 예쁜 연못과 황토방, 건물 뒤편으로 펼쳐진 8,000㎡ 남짓한 포도밭이 눈에 들어왔다. 아침안개가 걷히기 전 MBA(머스캣 베일리 에이), 거봉 등이 재배되고 있는 포도밭사이를 천천히 걸어보고 나니 아침 먹자는 소리가 들렸다. 가벼운 아침 후에 이어지는 본격적인 와인 시음. 전날 밤 신나게 퍼마셨던 와인들이라 더없이 익숙하지만 집중해서 다시 맛을 본다. 화려하진 않지만 거봉으로 만든 화이트와인과 MBA로 만든 레드와인 모두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맛과 향을 가지고 있다.

시골 농부의 무딘 손길과는 사뭇 다른 깔끔함이다. 임채만 대표의 외곬 성격 때문일까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와인의 맛과 향은 부인인 김잠숙씨의 성격을 닮은 듯하다. 억척스런 농가의 살림살이뿐 아니라 식품회사에 근무했던 경험을 살려 와인의 품질관리는 대형 와이너리 못지않게 신경 쓰고 있음이 분명했다. 특히 포도를 동결 농축해 만들어지는 아이스와인의 복잡하고 묵직한 농축미는 아주 특별한 인상으로 남았다.

▲ 김홍철(가평와인스쿨학과장)

양조장 건물 내부에 꾸며진 커다란 시음장은 수십 명 정도는 거뜬히 소화할 수 있어서 단체관광객들도 자주 찾아온다. 벽에 걸린 각종 상장과 방문객들이 남긴 사진들은 그간 까치락골와이너리의 역사를 한눈에 보여준다. 떠나기 싫은 나른함을 억지로 털어내고 떠날 준비를 했다. 1년 치는 못되어도 한 달쯤 마실 와인을 사서 차에 실으니 집에서 만든 반찬까지 챙겨주신다. 이정도면 정말 최고의 와이너리 탐방이 아니겠는가. 단 아무 때나 이런 대접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독자들께 당부드릴 말씀은 농번기의 우리농촌은 전쟁터만큼이나 일손이 부족하다. 자신이 일손인지 손님인지 생각해보고 후자 쪽이라면 바쁜 철에는 방문하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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