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커스 - ‘여성친화형 농기계 개발 토론회’ 지상중계

토론자들 “여성친화형 농기계 개념 정립부터 선행돼야”

▲ 여성친화형 농기계 개발의 필요성을 주제로 한 토론회가 지난 10일 농촌진흥청 주관으로 전북 김제에서 열렸다.

밭작물 재배표준화 통해 기계화율 높여야
여성농업인 대상 농기계교육 확대 요구
고령농 위한 편이장비 개발․지원도 절실

기계화율이 거의 100%인 논농사에 비해 주로 여성농업인들이 담당하고 있는 밭농사는 기계화율이 50% 정도 밖에 안 돼 여성들의 노동부담이 과중하다. 게다가 농기계는 주로 남성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지고 있고, 여성들은 신체를 사용해 힘든 농사를 하는 게 일반적인 우리 농촌의 모습이다. 이에 오래 전부터 여성들을 위한 농기계 개발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있어왔지만 ‘구호’로만 그쳐왔다. 이 같은 현실을 해결해보고자 하는 ‘여성친화형 농기계 개발 토론회’가 지난 10일 김제농업기계박람회 다목적 체험관에서 열려 문제점을 진단하고 구체적인 대안을 모색했다.

수요에 비해 시장 협소
이날 토론회에서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정은미 연구위원은 ‘여성농업인의 역할과 여성친화형 농기계의 중요성’이란 주제발표를 통해 “여성농업인의 농기계 이용은 삶의 질 개선과 관련돼 있다”고 전제하면서 “여성들의 노동부담 경감을 위해서는 농작업의 기계화가 필요한데, 작물과 재배법이 다양하고 수요에 비해 시장이 협소한 것이 한계”라고 지적했다.

정 연구위원은 이어 “여성친화형 농기계 개발을 위해서는 작업 용도별로 구체적인 수요를 파악해야 하고, 고령 여성농업인의 농업 참여가 지속되는 한 소형농기계 수요가 꾸준할 것”이라면서 “최근 급격히 확대되고 있는 도시농업을 위한 소형농기계나 농작업 도구 개발도 병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두 번째 발제자로 나선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 농업공학부 이경숙 연구관은 ‘여성 및 고령농업인을 위한 편이장비 개발 현황과 방향’이란 주제발표에서 “일반 산업에 비해 재해율이 높은 농작업 재해 예방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며 “농촌 현실에 맞는 고령 여성농업인을 위한 편이장비 개발․보급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업계 대표로 주제발표를 한 동양물산(주) 기술연구소 강영선 소장은 “여성인력이 밭농업 파종․이식․수확작업에 집중돼 있지만, 여성의 미약한 경제력과 약한 의사 결정권, 여성노동력 저평가 등으로 여성용 농기계 개발이 어렵다”고 현실을 토로했다.

강 소장은 “여성이나 고령농업인들을 위한 소형트랙터를 개발해 보급하고 있는데, 궁극적으로는 성별에 관계없이 농업에 기여하는 스마트한 농기계 개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작고 안전한 동력기계라야…
주제발표에 이어 진행된 토론에서는 농업인, 연구기관, 업체관계자 등이 참여해 다양한 의견을 내놨다.

유연숙 한국생활개선전북도연합회장은 “여성농업인의 노동을 많이 필요로 하는 채소나 특용작물의 비중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여성농업인의 노동 강도와 농업의 여성의존도는 심화될 것”이라면서 “기존에 사용되고 있는 농기계에 여성의 체형을 고려해 조작버튼 위치 등을 변경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유 회장은 이어 “농지규모가 작고 주로 비탈에서 이뤄지는 밭농사에 여성농업의 노동이 집중돼 있는 만큼 여성친화형 농기계는 작고 안전해야 하며 동력을 사용하는 승용농기계로 제작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한국여성농업인중앙연합회 심창훈 사무총장은 “여성친화형 농기계에 대한 개념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면서 “여성친화형 농기계란 여성의 신체적 조건을 고려해 여성농업인이 사용하기 편하게 설계․제작됐거나, 여성농업인의 이용도가 높은 농기계․편이장비”라고 정의했다.

심 총장은 또 “여성농업인들의 성별특성이 반영된 농기계 개발이 이뤄져야 하지만, 농업기계화사업 기본계획 수립을 위한 위원회나 농기계 임대 기종선정심의위원회가 남성 위주로 구성돼 있어 여성의 목소리를 반영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지역고용정책연구원 오미란 전문위원은 여성친화형 농기계 관련 정책을 추진할 경우 ▲농기계 이용이 가능하도록 밭 기반정비 확대 ▲여성친화형 농기계 개발과 보급․이용 활성화 방안 연계추진 ▲농작업 편이도구의 광범위한 보급 등 실제 여성농업인들이 체감할 수 있는 정책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성이 더 세밀히 운전할 듯
여성들의 밭농사 노동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재배법을 표준화해야 한다는 게 공통된 목소리다. 조선대 농업안전보건센터 이철갑 교수는 “지역마다 토질과 재배법 등이 달라 힘들여 농기계를 개발한다 해도 널리 이용되기 힘들 것”이라면서 “작물재배 표준화가 우선돼야 밭농사 기계화율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국제종합기계(주) 이종열 기술연구소장도 “밭농사는 여러 가지 변수 때문에 기계화율이 어렵다”고 현장의 어려움을 피력하면서 “기계화에 맞는 종자 개발, 육묘방법 개선, 두둑 성형조건 기준 마련 등 농작업의 체계적인 프로그램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주)아세아텍 정운석 이사는 “밭작물 농기계를 중심으로 최소한의 교육과 노력만 기울인다면 여성도 쉽게 사용할 수 있는 기계는 많다”며 “여성농기계 공급 확대는 이미 개발된 농기계를 여성들이 지속적인 교육과 실습을 통해 농기계 조작과 작업에 숙달되게 하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말했다. 자동차 운전과 마찬가지로 농기계도 숙달이 된다면 작업이 전혀 힘들지 않고, 혼자 하더라도 요령이 생겨 작업능률도 높아질 수 있다는 게 정 이사의 말이다.

이를 위해 정 이사는 무엇보다 여성농업인들이 기계에 거부감을 갖지 않고 친숙해질 수 있도록 홍보와 연시, 사용교육, 안전교육 등을 통해 기계를 알리고, 직접 시운전하며 조작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청중토론에 나선 김순아 한국생활개선정읍시연합회장은 “농기계가 소형이든 대형이든 조작방법을 알지 못하고는 여성농기계 개발은 요원하다”면서 “최근에는 여성들이 트럭도 운전하는데, 기본 농기계 작동교육을 많이 시켜주면 여성들이 더 세밀하게 농기계 운전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허건량 농진청 농업공학부장은 “농촌진흥청이나 각 지역에서 실시하고 있는 여성농업인 농기계 관련 교육에 참여율이 저조한 상황”이라며 “교육 수요가 있다면 얼마든지 교육을 확대하겠다”고 답변했다.

한편, 이날 토론회는 그간 꾸준히 제기돼 왔지만 여전히 답보상태인 여성친화형 농기계 개발이 지난 3월 농업인단체장들과의 간담회에서 박 대통령이 “여성친화적인 농기계 개발이 필요하다”고 공감을 표한 것과 맞물려 구체적인 정책과 기계 개발까지 이어질 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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