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완주 박사의 농사에 대한 오해와 진실(51)

▲ 주인의 죽음을 부른 과습 고추밭. 두둑을 높이고 동양화의 여백처럼 흙을 엉성하게 만들어 주어야 한다.

아내의 생월인 지난해 2월에 자기 친구들로부터 화사한 시클라멘 화분을 받았다. 예쁜 대바구니에 금박지로 싸서 앉힌 화분에는 진분홍 꽃이 가득 피어 있었다. 그는 화분 앞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보름이 못가 문제가 터졌다. 잎이 시들기 시작하는 것이다.

당황한 아내는 내게 물어왔다. 화분을 들여다보니 아뿔싸, 대바구니와 화분사이 밑바닥에 깔아놓은 은박지에 물이 가득 고여 있다. 과습 때문에 잎이 시드는 것도 모르고 물을 자주 준 모양이다. 이런 황당한 경험은 농부도 마찬가지로 겪는 일이다. 흙속을 들여다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 봄 전남에서 겪은 일인데, 농업기술센터에서 죽을 쑤는 농가를 진단해 달라고 주문했다. 비닐하우스에 비닐터널을 하고 고추를 재배하는 60대 농가였다. 고랑에 물이 고여 신발이 말씀이 아니었다. 해가 중천에 떠있는데 비닐터널의 옆구리만 살짝 비껴놓은 상태라 과습과 햇빛 부족이 근본적인 문제였다. 여린 고추가 언제 커서 제구실을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들었다.

이런 경우 햇살이 퍼지면 바로 터널비닐을 벗겨 광합성을 시작하도록 해야 한다. 물도 부족한 듯싶게 양도 줄이고 간격도 벌려줘야 한다. 그런 설명을 해주고 돌아왔지만 마음에 집히는 게 있어 몇 달이 지나 센터 담당자에게 전화를 해봤다. 그는 두 번의 실패 끝에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지난 주(본보 1월25일자) 이 칼럼에서 ‘주먹만 한 자갈이 풍화돼 흙이 되면 부피가 줄어들까 늘어날까?’라는 질문을 했다. 정답은 ‘늘어난다.’다. 그럼 몇 배나 늘어날까? 주먹만 한 자갈이 풍화되면 흙이 두 주먹이 된다. 그러니까 한 주먹은 흙 알갱이, 한 주먹은 공간(공극)이다. 돈을 잘 버는 진짜 농사꾼이 되려면 이 한 주먹의 공간을 잘 요리해야 한다. 앞서 명줄을 끊은 농가도 이 공극을 잘 확보해 줬더라면 그런 비참한 지경까지는 가지 않았을 것이다.

흙 속 공간은 뿌리가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물과 산소가 있는 곳이다. 물과 공기는 정해진 공간을 놓고 서로 싸움을 벌인다. 한 쪽이 많으면 다른 한 쪽은 적어질 수밖에 없다. 뿌리도 사람처럼 숨을 쉬어야 에너지를 만들 수 있어 산소가 필요하다. 물로 공간이 채워지면 뿌리는 질식해서 죽는다. 해로운 가스가 나오고 양분은 강한 독성물질로 변한다.

그럼 물과 공기를 다 풍부하게 확보해서 농사를 잘 짓는 방법은 없을까? 동양화처럼 여백(공간)을 많이 만들어주면 된다. 깊이갈이, 심토파쇄, 암거배수 등도 좋지만, 녹비재배와 완숙퇴비 시비로 공간을 많이 확보해주는 한편, 두둑(이랑)이 높여 배수를 좋게 하는 방법이 더 쉽고 경제적이다.

 

저작권자 © 농촌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