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와인을 찾아서 - ②충북 영동 여포농장

국내에서 생산되는 와인을 시리즈로 소개해 보고자 한다. 와인생산업자로서 동종업계의 제품들을 소개하려니 부담이 되는 것도 사실이지만, 와인의 불모지였던 한국의 와인산업이 얼마나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지 독자들께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리라 여긴다.

드라이 타입과 스위트 타입으로 만들어진
두 종류의 레드와인은 복잡하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영동지역 캠벨어리 특유의 느낌을 잘 살리고 있다

“와인은 양조자를 닮는다.”
와인에 대한 여러 가지 속설 가운데 가장 고개가 끄덕여지는 말이다. 본디 작품이란 작가의 정신이 몸을 통해 사물에 투영된 것이므로, 작품이 작가를 닮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양조자와 함께 와인을 마셔보면 와인이라는 작품 또한 예외 없이 그 법칙을 따르고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이번 소개할 '여포의 꿈'이라는 와인은 그야말로 양조장 주인의 외모와 성격을 고스란히 빼닮은 와인이다.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을 것 같은 이름처럼 양조자의 인생이야기 없이는 설명할 수 없는 와인이기도 하다.

경부고속도로 영동IC에서 19번 국도를 따라 영동군청을 지나 무주방면으로 가다가 원동교차로에서 유점천변을 따라 유점리로 들어서면 길 왼편에 ‘여포농장'이라 쓰여진 간판과 마주치게 된다. 여느 시골집과 별로 다를 것도 없는 풍경이지만, 이곳에서 만들어지는 와인을 알고 찾아온 이에게는 그런 것들마저 특별하게 다가온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발효탱크와 양조도구들이 보이고, 밖에서 볼 때는 예상 못했던 꽤 넓은 시음공간도 마련돼 있다. 건물 뒤편으로 펼쳐진 2천 평의 포도밭에 이곳의 대표 품종인 캠벨어리를 필두로 머루, 알렉산드리아, 네오머스켓, 메를로, 산지오베제, 고슈, 버팔로 등의 다양한 포도 품종이 재배되고 있는 것을 보고나면 자연스레 이곳에서 생산되는 와인이 궁금해진다.
생산양은 많지 않지만 레드, 화이트, 로제와인, 브랜디까지 포도의 종류만큼이나 다양하게 만들어지는 이 집 와인의 이름은 ‘여포의 꿈’이다. 왜 하필 ‘여포’냐고 물어보니 주인인 여인성 대표의 어릴 적 별명이 삼국지에 등장하는 ‘여포’였단다.

와인 또한 여포의 이미지처럼 우직하고 순수하게 느껴진다.
드라이 타입과 스위트 타입으로 만들어진 두 종류의 레드와인은 복잡하거나 화려하지는 않지만 영동지역 캠벨어리 특유의 느낌을 잘 살리고 있고, ‘꿈 너머 꿈’이라 부르는 브랜디(여포 꼬냑) 또한 힘찬 파워를 자랑한다. 단 하나, 알렉산드리아 품종으로 만들어진 달콤한 화이트와인 만큼은 여포를 닮지 않았다. 그 이유가 참으로 궁금했는데, 지난번 방문 때 여포의 연인 ‘초선’ 역의 김민제 공동대표를 만나고 나니 그 의문이 속 시원히 풀렸다.  
안주인 김민제 대표를 닮은 화이트와인은 달콤하면서도 복합적인 향기를 구조를 가지고 있다. 입에서 느껴지는 균형감 또한 훌륭해서 디저트와인으로 그만이다. 아마도 호텔외식조리학을 전공한 김 대표의 감각이 녹아든 것이리라.

1997년 철도공무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여 대표와 함께 영동에 터전을 마련해 20년 가까운 기간 동안 함께 농장을 일구었다.  남편인 여 대표가 지금까지도 코레일 직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탓에 농장에서 김 대표의 역할은 클 수밖에 없었을 터이니 베테랑 농사꾼이 된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농장의 관리는 물론 와인과 와인에 어울리는 음식의 개발까지 열정을 쏟고 있는 김 대표의 모습을 ‘초선’이라는 인물 하나로 모두 표현할 수는 없지만 어찌하랴. 필자에게는 여포보다 초선이 훨씬 더 매력적인 인물인 것을....

▲ 김홍철 가평와인스쿨학과장

2007년에 주류 제조면허를 취득한 이래로 이탈리아, 프랑스, 호주, 미국, 일본 등 여러 와인 생산지를 견학하며 견문을 넓힌 덕에 와인산업에 대한 감각을 가지게 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노력한 결과, 최근 ‘여포의 꿈’은 광명와인페스티발 대상을 비롯해 우리술 품평회 우수상, 한국와인축제 금상, 한국와인베스트셀렉션 금상 등 많은 상을 거머쥐게 됐다. 그러나 필자의 기대는 여인성 대표가 전업농으로 나설 몇 년 후에 쯤으로 맞춰져 있다. 지금 무르익고 있는 여포의 꿈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마도 그때쯤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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