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호원(열린사이버대 특임교수,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교육위원, 칼럼니스트·시인)

"인간이 만든 논리와
이성과 지식부분에서
인공지능에게 패했다…

인간의 삶에 대한
철학적 물음에  
답을 준비해야 한다"

“바둑만이 아니라 여러 분야에 적용시키면 인간은 노예 되기 딱 좋지요!” 서울 포시즌스호텔에서 지난 10일 열린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5번기 제2국에서 211수만에 돌을 던진 이세돌 9단이 인공지능 알파고(AlphaGo)에 무릎을 꿇는 것을 지켜본 한 시인의 한탄이다. 인간과 인간이 만든 기계와의 혈전(血戰)에서 인간의 한계를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문득 어린 시절 인간이 달나라를 간다는 공상(空想)만화가 떠오른다. 이미 달나라에까지 인간이 갔다 온 지금이지만 당시 그 만화는 말 그대로 허황된 상상에 불과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한 세기가 지나기도 전에 그 상상은 현실화됐다. 이세돌이 알파고에 불계패를 당하면서 인간이 설자리가 없어지는 시기가 10년은 앞당겨질 것이라는 말이 벌써부터 떠돈다.
피도, 눈물도, 감정도, 따뜻함도 없는 기계와의 싸움에서 컨디션과 심리상태, 집중력 등의 복합적인 영향을 받는 인간은 역부족이었다. 무서운 세상이 도래하고 있음을 느꼈다. 일찍이 인간을 만든 신에게 인간이 도전했듯이, 인간은 인간이 만든 기계에게 도전을 당하고, 오히려 추월당하고 결국은 인간이 만든 기계에게 종속될 될 위기에 봉착했으니,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 없다.

과거 인공지능은 한 부분만 최적화 돼 인간이 우세했지만 이젠 모든 부분에 통합형으로 나타난다. 이같은 추세라면 기계가 성취욕과 회심의 미소를 학습하고, 결과적으로 감정과 느낌까지도 스스로 수를 읽듯이 융합해버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기계가 인간의 수를 읽어버리면 결국 인간을 우습게 볼 것이다.

문학인의 장기인 감정과 정서, 상상력의 영역에서도 불안하다. 그들은 감정마저 3D처럼 복제할 수도 있다. 인간을 지배하면서 인간의 느낌까지 복제하지 말란 법이 어디 있을까? 하지만 많은 과학자들은 이 같은 첨단과학기술에 매우 우호적이다. 물론 현대과학 기술이 새로운 발전단계로 접어들면서 인간에게 편리함을 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1990년대로 접어들면서 반도체 기술의 비약적인 진보는 인간에게 편리함을 안겨줬다. 오래 전 ‘리모컨’이 처음 나왔을 때도 필자는 리모컨의 편리함으로 인간의 기능이 퇴화돼 큰 머리만 있고, 손가락은 두 개만 남을 수도 있다는 우려의 글을 쓴 적도 있다. 당시에 사람들은 비웃었다. 지금도 그 두려움은 여전하다. 인공지능이 발달하고 기계화되면 결국은 상당수의 직업이 사라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직업을 잃게 될 것이다.  

더 우려되는 것은 의료부분이다. 인공지능 기술이 각광을 받으면서 벌써부터 의료분야에서 환자들의 상태변화에 실시간 대응하고 수술까지도 가능한 인공지능 로봇을 개발해 활용하려고 한다. 인간을 다루는 재판도 그렇지만 의료도 교과서적인 정확도만 갖고는 위험하다. 감성과 경험이 있는 인간의 판단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과학의 발달은 현실적으로 필요한 부분이지만 인간의 한계를 넘어 신에게 도전을 하면서 인간 스스로 멸종한 공룡처럼 지구상에서 사라질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인간이 만든 논리와 이성과 지식부분에서 인공지능에게 이미 끝장나버렸다는 사실이다.

인간이 갖고 있는 고유한 역량, 인간이 기계보다 나은 역량, 인간이 행복을 누리면서 살 수 있는 역량이 무엇인지, 어디까지인지를 연구하지 않으면 결국 사회·윤리적 문제가 야기될 것이다. 민주주의나 자본의 폐단이 망친 인간의 삶에 대한 철학적 물음에 답을 준비하지 않으면, 과거에 신에게 눌려 살았듯이 미래의 삶 또한 기계에게 종속돼 노예 같은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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