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진기 국립민속박물관장

▲ 천진기 국립민속박물관장

"원숭이는 지혜,
재주의 상징이다.
하지만 원숭이 꾀라 함은
잔꾀를 연상시킨다.
올 한해는 잔꾀가 아닌
큰 꾀와 슬기로
승화되었으면 한다"

중국 한나라 ‘산해경(山海經)’에 의하면 서왕모(西王母)가 살고 있는 곤륜산에는 먹으면 늙지도, 죽지도 않는 복숭아(仙桃)가 열린다. 서왕모가 관리하는 반도원(蟠桃園)의 복숭아나무는 가지가 사방 3천리까지 뻗어나가며 3천년 만에 꽃이 피고 다시 3천년 만에 열매를 맺으며, 그것을 한 개라도 먹으면 1만8천살까지 살 수 있다는 전설이 있다. 천도복숭아는 장수(長壽)를 상징한다. 천도복숭아를 먹거나 손에 잡은 것은 바로 장수의 상징이며, 원숭이 가족이나 한 원숭이가 다른 원숭이 등을 잡고 있는 것은 자손의 번창을 기원하는 의미이다. 원숭이와 잘 어울리는 조합은 십장생인 바위·소나무·폭포·천도복숭아 등이다. 모두 축수(祝壽)이다.

또 청화백자(靑華白磁), 백자(白磁)의 항아리나 걸상에서는 원숭이가 장식문양으로 포도 넝쿨 사이로 다니거나 포도를 따먹고 있다. 탐스런 포도알 하나하나는 자식이고, 풍요다산(豊饒多産)의 의미이다. 이런 포도그림에는 동자(童子)·해수(海獸)·다람쥐·원숭이 등이 함께 나타나는데, 포도나무 가지 사이로 다니는 모습이나 포도를 따먹는 모양은 원숭이의 생태와 걸맞은 표현이다. 벼루의 문양에서도 포도와 원숭이가 함께 나타나는데 그 모습은 앞의 경우와 같다.

이렇듯 선비의 사랑방 기물이나 문방사우 등에 원숭이를 그리는 이유가 있다. 원숭이 후(?)자는 제후 ‘후(侯)’자와 발음이 같아 원숭이는 곧 제후, 높은 벼슬을 얻는다는 의미를 갖게 되었다. 조선시대까지 높은 직위는 부와 명예를 모두 포괄하는 인생의 지복(至福) 중 하나였다.
이외에도 불교 설화나 서유기와 관련돼 스님의 시중을 드는 원숭이 그림도 있다. 나무 아래에 스님이 앉아 있고 원숭이 한 마리가 손에 천도를 스님에게 바치는 그림, 노장의 지팡이를 원숭이가 잡고 있고 뒤에는 동자승이 호로병을 들고 있는 그림 등이다. 동양문화권의 신화에서 원숭이는 가장 사랑받는 동물 가운데 하나이다.

‘조선도교사 朝鮮道敎史’에 의하면, 궁궐의 전각과 문루의 추녀마루 위에 놓은 10신상(神像)을 형상화해 벌여놓아 살(煞)을 막기 위함이라고 적고 있다. 이들이 잡상으로서 기와지붕 위에 놓이게 됨은 당나라 태종의 꿈속에 밤마다 나타나는 귀신이 기와를 던지며 괴롭히자 잡상을 내세워 전문(殿門)을 수호하게 하였다고 한다.
원숭이는 탈판으로도 등장한다. 종이나 나무로 만든 원숭이탈은 얼굴 전체를 붉은색으로 칠하고 가장자리에 털을 붙였다.

탈춤에 등장하는 원숭이는 탈 뿐만 아니라 의상도 원숭이처럼 붉게 입고, 대사도 없이 그냥 사람의 흉내만 낸다. 탈판에 등장하는 원숭이는 모두 인간의 외설스러운 음험한 행위를 흉내 내면서 원숭이의 그러한 흉내를 통해 파계승 노장의 형식적인 도덕과 신장수의 비행을 풍자와 해학으로 폭로한다. 원숭이 재주를 이용한 장사는 탈판의 신장수에서 비롯하여, 그 후로는 장터나 서커스단에 주인공이 된다. 시골 장터에서 만병통치약을 파는 약장수는 의례 원숭이를 데리고 다니며 재주를 보여 장꾼을 모은 다음 약을 판다.

원숭이해에 태어난 잔나비 띠는 천부적인 재질과 지혜, 재주를 지니게 된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자기의 재주를 너무 믿어 방심하므로 스스로 발등을 찍는 일면도 있다고 한다. 흔히 원숭이 꾀라 함은 잔꾀를 연상하게 돼 가볍게 받아들여지는 경우도 있다.  
丙申年, 올 한 해에는 잔꾀가 아닌 큰 꾀와 슬기로 승화되어 평화롭고 알찬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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