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와인을 찾아서 - ⑥ 충남 예산사과와인(은성농장)

달콤한 맛과 특유의 신맛이 살아있는 와인

▲ 사과로 자신만의 와인브랜드 만들기에 성공한 정제민 예산사과와인 부대표

한국 와인을 소개하면서 고민되는 것 중 하나가 소비자들에게 이미 너무 유명해서 꼭 소개할 필요가 없어 보이는 와인들을 어떻게 하느냐는 것이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와인을 굳이 소개하는 것도 재미없는 일이지만,  품질이나 중요성을 고려하면 소개하지 않을 수 없는 와인들이 바로 그 대상들이다. 오늘 소개할 ‘추사’라는 이름의 사과와인도 바로 그런 와인 중 하나다.

전국에 유명한 사과산지는 많지만 사과와인 생산지로 가장 유명한 곳을 꼽자면 충남 예산이 아닐까 싶다. 당진과 대전을 잇는 당진영덕고속도로에서 고덕IC로 빠져나가면 교차로에 ‘예산사과와인’이라는 사과 모양 표지판이 눈에 띈다. 표지판을 쫓아 1km 남짓한 거리를 따라가 보면 넓은 사과밭과 마주한 예산사과와인(은성농원)에 도착한다. 양조장 앞으로 펼쳐진 2만여㎡의 과수원에는 5000여 그루의 키 큰 사과나무가 자라고 있고, 해마다 40t 정도의 사과가 수확되는 이곳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사과와인 '추사'가 만들어진다.

▲ 한국을 대표하는 사과와인 ‘추사’

‘은성농원’이란 이름으로 잘 알려진 이 와이너리의 역사는 대표인 서정학·전경희씨 부부가 35년 전 이곳에 사과밭을 일구면서 시작됐다. 오랜 시간 대부분의 사과를 도매로 판매하다가 사위인 정제민 부대표의 노력이 더해져 2004년부터 사과와인을 생산했고 2010년에는 현재의 양조장을 완공해 ‘추사’라는 브랜드의 사과와인을 출시했다.

‘추사’라는 이름은 가을사과(秋沙)’라는 뜻이기도 하고, 예산 사람인 추사(秋史) 김정희 선생의 호를 딴 것이기도 하다. 이곳의 와인생산 책임을 맡고 있는 정제민 부대표는 젊은 시절 캐나다에 거주하면서 집집마다 텃밭에서 수확한 재료로 와인을 만들어 마시는 문화를 체험하면서 와인에 깊이 매료되었던 모양이다. 그곳의 술공방에서 와인양조법을 배운 그는 2002년 귀국해 서울에 작은 공방을 열고 동호인들을 대상으로 와인양조법도 가르치고, 양조 도구도 공급하면서 자신만의 와인브랜드를 만들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아마도 그 당시의 활발한 동호회활동을 통해 형성된 폭넓은 인맥과 와인제조경험은 지금의 예산사과와인이 만들어지는데 가장 큰 자산이 되었을 것이다.

필자가 정제민 부대표를 처음 만난 것도 그 무렵쯤으로 기억된다. 그러니 필자는 자주 마신 것은 아니지만 꽤 긴 세월동안 정제민 부대표의 사과와인을 맛본 샘이다. 기억을 돌이켜 보자면 예전에 만들어진 정제민표 사과와인들 중에는 현재 생산되는 ‘추사’와는 단맛과 신맛의 느낌이 사뭇 다른 제품들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예전 제품이든, 현재 제품이든 변하지 않는 하나의 공통점은 사소한 양조 실수로도 생겨날 수 있는 잡냄새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포도에 비해 향이 강하지 않은 사과의 특성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정제민 부대표가 과중한 업무에도 불구하고 와인양조에 얼마나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부분이다. ‘추사’는 원료로 후지품종의 사과를 쓰는데, 그 중에서도 당도가 월등히 높은 ‘기꾸8’이라는 품종을 사용하고, 20일간의 저온발효를 통해 깔끔하고 상쾌한 맛을 만들어내며, 풍부한 향기를 얻기 위해 1년 이상의 숙성 기간을 거쳐 완성된다. 달콤한 맛과 더불어 특유의 신맛이 살아있어서 식전주(Aperitif Wine) 뿐만아니라 식후주(Dessert Wine)로도 마실 만하다.

이렇게 거부감 없는 ‘추사’의 맛과 향은 와인전문가와 소비자들에게 좋은 평가를 얻어 2012년에는 ‘대한민국 우리 술 품평회’에서 과실주 부문 대상을 수상했고, 2014년에는 정부로부터 찾아가는 양조장으로 선정되었으며, 최근에는 직거래와 체험관광프로그램까지 진행해 6차산업화의 성공모델로 인정받고 있다.

▲ 김홍철(가평와인스쿨학과장)

사과와인을 소개하고 보니, 혹시나 독자들이 와인은 포도로 만드는 술인데 사과로 만든 것도 와인이라 할 수 있냐고 묻는다면 그저 넓은 의미의 와인으로 이해해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해외에서도 가끔씩 포도 이외의 과일로 만든 술에 원료명을 붙여서 애플와인, 메이플와인, 블루베리와인 등으로 부르는 예가 있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와인을 이야기할 때 좀 더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다. 와인은 그 다양성을 통해 자연의 의미와 가능성을 보여주는 신의 선물임을 잊지 말자.

저작권자 © 농촌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