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후변화, 우리 농업·농촌 생활지도 바꾼다
농산물 시장개방으로 찬 겨울을 맞고 있는 농업·농촌에 불가항력의 기후변화까지 겹쳐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지난해 봄 극심한 가뭄으로 농업용수와 생활용수가 메말랐고, 늦가을 지속된 비는 수확기를 앞둔 제주감귤의 품질 저하와 내륙지역 곶감 부패 등 농작물 피해로 이어졌다. 기후온난화로 인한 병해충 발생 증가와 생리장해 확산 등도 농가의 시름을 깊게 하고 있다. 상시화되고 변화무쌍한 이상기후의 영향은 우리 실생활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본지는 이 같은 기후변화의 상황과 피해, 그리고 대책에 대해 2회에 걸쳐 기획 연재한다.
■ 기후온난화로 바뀐 생태변화
농산물 재배적지 북상 속도 빨라지고
작물 생리장해·돌발병해충 발생 확산
봄여름이 1개월 길어지고 겨울은 1개월 짧아진다. 제주도와 울릉도는 겨울이 사라진다. 다른 나라 얘기도 아니고 먼 미래의 얘기도 아니다. 앞으로 30여년 후 한반도의 모습이다. 지구온난화가 급격히 진행될 것이라는 RCP8.5 시나리오에 따르면, 2090년께 강원 산간지역 등 고산지역을 제외한 남한의 대부분이 월평균 10℃ 이상의 기온이 8개월 이상 지속되는 아열대기후에 들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지역특산농산물 개념 사라졌다
이 같은 기후변화는 이미 농산물 재배지도의 판도를 바꿔놓고 있다. 지역을 대표하던 특산 농산물의 개념은 이제 무색해졌다. 제주도에서만 생산됐던 감귤과 한라봉은 육지로 상륙해 전남 고흥, 전북 김제, 경기 이천까지 올라왔고, 그 자리를 동남아지역에서 자라는 열대과수인 망고와 용과, 파파야 등이 점차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대구 사과는 충남북을 거쳐 경기도 포천까지 성큼 올라갔고, 전남 곡성의 특산물인 강원도 양구까지, 청도의 복숭아는 경기도 파주까지 재배지가 북상했다.
전남지역에서 가장 많이 재배돼왔던 동계작물인 쌀보리는 기후온난화로 점차 재배지가 북상해 경남북, 충남, 경기도, 강원 동해안지역까지 확대됐고, 재배한계지역 내에 있는 강원도 춘천과 홍천 등에서도 재배되고 있다.
지금의 기후변화 추세를 감안한다면 머지않은 미래에 현재 남한지역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을 아열대 작물들이 대체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예측하고 있다.
기후변화는 농작물 재배지 북상뿐만 아니라 작물의 생리에도 심각한 영향을 주고 있다. 수확기 적산온도가 수확 적정 기준을 웃도는 고온으로 ‘신고’ 배의 경우, 과실 성숙이 빨라지고 과실경도가 낮아져 저장기간이 짧아질 뿐만 아니라 과숙에 의한 바람들이나 과실의 중심부가 썩는 밀 증상 등과 같은 생리장해 발생하고 있다.
감귤도 과피와 과육 간에 공극이 생기는 부피과 발생이 증가하고, 파괴는 뜨거운 햇빛으로 일소피해가 나타나는가 하면, 여름철 이상고온이 지속되면서 칼슘 결핍으로 배추 속이 타들어가고 결국 녹아버리는 장해가 발생하고 있다. 대관령 지역은 최저기온이 40여 년 전보다 두 배 이상 상승하면서 재배면적이 절반 수준으로 눈에 띄게 급감했다.
고온 지속…외래 병해충 증가
기온상승은 작물의 생리장해와 함께 외래해충 유입과 고온성 병해충 발생을 증가시키고 있다. 벼 이삭이 아예 나오지 않거나 잎이 말라 죽어 심하면 한 해 농사를 망쳐버려 일명 ‘벼 에이즈’라고 불리는 벼 줄무늬잎마름병 피해지역이 북상하고 피해면적도 확대되고 있다. 2008년에는 경기와 충남, 전남북, 경남 등 전국적으로 14,137㏊에서 벼 줄무늬잎마름병이 발생해 농가에 큰 타격을 줬다.
과수에 피해를 주는 병해충 발생도 증가하고 있다. 갈색여치는 2001년 충북 충주지역에서 첫 피해사례가 보고된 이후 2006년 충북 전역으로 번지더니 2010년에는 충청지역 전역으로 확산돼 사과, 복숭아, 포도, 콩 등에 피해를 줬다.
외래해충인 주홍날개꽃매미도 2006년 이후 급격히 증가해 이젠 국내에 정착한 돌발해충인데, 2010년에는 전국적으로 8,278㏊에 발생해 포도, 복숭아, 사과 등 과수에 큰 피해를 입혔다.
2014년 8월 전남 해남에서는 영화나 해외토픽에서나 볼 법한 메뚜기 떼가 들판을 새까맣게 점령했다. 산이면 덕호리 간척지논 등 25㏊에서 수십억 마리로 추정되는 풀무치 떼가 출몰해 벼와 잡곡류의 잎과 줄기를 갉아먹어 농가에 심각한 피해를 준 것이다.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은 해남 간척지 들녘에 풀무치가 대량 출현한 것은 장마철에 비가 적게 내린 데다 기후온난화의 영향으로 개체가 크게 늘어났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했다.
풀무치는 성충이 된 뒤 흙이나 모래에 알을 낳는데, 장마철에 많은 비가 내리면서 대부분 씻겨 내려가지만 당시에는 마른장마 뒤 갑자기 단비가 내리면서 풀무치 알이 일시에 부화해 성체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또 최근 친환경농업이 확산돼 메뚜기의 서식환경이 좋아진 반면 천적의 개체가 줄어들었고, 기후온난화가 심화된 것도 주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2030년 가뭄 위험 최대
올 봄 극심했던 가뭄은 미래에도 그 위험이 여전히 높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농촌진흥청이 기상청의 기후변화 시나리오(RCP8.5)를 바탕으로 미래 농경지 가뭄 위험성을 살펴본 결과, 영농시기에 가뭄 위험이 여전히 높고 지역 편차가 심해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농진청은 이 같은 예측을 근거로 미래 농경지 가뭄 위험 달력을 제작했는데, 이에 따르면 가뭄이 심한 중서부 지역의 경우 올해 겨울 가뭄 위험이 높고, 2020년에는 봄가을 모두 가뭄이 심할 것으로 예상됐다. 작물 재배 시 생육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가뭄 위험은 점차 높아져 2030년대에 가장 높을 것으로 예측됐다.
기후변화는 이제 피할 수 없는 현상이 돼버렸다. 이에 대응한 품종 개발과 재배법, 작부체계, 병해충 방제대책 등에 대한 연구와 기술보급이 시급한 시점이다.
■ 기후온난화로 바뀐 생활변화
온난화로 도시·농촌생활 변화…겨울장사는 ‘울상’
가뭄 심각…만성적 물부족 사태 우려
얼음 안 얼어 지역겨울축제 ‘줄줄이’ 취소
한겨울용 아이템, 최대 40% 매출 감소
이례적으로 포근한 겨울이 한반도를 뒤덮고 있다. 봄을 알리는 유채꽃과 개나리, 진달래가 경남 진주·창원, 전남 순천 등지에서 꽃망울을 피우더니 충북 청주를 지나 경기도 수원시, 고양시까지 ‘철없게’ 피었다. 국민의 시린 마음을 데우는 데는 꽃과 따뜻한 날씨가 반가울 수 있겠지만 이상기후 때문에 울상 짓는 사람들이 있다. 지구온난화로 환경이 변하고 사람들의 생활변화가 급격해지면서 겨울장사는 내놓자마자 접어야 했고 ‘개시’조차 못해 피해 입은 산업도 상당했다.
가뭄 가뭄…‘죽지 못해 살았다’
가뭄의 근본적인 원인은 지구온난화다. 지구가 뜨거워지면서 지표와 바다에 있는 물이 더 많이 증발하고 식물에 저장된 물 또한 더 많이 증산되는 것.
지난해 경기북부와 강원도 일부지역의 가뭄으로 콩을 비롯한 밭작물 농가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 피해농가들은 아직 생활용수까지 쓰는 데 지장은 없지만 부족한 농업용수에 고통을 호소했다.
경기도 포천의 한 여성 농업인은 “지난해 죽지 못해 살았다. 비도 안 오고 물도 안 나왔다. 급한 대로 농업용 관정을 뚫기도 했지만 역부족이었다”며 지난해의 고충을 하소연했다.
한국기후환경네트워크 관계자는 “증발산하는 물의 양이 많아지면 자연스레 강수량도 증가하지 않겠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강수량은 위도나 지형에 따라 편차가 심하기 때문에 열대와 온대 지방은 더 많은 비가 내리고 건조한 아열대 지방은 오히려 비가 내리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또한, “지구온난화가 심화되면 가뭄은 늘고 반대로 지하수 사용량이 늘면서 인류는 만성적인 물부족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얼음 얼지 않아 슬픈 지역축제
지구온난화는 추운 겨울을 활용해 수익을 내는 산업에도 큰 타격을 입혔다. 특히 지자체의 자체 수익 중 하나인 겨울축제는 ‘개시’조차 못하고 있다.
올해 4회를 맞이하는 ‘홍천강 꽁꽁축제’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지구온난화뿐만 아니라 슈퍼 엘니뇨로 인해 영하 10℃이하로 떨어지지 않았고, 홍천강물이 충분히 얼지 않아 축제를 취소할 수밖에 없었던 것.
홍천군축제위원회 관계자는 “행사 준비하는 최소 2주 동안 영하 10℃이하로 떨어져야 강물이 25~30㎝로 얼어 안전하게 얼음위에서 낚시를 할 수가 있다. 하지만 올 겨울은 얼음이 얼지 않아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홍천강 꽁꽁축제’는 2014년도 5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을 동원해 100억 원 이상의 수익을 냈던 홍천군의 수익원 중의 하나다.
그밖에 강원 인제군이 2년 연속 빙어축제를 취소했고 경기 가평군 자라섬 씽씽 겨울축제, 전북 무주 남대천 얼음축제가 일찌감치 취소를 결정했다.
오리털점퍼 등 방한용품 매출 ‘뚝’
도시 소비자의 소비양상도 달라졌다. 오리털 점퍼를 비롯한 장갑·방한내의 등 한겨울용 아이템보다는 경량 재킷, 코트 등이 팔리고 있어 겨울용품 관계자들은 발만 동동 굴리고 있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한겨울용 의류는 전년대비 30~40% 매출이 감소했고 한 겨울용 이불은 20% 줄었다”며 “포근한 겨울에 대한 피해가 상당하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의류매장 풍경도 달라졌다.
경기도의 한 대형아울렛 의류매장 직원은 “전년에 비해 소비자가 두툼한 점퍼를 찾지 않는다. 주말에 한두 개 나가는 정도. 그래서 얇은 옷을 매장 전면에, 점퍼는 뒤쪽에 배치시켰다”고 말했다.
그뿐만 아니라 겨울철 인기가 좋았던 차(茶)류와 에센스, 크림 등 화장품, 자동차 성애 제거용품 매출은 줄고, 반면에 미세먼지로 인한 가습기·공기청정기 매출이 전년대비 26% 상승, 기능성·과즙 음료, 맥주, 스킨·로션, 세차용품, 우산 등 소비가 전년에 비해 증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